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잘 낳을거 같아""며느리 삼고 싶어" 교내 성인지 감수성, 이대로 괜찮나

한승곤 2020. 11. 9. 13:2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며느리 해라", "보쌈해가고 싶다"
교사가 학생 대상 성폭력 올해만 23건
전문가 "성폭력 범죄 경각심 주는 분위기 형성해야"
자료사진./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강주희 기자] 고등학교 교사가 제자에게 "아이 잘 낳게 생겨서 며느리 삼고 싶다" 등 성적 수치심을 주는 발언 일삼은 사실이 알려지며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교내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한 사건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어 교원을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강화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부장 박재우)는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54) 교사에 대한 항소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250만원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8년 3∼4월 제자에게 "아이를 잘 낳게 생겨서 며느리 삼고 싶다" 등 성적 수치심을 주는 발언을 했다. 이 외에도 제자들에게 "인형으로 만들어서 책상 옆과 침대 앞에 걸어두고 싶다", "보쌈해가고 싶다" 등 그해 11월까지 총 11회에 걸쳐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

재판에서 A씨는 해당 발언의 내용이 왜곡·과장됐다거나, 성적 학대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2심 재판부는 감형 사유로 A씨가 피해자에 사죄한 점, 교육감 표창을 받은 일 있는 점, 10여년 동안 성실히 근무한 점 등을 들었다.

교내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성희롱성 발언한 사건은 과거에도 지속적으로 발생한 바 있다.

앞서 광주의 한 중학교 교사 B씨는 남녀 학생들에게 "성기 세우지 말고 (수학) 식을 세워라" "옆에 있는 애가 치마 입어서 흥분했냐" 등의 발언을 해 해임 처분을 받기도 했다. B씨 또한 "학생들이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등 성적 의도가 없었다는 취지의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연합뉴스

교내에서 학생들이 입는 성폭력 피해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지난 7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중고교 양성평등 의식 및 성희롱·성폭력 실태 연구'에 따르면, 전국 중고생 14만4000여명 중 9.2%는 교사 등 교직원에게 신체적 성희롱 피해 경험했으며, 25.4%는 학교생활에서 성희롱 피해 본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교사가 초·중·고교 내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저지른 성폭력 건수도 23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일 전국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교육청에 신고되거나 교육청이 인지한 피해 사례는 성희롱이 14건, 부적절한 신체 접촉 등 성추행이 10건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가해 교사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다. A씨는 항소심에서 단 250만원의 벌금형만을 선고받았고, B씨의 경우 해당 직에서 해임되기는 했지만, 성희롱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올해 교사가 학생을 대상으로 저지른 성폭력 23건 중 '파면' 처분을 받은 사례는 '속옷 빨래 과제'로 논란을 일으킨 울산 지역 초등학교 교사 1건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외의 사례 3건에 대해서는 정직·감봉·기간제 교사 계약 중도 해지 등의 징계 처분이 내려졌다. 나머지는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경찰에 수사가 의뢰된 상태다.

올해 성폭력 신고 건수는 교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 미투'가 본격화한 지난 2018년(162건), 지난해(140건)에 비해 줄었지만, 여전히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내 성폭력이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가해자가 가해 사실에 대해 일관되게 '의도가 없었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사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1년 발표한 성희롱 예방 안내서에서 성희롱 판단 기준에 대해 "행위자가 아닌 피해자의 관점을 기초로 판단하며, 그 행위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의미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즉, 성희롱 행위자의 의도나 동기가 아닌 피해자가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 강화와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진경 10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의도가 없었다'는 식의 변명을 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잘못이라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다는 뜻"이라며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은 이런 성희롱 발언이 교권 사회에서 일상화되어 있고 만연하다 것이며,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었을 때 적극적으로 신고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 또한 지속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발언을 했을 때 직장과 명예를 잃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주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