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성인지 감수성" 함부로 쓰지 마라

이명희 전국사회부장 2020. 11.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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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 사실을 알아챈다면 그때부터 여러모로 불편해진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의혹으로 치러지는 보궐선거가 누군가에게는 “성인지 감수성 집단학습 기회” 정도로 치부된다.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여성가족부 장관이라는 사실에 절망한다.

이명희 전국사회부장

야권에선 장관 사퇴와 여가부 해체까지 거론했다. 두 사건의 피해자 측도 거세게 반발했다. 오 전 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는 “집단학습 기회이면 나는 학습 교재냐”고 되물었다.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 피해자 측은 “학습이 필요한 건 장관”이라고 응수했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집권여당 인사의 성범죄 의혹으로 공석이 된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800억원이 넘는 예산이 들게 됐다는 지적에 답하면서 나왔다. 공교롭게도 이정옥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된 다음날은 여가부가 기관장 성범죄 신고 전담 창구를 만드는 등 피해자 보호 방안을 발표하기로 한 날이었다.

사실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양성평등의 시각에서 일상생활에서 성별 차이로 인한 차별과 불균형을 감지해내는 민감성’, 기존의 성 역할이나 고정관념으로 형성된 성 인식의 문제에 공감하는 능력을 뜻한다. 1995년 유엔에서 주최한 제4차 세계여성대회 선언문에 이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2018년 4월 대법원이 성범죄 재판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판단 기준으로 처음 제시했다. 학생을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대학교수가 징계에 불복해 낸 소송에서 당시 대법원은 “성희롱 관련 소송을 심리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 장관은 자신의 발언으로 논란이 계속되자 공식 사과했지만, 비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는 “성인지 교육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에 압도돼 그런 표현을 한 것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딱히 우리가 오해한 것은 없다.

이 장관의 발언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말에는 그 사람의 평소 인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설화로 비슷한 논란이 반복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 때문에 여성문제를 다루는 주무부처 수장의 ‘도저히 할 말이 아닌 말’에 절망한다. 국민이 집단학습을 받기에 앞서 특별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상은 그 자신이다. 무엇보다 더불어민주당이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선을 할 경우 후보를 공천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당헌을 뒤집고 갖가지 이유를 들어 내년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밀어붙인 것이 이번 논란의 본질이다.

2016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미셸 오바마의 연설을 다시 꺼내보자.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 <품위 있는 사회>의 저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사회 ‘제도들’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를 ‘품위 있는 사회’로 칭한다. 그는 ‘품위 있는 사회’는 사회가 제도를 통해 구성원들을 존중하는 사회이고,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이 정당한 이유로 모욕감을 느낄 그런 조건들과 싸우는 사회라고 역설한다. 가령, 장애인들이 타인의 선의에 의지해야 하는 사회는 장애인을 모욕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에 의해 어떤 모욕도 당하지 않고 존중받으면서 살 수 있는 품위 있는 사회가 가능하기는 한 걸까?

결국 성차별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이든 지역·빈부·장애 등 모든 차별에 대해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품위 있는 사회로 가는 길이다. ‘관점의 평등(equality of perspectives)’이라고 짚어야 할 게다. ‘어떤 차별’에 대해 ‘몰랐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내년 4월 거대도시 서울·부산 시민들은 시장을 뽑아야 한다. 복지·교육·평등…. 저마다 민생을 들어 수많은 이슈를 내세우겠지만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품위를 갖춰야 시민을 설득할 수 있다. ‘만약에’ 자신과 다른 공동체 밖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기존 생각을 강화하는 누군가가 시장이 된다면 어떨까? 이 사회의 ‘틈’은 더 벌어질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으로 우리 사회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도,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이명희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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