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TALK] 액체도 기체도 아닌 '초임계 이산화탄소', 증기발전 대체한다

김윤수 기자 입력 2020. 11. 7. 06:02 수정 2020. 11.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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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기체 장점 모두 가진 상태, CO2로는 쉽게 구현
"증기 대신해 터빈 돌리면 발전효율 5%p 향상 가능"
美 기업, 이르면 2022년 상업용 대규모 발전소 구축
국내서도 소규모 발전 성공… "10년 후 상용화 목표"

섭씨 영상 31도 근처에서 초임계 상태가 된 이산화탄소./파워(Power) 캡처

‘초임계 이산화탄소(CO2)’를 활용한 차세대 발전(發電) 방식이 국내외에서 연구되고 있다. 현재 발전은 화력, 원자력 등으로 물을 끓여 증기로 만든 후 터빈을 돌리게 하는 방식이다. 초임계 CO2는 증기를 대신해 터빈을 더 효율적으로 돌리고 전기를 만들 수 있는 물질로 기대받고 있다.

7일 박무룡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증기를 초임계 CO2로 대체하면 발전효율을 5%포인트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터빈 장치 등을 포함한 터보 시스템의 크기를 증기발전 대비 20분의 1로 줄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발전시설의 부지면적은 4분의 1로 줄여 구축비용을 절감하고 공간효율을 높일 수 있다.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빠르면 미국에서 내후년에 이 기술을 활용한 상업용 발전소가 지어질 전망이다.

◇액체처럼 압축된 채 기체처럼 흐르는 물질… CO2는 31℃면 가능

초임계는 임계점(critical point)을 넘은 물질의 상태를 말한다. 물질이 끓거나 어는 온도는 압력에 따라 변한다. 액체 상태의 물이 섭씨 영상 100도에서 기체로 바뀌는 건 대기압인 1기압 기준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압력이 낮아져 물이 끓는 온도도 더 낮아진다. 밥이 설익는 이유다. 반대로 압력이 높아지면 더 높은 온도에서 끓는다. 다른 물질도 마찬가지다.

압력과 온도가 계속 높아지다가 임계점이라고 부르는 어느 압력·온도의 경계를 넘어서면 물질은 초임계 상태가 된다. 초임계 상태는 액체와 기체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액체처럼 밀도가 높으면서도 기체처럼 점성이 낮아 자유롭게 흐른다.

온도(가로축)와 압력(세로축)의 변화에 따른 물질의 고체·액체·기체·초임계(supercritical) 상태 영역. 임계점보다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물질은 초임계 상태가 된다./파워(Power) 캡처

초임계 물질이 발전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건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터빈을 잘 돌리려면 증기를 고압으로 압축해야 하는데, 초임계 물질은 어느 정도 고밀도로 압축돼있어 이 과정이 필요없다. 액체는 대신 점성이 높기 때문에 흐르면서 마찰이 많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손실되는 에너지가 많지만, 초임계 물질은 기체 수준으로 낮은 점성을 갖고 있어 손실도 더 적다.

임계점은 물질마다 다르다. 물보다는 CO2가 임계점이 낮아 초임계 상태로 만들기가 쉽다. 물의 임계점은 220기압, 섭씨 영상 374도다. CO2는 70기압, 섭씨 영상 31도다. 임계점이 낮다는 건 물질을 초임계 상태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연료도 줄어들어 발전효율과 경제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초임계 CO2는 증기보다 밀도가 2배 높다. 초임계 CO2를 만들기 위한 액체 CO2는 물보다는 비싸지만 산업에 이용되는 원료 중에서는 싼 편이다. 폭발 위험성과 독성이 없고, 발전 시스템의 금속 부품이 녹스는 일도 물보다 줄일 수 있다.

◇美 기업, 이르면 2022년 300MW급 상용화 목표… 현재 출력은 1000분의 1 수준

에너지 전문매체 ‘파워(Power)’의 작년 기사에 따르면 초임계 CO2를 활용한 발전 시스템은 20세기부터 여러 방식으로 연구돼왔다. 1948년 스위스 과학자가 그중 한 가지 방식으로 첫 특허를 받았다. 초임계 CO2가 유체배관에서 새지 않도록 완전히 밀봉하는 문제, 초임계 CO2의 작은 부피에 맞춰 열교환기 등 기존 장치들을 소형화하는 문제, 초임계 CO2를 여러번 순환시켜 재사용하기 위해 시스템의 구조를 바꿔야 하는 문제, 1초에 3~4만번 회전하는 터빈의 축을 안정화하는 문제 등이 단계적으로 해결되고 있다.

미국 기업 넷파워(NET Power)가 텍사스주에 지은 25MW급 발전 실증 시설./파워(Power) 캡처

미국 샌디아국립연구소(SNL)는 지난 2008년 소규모 발전 시스템을 만들어 실제로 전기를 만드는 일에 도전, 2년 후인 2010년 240킬로와트(kW)급 발전에 성공했다. 전세계 첫 초임계 CO2 발전 사례다. 한 가정이 소비하는 전력이 3kW 정도이므로 80가구가 사용할 전력을 만든 것이다. SNL은 다음 단계로 10메가와트(MW)급 발전에 도전하고 있다. 1MW는 1000kW이므로 발전 규모를 40배 더 확대하는 것이다. 상용화를 위한 규모는 200~300MW급이다. 학계는 kW급 실험으로는 발전 가능 여부만 판단할 수 있고, 발전 시스템의 성능과 후속으로 필요한 기술적 과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상용화 전 중간단계인 10MW급 실험을 거쳐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 기업 넷파워(NET Power)는 이르면 2022년까지 천연가스와 초임계 CO2를 이용하는 300MW급 발전소를 텍사스주에 짓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18년부터 25MW급 발전소부터 구축해 현재 시범 운행하고 있다. 다른 기업 에코젠(Echogen)은 이미 7.5MW급 소형 발전엔진을 상업화한 데이어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태양 에너지와 초임계 CO2를 이용하는 발전 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다만 박 연구원은 에코젠에 대해 "(7.5MW급을)상용화했다고 표현하는데 아직 완전한 성능 확보는 안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도 올해 250kW급 발전 성공… "10년 후 상용화 수준 확대 목표"

우리나라도 박 연구원 연구팀이 미국을 벤치마킹해 10년 후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일 기계연은 박 연구원 연구팀이 국내 최초로 250kW급 시제품을 만들어 발전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발전에 필요한 핵심 기계들은 모두 우리나라 독자 기술로 개발됐다.

한국기계연구원이 개발한 250kW급 초임계 CO2 발전 시스템의 구조./기계연 제공

박 연구원은 "지난 6년간 정부와 두산중공업(034020)으로부터 100억원 이상을 지원받아 이룬 결과"라며 "앞으로 다시 6년 정도 연구해 10MW급 발전을 성공시킬 것"이라고 했다. 200~300MW급의 시범 운행 시점은 지금부터 10년 후로 예상하고 있다. 후속 연구의 규모가 더 커지는 만큼 필요한 연구비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도 카이스트(KAIST), 포스텍(POSTECH)과 함께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기계연이 개발한 시스템과는 다른 방식이다. 원자력연은 차재은 박사 연구팀이 터빈 축을 안정적으로 고정할 수 있는 원심형 터보 압축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지난달 밝혔다. 원자력연은 "난제 중 하나인 (안정적인) 압축기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상용화에 한걸음 더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원심형 터보 압축기./원자력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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