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니까 OO해야지" 부모의 무심한 말 아이들은 상처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이동준 2020. 11. 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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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남이 아니니까 참을 수 없다”

최근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말버릇처럼 하는 말에 뜻밖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 말은 흔히 일본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타이를 때 “네가 장남이니까 참아야지”라는 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와 유사한 말로 “남자니까 참아야지”, “언니니까 더 잘해야지” 등이 있는데 육아, 가사에 쫓겨 무심코 하는 이같은 말이 자녀에겐 큰 상처가 되고 경우에 따라 성인이 돼서도 마음 한 구석에 응어리로 남는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장남이니까”, “장녀잖아”라는 말은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남자니까 OO해야지”

일본 가정에서는 비교적 엄격한 가정교육이 이뤄진다.

‘엔료’(遠慮·앞으로 올 일을 헤아리는 깊은 생각, 겸손 등의 의미)라는 말에서 시작되는 가정교육은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한 예로 한국 엄마들은 아이가 울면 눈물을 닦아주며 달래주지만 일본 엄마들은 “시끄럽게 울면 남에게 피해를 주니 울음을 그쳐라”라고 말한다.

공공장소 등에서 자녀의 자유분방한 행동을 제재하지 않고 방치해 그런 일부 육아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쓰이는 ‘맘충’이란 개념이 일본에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얼핏 일본 엄마들이 매정해서 그런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남에게 피해주는 행동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차가운 질타를 쏟아내는 일본의 사회 분위기상 이같은 교육은 필연적이다. 즉 자녀를 냉정한 시선으로 보호하기 위한 행동인 것이다.

또 지난 30일 NHK에 따르면 이같은 엄격함에 더해 일본에서 첫째로 태어난 장남, 장녀들은 동생보다 더 무거운 책임이 뒤따른다.

이는 한국도 유사하겠지만 일본 부모들은 ‘첫째가 모범을 보여야 동생들도 보고 배운다’라는 생각으로 앞서 언급한 “장남이니까 네가 참아야지”, “언니니까 더 잘해야지” 등의 말을 말버릇처럼 자녀에게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말을 듣고 성장한 이들은 “나는 장남이 아니니까 참을 수 없다”라는 말에 공감하며 그간 억눌렸던 감정과 불합리했던 일 등을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하며 패러디를 이어가고 있다.

한 누리꾼은 “‘오빠(형)니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지’라는 말은 전국의 오빠(형)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들어 질린 말”이라고 분노 섞인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밖에도 “성인이 돼서도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첫째, 남자로 태어난 죄” 등의 푸념 섞인 글과 공감이 이어졌다.

◆부모의 무심한 말 아이들은 상처

최근 이같은 유행에 우스이 마사시 니가타대학 심리학 교수는 “무심한 말에 아이들은 상처를 입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안의 첫째들은 동생이 태어나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첫째들은 부모의 사랑을 지금껏 독차지했지만 동생이 태어나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둘째에게 쏠리고 만다”며 “이에 부모의 사랑이 줄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는 ‘퇴행현상’ 이른바 ‘아기반환’을 보이게 되고 동생을 괴롭히는 일 등이 발생하기 쉽다”고 말했다.

‘퇴행현상’은 일본에만 있는 건 아니다. 예컨대 첫째 아이가 동생을 괴롭히거나 싸우는 한편 갑자기 아기처럼 행동하는 것 등이 퇴행현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큰 애가 갑자기 응석을 부리면 부모는 평소와 다른 모습에 ‘이제 오빠, 언니니까’라는 말을 하게 된다”며 “이 말은 되레 역효과를 불러 ‘부모의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더 큰 불안에 빠뜨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 마음에 여유를 불어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참아라’라는 채찍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며 “동생이 태어나도 사랑받는다는 안정감 있는 심리 상태가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말고 때론 치켜세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이들은 사탕 하나에도 ‘특별한 느낌’을 받는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어린이들에겐 평등한 관계는 없다”며 “특별한 느낌을 받으면 이런 경험을 더 하기 위해 스스로 행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마가 미안해”

한편 젊은 세대의 공감과 함께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반성하는 목소리도 전해졌다.

한 누리꾼은 “큰딸에게 ‘동생은 어리잖아. 언니니까 참아’라고 말하자 딸이 ‘동생이 나쁜데 왜 나한테만 참으라고 해. 좋아서 언니로 태어난 거도 아닌데’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는 사연을 전했다.

또 “매일 독박 육아로 장남에게만 참으라고 강요했다”, “둘째가 태어난 후 첫째를 혼내는 일이 늘었다”는 글도 전해졌다.

“오빠니까 참아”, “언니니까 양보해”, “남자니까 이렇게 해야지” 등의 말은 성인들도 듣기 피곤한 말이다.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는 부모가 만드는 것이다. 우스이 교수는 “사탕 1개에도 특별함이 느껴지면 아이들은 행복해하며 부모 뜻을 따른다”고 조언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사진=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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