문화

월간 전원속의 내집

캘리그래피 작가 셀프 집수리 하며 유년의 꿈을 그려낸 집

신기영 입력 2020. 11. 06.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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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청운재

십대에 두고 온 꿈을 찾아, 새로운 설렘을 찾아 돌아온 고향집. 속세에 치여 살다 반백 넘어 고치기 시작한 집은 어느새 그를 하얀 화선지 앞에 선 개구쟁이로 만든다. 이 종이에 그 는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INFO

대지위치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대지면적 약 135㎡(45여 평)
건축면적 약 100㎡(30여 평)
수리기간 12개월
수리비용 약 3,900만원


1 여름에 심은 코스모스가 만발하는 청운재 꽃마당. 뒤로 보이는 도비산은 민용 씨의 단골 산책 코스로, 그 위에선 서해바다가 한눈에 담긴다.

‘낯익은 아이가 고향집 다락 흑백사진 속에서 누렇게 웃는다’

집을 고치기 직전, 박민용 씨는 충남 서산의 방치된 고향집을 보며 혼란한 감정에 시를 한 편 지었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집이었는데, 나이 반백을 넘기고 나니 초라하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오래 망설이던 그는 지난 해, 맨몸으로 드릴, 그라인더를 가지고 집 앞에 섰다.



BEFORE 아버지가 직접 지으셨다는 집. 내부를 철거하면서 발견한 상량문에 따르면 기해년(1959년)에 지어진 집이다. 이곳에서 민용 씨를 포함해 10 남매가 태어나고 자라고 또, 집을 떠났다.




“계기보다는 은퇴해서 오면 묏자리 보러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일 것 같았어요. 인생의 끝이 아닌 새 인생을 열고 싶었으니까. 그러니 지금일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평생을 기자로, 시인이자 캘리그래피 작가로 살아와 집수리에 대한 모든 것이 낯설 수밖에 없었던 그는 고향집 현장 앞에서 도로 ‘아이’가 되었다.

2 페인트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는 민용 씨. 그중 마음을 사로잡은 ‘재즈블루’ 페인트를 골라 문을 도색했다.


3 아름드리 소나무를 구경할 수 있는 뒤뜰. 시원한 그늘 아래 직접 만든 의자에 앉아 커피와 책을 즐긴다.

고생스럽겠지만, 직접 부딪히며 고쳐나가기로 했다.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고, 유튜브 영상을 따라하며 주말 밤낮을 매달렸다. 그렇게 1년. 한숨 돌리고 나니 이제 제법 집 모습이 갖춰졌다. 민용 씨는 집 이름을 개구진 글씨로 대문에 박아넣었다. ‘청운재’. 푸른 구름이 건너가는 고갯길이라는 뜻과 같이 푸른 구름처럼 그는 고갯마루에서 여유롭게 시를 짓고 캘리그래피로 담아내면서 주말을 보낸다.

4 침실이면서 주방인 공간. 그래도 자는 공간은 직접 만든 파티션으로 나눠줬다. 파티션에는 경첩과 바퀴를 달아 필요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다.


5 깨진 기와에 그려낸 웰컴 메시지


6 작품을 전시하고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라운지. 가운데 협탁은 옛집 다락방의 작은 창호를 이용해 만들었다. 손님들이 자주 탐내는 아이템이라고.





PIECE ‘씨앗’을 캘리그래피로 표현한 작품. 씨앗은 작지만, 그 안에는 어마무지한 태산 같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래서 두인(의미를 담아 작품 첫 머리에 찍는 도장)도 풀이 아닌 산을 넘어가는 용 모양으로 골랐다. 캘리그래피의 완성은 인장을 찍는 순간에 이뤄진다.



금요일 저녁이면 민용 씨는 청운재로 향한다. 해가 떠 있을 때 그는 손님을 맞고, 집을 돌보고, 때론 동네 산과 바다를 산책 다니고 낚시를 즐긴다. 모두가 떠나고 침묵과 어둠이 내려앉는 밤엔 시를 구상하고 그것을 화선지 위에 그려낸다. 기자로 살아 온 그가 시를 쓰고 캘리그래피를 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가족이 먹을 따뜻한 밥이 지어지던 부엌은 손님과의 이야기가 익어가는 공간이 되었다.

“십년 전쯤, 퇴근길에 캘리그래피 협회 간판을 봤어요. 작품을 구경하는데 가슴이 뛰었죠. 그 뒤로 바로 수강 등록하고 지금까지 이어왔네요.”

하지만, 캘리그래피가 익숙해질 때쯤 ‘무엇을 쓸 것인가’라는 벽에 막혔다. 그때 그는 중학생 시절 덮어두었던 문학 소년을 다시 꺼내 캘리그래피라는 그릇에 담을 시를 직접 쓰기 시작했다. 등단도 하고 작품 활동도 왕성하던 시기, 청운재를 고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8 옛날 부엌의 찬장은 전시대가 되었다. 다양한 소품과 재로로 표현한 캘리그래피 작품들이 놓였다.


9 변화무쌍한 글자를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크기의 붓들. 쓰임새와 용도가 모두 다르다.


10 방 두 개를 터서 만든 갤러리에서는 민용 씨와 지인들의 작품 활동이 이뤄진다.

“삶은 결국 설레는 일을 찾아나가는 여정”이라는 그. 익숙해지고 다시 두근거리는 과정 속에서 그의 삶은 대나무처럼 마디를 만들며 뻗어가고 있다. 이제는 유튜브도 시작했다는 민용 씨의 표정에서 늘어난 ‘마디’ 하나가 더 보이는 듯 했다.

11 청운재 마당에서 오후를 즐기는 민용 씨. 햇살이 풍성하게 집 안을 채운다.




청운재가 지나온 날


1 청운재를 새롭게 탄생시키기 위한 고민의 흔적들(왼쪽)
2 뒤뜰 화단은 통나무를 일일이 잘라 에지를 만들어주고 잔디를 심었다.(오른쪽)

3 사실 전기공사는 나중에 해야하는 작업이지만, 야간 작업을 위해 먼저 하고 서까래 공사를 했다. 서까래 사이를 메우는 일은 민용 씨가 꼽은 가장 어려운 공정이다.(왼쪽)
4 상을 대고 초록빛 금속 기와를 올렸다. 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컬러라 많은 설왕설래가 있었다.(오른쪽)

5 넓은 작업실과 갤러리를 만들기 위해 방 사이 벽을 텄다. 가족의 공간을 나눴던 60년 된 벽이 속절없이 허물어질 때, 민용 씨도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고.(왼쪽)
6 직접 쓴 ‘청운재’를 금속판 레이저 커팅으로 만들어 대문에 붙였다. 글자 하나당 3만원이 들었다.(오른쪽)

7 전동 드라이버로 시작해 이제는 제법 공구도 갖췄다. 야외가구나 작품 표구도 직접 만들곤 한다.(왼쪽)
8 뒤뜰에 사과, 복숭아, 포도를 각각 한 그루씩 심었다. 올해 복숭아가 탐스럽게 많이 열렸다.(오른쪽)



TIP 민용 씨가 전하는 시골살이 팁
“일할 시간과 쉴 시간은 명확히 구분”

시골은 일을 하려면 한 없이 일할 수 있고, 반대로 늘어지려면 한 없이 늘어질 수 있는 곳입니다. 적어도 도시에서의 바쁜 일상에 지쳐 내려오는 분이라면 시골살이에도 쉼표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일하면 귀촌의 지속성을 금세 잃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 8시간 정도 일과를 한다고 하면 딱 4시간 정도만 일하세요. 일이 쌓여있어도 손을 털어버리세요. 그리고 다른 일상을 보내세요. 시간은 어차피 많으니까요.


취재_ 신기영  |  사진_ 변종석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0년 11월호 / Vol.261  www.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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