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온난화 막으려면 원전 비중 늘려야" 유엔보고서 오류였다

김정수 입력 2020. 11. 9. 15:16 수정 2020. 11. 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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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계 '탈원전 반대' 근거 보고서 오류 첫 확인
IPCC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 요약본에
"온도상승 1.5도 억제 위해 원전 비중 증가" 서술
'비중 감소' 제시한 본문 원본 자료와 안맞아
<한겨레> 본문 총괄 주저자들에 사실 확인 요청
"실제로는 원전 비중 감소..사무국에 알렸다" 밝혀
원자력 발전소 냉각탑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탈원전을 추진하는 쪽에는 2018년 10월 채택된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아이피시시)의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에너지 전환 정책의 디딤돌이자 걸림돌이다.

특별보고서는 2050년까지 전력 생산의 80% 정도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할 경우 지구 평균온도를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상승에 묶어두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디딤돌이다. 특별보고서는 큰 폭의 탈석탄을 제시하면서 원전의 경우 소폭의 발전량 증가를 예상한다. 걸림돌이다. 원자력공학계와 일부 언론 등 찬핵 진영은 원전 확대론 주요 근거로 이를 적극 활용해 왔다. ‘유엔 산하 단체가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면 원전을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다’는 식이다. 특별보고서는 원전을 늘려야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고 결론 내지 않았다. 원전을 늘리라는 권고 역시 하지 않았다.

▶바로가기 : 유엔 기후협의체서 ‘원전 늘려야 한다’고 권고?

<한겨레>는 이 특별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찬핵 진영의 원전 확대 근거가 된 자료 가운데 일부 오류가 있었음을 총괄 주저자들로부터 확인했다. <한겨레>의 오류 확인 요청을 받은 주저자들은 IPCC 사무국에 알려 관련 내용 수정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오류가 확인된 것은 195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승인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 수록된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본(SPM)이다. 이 특별보고서는 지구 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법으로 ‘2050년 탄소 중립’(이산화탄소 순배출량 0)을 국제사회에 공식 제시한 중요 보고서다.

5개장 562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기 때문에 각 나라 정책결정자들을 위해 보고서 맨 앞에 26쪽으로 압축한 요약본을 실었다. 언론 등을 통해 주로 소개되고 인용되는 것은 이 요약본이다.

9일 요약본을 보면,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는 경로를 제시하며 “전력 생산에서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CCS) 활용을 포함한 화석연료와 원자력의 비중(shares)은 대부분 증가하는 것으로 모델링됐다”고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서술은 그 근거로 표시돼 있는 특별보고서 본문의 분석 자료(표 2.7) 내용과 정반대다.

유엔 IPCC의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 요약본. “전력 생산에서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CCS) 활용을 포함한 화석연료와 원자력의 비중(shares)은 대부분 증가하는 것으로 모델링됐다”고 서술돼 있지만, 이는 본문을 요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로 확인됐다. 원자력 발전 비중은 오히려 줄어든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본문 분석 자료는 모두 89개의 1.5도 억제 경로 모델을 종합했다. 오류는 ‘오버슈트(지구 평균온도가 일시적으로 1.5도 이상 오르는 상황)가 없거나, 제한적으로 나타나게 억제하면서 1.5도 목표를 달성하는 경로’를 요약하는 과정에 발생했다.

이 경로에서 전 세계 원전 발전량은 2020년 10.84EJ(엑사줄·1줄의 10억배의 10억배)에서 2050년 21.97EJ로 배 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같은 기간 원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요약본 서술과 달리 12.09%에서 8.1%로 오히려 줄어든다. 2050년까지 전지구적 전력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데, 이것을 6배 가까이 급증(26.28EJ→145.50EJ)한 재생에너지가 감당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2050년 전체 전력 수요에서 태양광을 포함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원전의 9.5배인 77%에 달한다.

유엔 IPCC의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 본문. 원전 발전량은 전체 전력 수요가 증가하면서 10.84EJ에서 21.97EJ로 늘어나지만, 전체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09%에서 8.1%로 줄어든다. 특별보고서 요약본은 “원자력 비중은 대부분 증가한다”고 서술했다. 총괄 주저자들은 사실상 오류를 인정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겨레>는 요약본 서술과 본문 수록 분석 자료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해당 부분 총괄 주저자 3명에게 지난 9월 말부터 이메일 질의를 보내 5차례 답신을 받았다. 답신을 보내온 2명은 요약본 서술이 사실과 다르다는 데 동의했다.

영국 임페리얼대의 유리 로겔 교수는 “실로 불행한 불일치다. 대부분의 시나리오에서 핵 발전이 증가해도 전체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실제 감소한다”고 적었다. 중국 국가발전위원회 에너지자원연구소 장커쥔 박사는 따로 답신이 없었지만, 미국 듀크대 드루 신델 교수는 “동료 저자들과 연락해 이 문제를 논의했다. 로겔 교수가 이미 보낸 답변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로겔 교수는 요약본 서술이 본문 분석 자료와 다르게 된 이유에 대해 “바로잡을 수 있는 불행한 부정확함이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총괄 주저자들 스스로 이 문제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IPCC 사무국에 알려 수정을 추진하고 있음을 알려왔다.

특별보고서는 1.5도 목표 달성을 위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뿐 각 나라에 원전 확대를 직접 권고하거나 국가별 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로겔 교수도 <한겨레>에 “원전 확장 또는 폐지 여부는 해당 사회가 어떤 전략을 선호하느냐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원자력공학계와 언론 등은 지난 2년간 언론 기고와 인터뷰 등을 통해 ‘유엔 보고서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을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다’는 주장을 펴면서 그 근거로 IPCC 특별보고서를 내세워 왔다. 특별보고서 총괄 주저자들이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원전 발전 비중이 줄어든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찬핵 진영의 아전인수격 인용에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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