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나가는 사람은 있는데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지쳐가는 대학가 임대시장

유병훈 기자 2020. 11. 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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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겠다는 사람은 있어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죠"

지난 5일 서울 이문동에서 만난 한 원룸주인은 하소연부터 늘어놨다. 한국외대·경희대 후문의 중간입지에 서울시립대도 근처에 있어 그동안은 안정적인 임대수요가 있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길어지면서 여지껏 보지 못한 공실(空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한국외대 부근 이문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월세·전세 매물이 소개돼있다/유병훈 기자

대학가 원룸·하숙촌은 지난 2월 개강 직전 대구·경북지역에서 창궐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부분의 대학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하면서 한차례 타격을 입었다. 이어 지난 8월말 수도권에 2차 팬데믹이 터지면서 기약 없는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게 됐다.

이는 대학생들이 굳이 대학 캠퍼스에서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어지자 대학 인근 자취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감염자 수가 점차 줄어 지난달 12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1단계로 완화했지만 여진(餘震)은 여전했다.

안암동에서 마주친 고려대생 이모 씨는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이번 학기에 수강하는 6과목 중 5과목이 비대면 수업으로 꾸려졌다"면서 "대면 수업인 1과목도 원하면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오늘이 대면 수업이 있는 날인데, 그나마 단과대 건물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공지를 받아 그냥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암동의 원룸주인 박모 씨는 방을 서울 학생들이 먼저 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수업이 대부분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지방 학생들만 방을 뺐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서울 학생들의 수요도 상당했다"면서 "오히려 방을 제일 먼저 빼기 시작한 건 서울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강남이나 잠실 등지 학생들이 강북권 학교까지의 통학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자 지체없이 멀지 않은 본가로 돌아갔다는 얘기다.

임대인들만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아니다. 학생 입장에서도 필요 없는 방을 계약했다가 월세를 내는 경우가 있는 상황이다. 이문동 원룸주인 김 씨는 "지난 겨울방학 방을 구하자마자 코로나19가 터져, 임대 계약을 취소하지도 못한 채 방을 비워둬야 하는 학생도 있었다"면서 "다른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방을 비워둔 채로 월세만 계속 내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학생들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겨울방학이 오는 것을 걱정했다. 김 씨는 "겨울방학이 시작하면 계약 기간이 끝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내년에도 코로나19가 계속될 확률이 높으니 학생들이 대거 방을 뺄 것으로 보인다"면서 "보증금을 한꺼번에 전부 빼주는 것이 큰 걱정"이라고 했다.

임대인들은 특히 정부가 부동산 관련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출을 줄여 보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인들이 보증금 때문에 압박을 심하게 받아 방을 구하는 학생이 있는지 물으러 매일 (공인중개사무소를) 방문한다"면서 "하지만 사무실도 한산해 갑갑한 마음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부담감에 원룸·고시원·하숙을 빌딩째 매매하려는 임대인들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대학가 원룸 월세 시세는 큰 변동이 없다. 부동산정보 모바일 플랫폼 다방이 지난달 발표한 9월 대학가 임대 시세 리포트에 의하면 경희대 인근의 원룸 월세는 45만원으로 8월과 같았고, 6~7월 44만원에 비해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고려대 인근 원룸 월세는 지난 6월 이후 42만원에서 변동이 없었다. 서울교대 인근 원룸 월세가 8월 대비 4만원 상승한 것을 제외하면 다른 대학가 주변도 큰 변동은 없었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거래 자체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문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값을 깎을래야 깎을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집주인들이든 공인중개사들이든 공실보다야 싼 값이라도 임대가 들어오는 게 나으니 흥정할 여지는 충분하지만, 방을 찾는 사람이 없어서 아예 흥정할 기회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상권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고려대 인근의 소비 중심지인 ‘정경대 후문’으로부터 채 3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비어있는 점포가 여럿 눈에 띄었다. 고대 재학생 심모 씨는 "오래된 식당들이 임대료 등을 견디지 못하고 바뀌더니, 올해 코로나19 이후 ‘물갈이’하는 속도가 더 빨라진 것 같다"면서 "특히 프랜차이즈 업소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안암동 A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아무래도 자영업자들보다는 프랜차이즈가 버티는 힘이 더 강하기 때문 아니겠나"고 했다.

고려대 인근 소비 중심지인 정경대후문 근처 한 식당이 폐점 공고를 붙여놓은 모습/유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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