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데뷔" 미끼로 저당잡힌 삶..포털 플랫폼은 '50년 전 공장'

박준용 입력 2020. 11. 10. 05:06 수정 2020. 11. 1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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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50년, 여기 다시 전태일들]
2부 청년 전태일, 세밀화로 보다 -프리랜서 웹툰 작가들의 삶
①'슈퍼갑' 플랫폼, 꿈을 삼키다
프리랜서 웹툰 작가들의 삶. 그래픽 한겨레.

전태일 시대인 1970년대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기업과 공장이 몰려 있는 도시로 향했다. 요즘 청년들은 좁은 취업문 탓에 미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혹은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웹툰 작가 같은 콘텐츠 창작자가 되길 꿈꾸며 포털 사이트와 같은 플랫폼을 찾는다. 전태일 시대 청년들이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사회에 의해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렸다면, 요즘 청년들은 영상이나 웹툰 콘텐츠 이용자들이 몰려 있는 무대인 유튜브와 네이버, 다음카카오에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갖다 바친다. <한겨레> 기획 ‘그 후 50년, 여기 다시 전태일들’ 2부는 웹툰 작가와 지망생 22명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포털 등 디지털 플랫폼을 중심으로 구축된 웹툰 세계가 어떻게 청년들의 꿈과 노동을 착취하는지 들여다본다. 2부 1회는 ‘슈퍼갑’ 웹툰 플랫폼 얘기다.

‘웹툰 작가’. 20대 강성희(가명)에게 이 말은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였다. 늦은 밤 하굣길에 웹툰을 보며 걷다 눈물을 쏟았던 고등학생 시절 어느 날, 강성희는 웹툰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 꿈을 위해 지역의 한 대학 만화 전공 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주임 교수는 웹툰에 관심이 없었고, 휴강도 잦았다. 사회가 강성희에게 안긴 첫번째 실망이었다. 대학에선 배울 게 없을 것 같아 자퇴한 뒤 독학으로 웹툰을 공부했다. 이후 1년 동안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모은 1천만원을 들고 지난 2월 서울로 이주했다. 실무를 하며 웹툰을 배우기 위해 웹툰 작가의 보조작가(어시스턴트)로 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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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온 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웹툰 에이전시 ㄱ사 입사 면접에서 강성희는 “내가 큰 플랫폼에 데뷔시켜줄게”라는 말을 들었다. 에이전시는 웹툰 플랫폼과 작가를 연결해주고 작품 기획과 작가 관리를 맡는 회사다. 한 플랫폼과 협업해 웹툰을 기획해온 ㄱ사 대표는 “일손이 급하다”며 강성희에게 바로 출근하라고 말했다. 바로 태블릿피시와 작업 도구를 손에 쥐여줬다. 그곳에서 강성희는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을 웹툰으로 그리는 일을 맡았다. 대표는 저작권이나 수익 분배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 없이 강성희에게 에이전시 전속 작가로 채용해 월 200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플랫폼 데뷔’ 말하더니 “너 진짜 못 그리네”

너무 쉽게 일이 풀린 걸까. 곧 두번째 실망이 강성희를 찾아왔다. 입사 뒤 몇주가 지나도 대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웹툰을 그리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통상 원작 소설을 만화화하는 웹툰 작가들은 작품의 방향에 대해 원작자나 기획자와 논의한다. 하지만 ㄱ사는 그저 강성희에게 원작 소설을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강성희는 나름 배운 걸 쥐어짜 콘티 짜기, 채색, 펜 터치, 배경 등의 작업을 보조작가 없이 혼자 도맡아 했다.

곧 작품 평가를 가장한 괴롭힘이 시작됐다. 대표와 웹툰 피디가 주도했다. 웹툰 피디는 웹툰을 기획하고 작가의 작업물과 일정 등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대표는 직원들이 다 보는 곳에서 강성희에게 쏘아붙였다. “너 진짜 못 그리네.” 실력이 모자라서 그렇다고 자책한 강성희는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하는 부분을 고치고 또 고쳤다. 하지만 웹툰 피디는 “다른 경력 있는 작가를 제치고 널 뽑은 건데 그러지 말 걸 그랬다”고 했다. 회사의 또 다른 간부는 “너 같은 애 그림을 누가 돈 주고 보겠느냐”고 모욕을 줬다. 이런 대우가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데뷔의 희망을 품고 속으로 삭였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쏟아지는 수정 지시에 작업 시간은 점점 늘어갔다. 매일 14시간 동안 아이디어를 짜고,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했다. 하루 1~2시간 잘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대표는 결국 “너 같은 애가 무슨 데뷔냐”라며 연재 기회를 주기로 한 약속을 없던 일로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강성희의 웹툰 작업실은 어느새 “숨쉬기도 어려운 공간”이 됐다.

입사 4개월이 지나던 어느 밤, 집에서 남은 작업을 하던 강성희는 갑자기 눈앞이 희끄무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가슴도 조여왔다. 잔기침이 이어졌고 가만히 있어도 숨이 가빴다. 같이 사는 친구가 발작하는 강성희를 보고 놀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스트레스성 위경련이라고 했다. 가까스로 정신이 든 강성희가 다시 일어나 링거를 꽂은 채 일하는 모습을 보더니 친구가 말했다. “너 그러다 죽어.”

문득 현실을 자각한 강성희는 퇴사를 결심했다. 넉달 동안의 임금과 작업료 명목으로 겨우 400만원 남짓 손에 쥐었다. 월 200만원 약속은 “네가 책임도 못 지고 도망쳤으니 영업 방해야”라는 대표의 말과 함께 없던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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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데뷔 확정” 네이버 쪽 말에 휴학까지 했는데…

웹툰 플랫폼과 에이전시가 아마추어 작가에게 ‘데뷔 공수표’를 날리며 노동 착취를 하는 일은 강성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웹툰 작가 지망생 정영준(가명·28)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한 대학교 공과대 3학년 학생이던 정영준은 2016년 인터넷 커뮤니티 여러곳에 습작 웹툰을 올렸다.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작가 지망생들의 습작 웹툰들 사이에서도 정영준의 작품은 단연 돋보였고 인기몰이를 했다.

같은 해 5월, 이 작품으로 웹툰 공모전을 준비하던 정영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이버 웹툰 담당자인데요. 데뷔를 시켜드리려고 해요. 거의 데뷔 확정이에요.”

네이버 담당자는 정영준의 작품을 관심 있게 봤다고 했다. 정영준은 뛸 듯이 기뻤다. 준비하던 웹툰 공모전에서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그때도 네이버 담당자는 ‘거의 데뷔 확정’이라는 말을 거듭하며 정영준을 안심시켰다. 곧 정영준은 네이버 본사에서 웹툰 피디와 미팅까지 하게 됐다. 네이버 피디는 정영준에게 “저희가 키워드리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네이버 피디는 정영준과 미팅에서 한가지 제안을 했다. 담당자가 관심 있게 봤다는 습작 웹툰과는 다른 콘셉트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누리꾼들에게 화제가 됐던 습작 웹툰은 스토리 위주였는데, 피디는 코미디 요소를 강조한 웹툰을 그려보자고 제안했다. 정영준은 이 요청을 받아들여 휴학계를 내고 본격적인 웹툰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몇달 동안 네이버 쪽이 요청한 웹툰 원고 7~8회 분량을 그려서 보냈다. 1회 원고마다 최소 1~2주 동안 작업을 해야 했다.

원고를 본 네이버 담당자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러면서도 ‘작업해달라’는 말은 계속했다. 네이버 담당자는 그해 12월부터 아마추어 작가들이 자신의 웹툰 작품을 올리는 웹 플랫폼인 네이버 ‘도전만화’란에 원고를 연재하고 누리꾼들의 평가를 받아보자고 했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정영준은 네이버 쪽 제안대로 ‘도전만화’란에 넉달 동안 매주 웹툰을 올렸다.

네이버 담당자의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한 건 2017년 4월께였다. 처음엔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잘 하지 않더니, 결국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많은 걸 원했던 게 아닙니다. ‘작가님, 데뷔가 어려울 것 같다’ 이 한마디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네이버 쪽은 정영준의 말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영준 작가를 두고 “데뷔를 약속한 적 없다. 먼저 아마추어 ‘도전만화’란에 투고해보라고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정영준은 네이버 담당자와 주고받은 작품 평가와 수정 요청 등의 메시지를 보여주며 “나는 데뷔를 약속받았는데, 네이버 쪽 제안이 없었다면 왜 아마추어 ‘도전만화’란에 투고를 했겠느냐”고 재반박했다. 그렇게 1년이 흘러가는 동안, 결과적으로 정영준은 어떠한 경제적 보조도 받지 못했다.

네이버 쪽은 이에 대해 다시 “작가들과 연재 여부를 논의하는 건 통상적인 절차이며 미팅 때 ‘편집회의를 통해 연재가 결정된다’는 부분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플랫폼 “일단 해 오라” 요구…노동이 되지 못한 작업

정영준의 사례처럼 웹툰 플랫폼이 데뷔를 위해 요구한 원고를 작업하느라 수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은 생활고에 직면하게 된다. 4년차 웹툰 작가 오현영(가명·29)은 중소규모 웹툰 플랫폼에 데뷔하기 전 업계 최상위권 플랫폼 ㄴ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역시 오현영의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든다는 거였다. ㄴ사 쪽은 “가능성을 봤다. 원고를 매주 한편 투고해달라”고 했다.

이후 오현영은 매주 꼬박 한편씩 웹툰을 그려 ㄴ사에 보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와 부업을 하면서 공모전에 낼 웹툰을 그리던 오현영은, ㄴ사의 요구에 응해 주 1회 원고를 보내게 되면서 도저히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 없게 됐다. 주 1회 마감은 베테랑 전업 작가들도 보조작가 없이 혼자 맡기 버거워한다. 이 때문에 오현영은 ㄴ사의 작업 요청에 응한 이후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그렇게 꼬박 넉달 동안 ㄴ사가 원하는 웹툰을 그려 보냈다. 데뷔 약속은 아니었지만, “가능성”이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희망을 걸면서 버텼다.

하지만 ㄴ사 역시 곧 반응이 미지근해지더니 더는 응답이 오지 않았다. 결국 오현영은 자신의 사정을 이메일로 상세히 적어 ㄴ사 쪽에 보냈다. 넉달 동안 요청대로 원고를 보냈고, 경제적 문제로 더 버티기 어려우니 계속할 건지 말 건지 결정을 내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곧 돌아온 답변은 오현영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작가님께서 생활이 어려우시다면 다른 플랫폼에 가셔도 저희가 잡을 수는 없어요.’ 오현영의 넉달 노동은 한순간 물거품이 됐다.

이처럼 웹툰 플랫폼과 에이전시는 스타 작가를 꿈꾸는 웹툰 작가와 지망생들의 미래를 저당 잡는다. 작업이 되지 못한 노동을 요구하며 이들의 시간과 노력을 착취한다. “일단 해 오라”, “몇회 작업을 해 오면 보고 판단하겠다”, “연재하려면 비축분을 쌓으라”, 요청을 빙자한 사실상의 업무 지시가 내려온다. 이들이 요구하는 작업 기간은 짧으면 몇주에서 길면 몇달까지 걸린다. 정식 연재가 되지 않아도 수고비 명목의 ‘샘플비’ 몇만원이라도 쥐여주는 대형 플랫폼도 있지만, 일부일 뿐이다. 웹툰 플랫폼은 이들에게 ‘지시’를 하면서도 보상이 없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계약하지도 않을 거면서 제가 연재 이야기를 꺼내면 저쪽에서 자꾸 피하고, 그러면서 원고 수정은 또 요구하는 거죠. 솔직히 집에서 지원해주지 않으면 (정식 계약까지 가기 전) 단계를 버티기가 어렵죠. 작가 지망생들도 생활을 해야 하는데….” 웹툰 작가 장누리(가명)의 말이다.

한 웹툰작가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수십만명 데뷔 꿈꾸지만…연재 작가 수는 4600여명뿐

웹툰 작가와 지망생들은 플랫폼과 에이전시가 대놓고 ‘갑질’을 할 수 있는 배경으로 ‘바늘구멍 등용문’을 지목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펴낸 ‘2019 웹툰사업체 실태조사’를 보면, 페이지뷰와 방문자 수 기준 상위 4개 플랫폼(네이버 웹툰, 카카오페이지, 레진코믹스, 다음 웹툰)의 독점·비독점 연재 작가 수는 1346명 수준이다. 소규모 회사를 포함한 주요 26개 플랫폼을 모두 더해도 독점·비독점 연재 작가 수는 4684명에 그친다. 이는 한 작품을 여러 플랫폼에 연재하는 비독점 작가가 중복 계산된 집계여서 실제 안정적 연재를 이어가는 작가 수는 더 적다. 하지만 네이버 웹툰의 신인 발굴 코너인 ‘도전만화’ 한곳만 해도 최소 10만명(2014년 네이버 자체 집계 기준 14만명) 이상의 예비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올리고 있다. 업계에선 웹툰 작가 지망생이 수십만명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플랫폼과 에이전시의 ‘갑질’에 상처받은 지망생들이 나가떨어져도 곧 ‘대체자’가 그 자리를 채우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이른바 ‘노예 계약’ 관행까지 부른다. 7년차 일러스트 작가이자 아마추어 웹툰 작가 강수영(가명·32)이 그런 경우다. 강수영은 2년 전 웹툰 작가 플랫폼을 보유한 한 에이전시와 연재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순수익에 대한 배분을 작가에게 20%만 하기로 계약했다. 통상 작가와 플랫폼이 5 대 5로 계약하는 관행을 고려하면, 강수영에게 크게 불리한 계약이었다. 나중에 주변 작가들에게 상황을 들은 뒤에야 불리한 계약임을 알게 된 강수영은 “아무리 신인이지만 너무하다. 계약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에이전시는 이를 무시했다. 강수영의 항의가 이어지자 에이전시는 보조작가 구하는 비용을 약간 보전해주는 것으로 합의하자고 했다. 그 뒤 에이전시는 수정 지시를 거듭하더니 어느 날 “작업 속도가 느려서 함께 못 할 것 같다”며 일방적으로 서류 한장을 보내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강수영은 작업한 원고의 고료 일부를 받았지만, 지난 8개월 동안 데뷔를 꿈꾸며 작업한 결과물과 노동은 허망하게 사라졌다.

7년차 이해수(가명·32) 작가와 5년차 여상연(가명·31) 작가도 신인 시절 데뷔를 위해 회당 10만원, 월 40만원을 받는 계약을 했다. 당시 신인급 작가에게 주어지는 금액이 회당 40만원 수준이었는데, 4분의 1 금액으로 계약한 것이다. 심지어 2차 저작권 등은 모두 플랫폼이 가져가는 계약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9 웹툰 작가 실태조사’를 보면, 2017년 이후 데뷔한 작가(조사 대상 136명) 가운데 61.8%가 ‘불공정 계약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억대 연봉’ 스타 작가는 극소수…‘뒤집힌 압정형’ 구조

물론 웹툰 플랫폼이 주류가 되면서 부정적인 영향만 있는 건 아니다. 웹툰 플랫폼 등장 이전에는 만화가가 되려면 기성 작가의 화실에서 ‘도제식’ 교육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었다. 여기서도 착취가 빈번했다. 8년 전 한 유명 작가 화실 생활을 경험했던 이지영(28·가명)은 “문하생 시절 작가님이 본인 마감 전까지 문하생이 잠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마감을 앞두고는 새벽 3~4시까지 작업했다. 그러면서도 작가님은 ‘너는 재능이 없다’며 상처 주는 말을 했다”며 “문하생과 보조작가 등 화실 식구 6명의 식비와 공금으로 30만원만 쥐여줬다. 특히 경력이 쌓인 보조작가가 아닌 문하생에게는 월급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20년 동안 만화 제작 사업을 해온 ㅇ씨는 “스승한테 밉보이면 데뷔 못 한다는 말은 지금은 적용되지 않는다. 네이버와 카카오페이지 에이전시들이 적극적으로 작가를 찾는다”며 “(플랫폼의 역할로) 콘텐츠 수요가 늘었고, 국외 등 작가가 작품을 보여주면서 설 수 있는 자리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신인 작가들의 삶의 지표는 나아지지 않았다. ‘2019 웹툰 작가 실태조사’ 결과, 3년차 이하 작가 113명 가운데 절반(49%)에 가까운 이가 1년 총수입이 ‘2천만원 이하’라고 답했다. 통상 작가들이 수입의 40%를 프로그램이나 장비 구매, 어시스턴트 고용과 자료 수집 등에 쓴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저 생계비조차 되지 않는 수입이다. 지망생들은 더 심각하다. 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1년 사이 활동한 웹툰 어시스턴트의 연평균 총수입은 659만원에 그쳤다. 반면 네이버 웹툰은 2018년 소속 플랫폼 연재 웹툰 작가들의 평균 수입이 2억2천여만원이라고 발표했다. 이 때문일까. 지난해 교육부와 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서 초등학생 장래희망 순위 11위는 웹툰 작가였다.

웹툰 작가들은 이런 업계 수입 구조를 ‘뒤집힌 압정형’이라고 부른다. 바닥에 깔린 압정의 머리 부분은 연재할 플랫폼에 목말라하며 착취를 감내하는 아마추어 작가와 지망생들을 의미한다. ‘스타 작가’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살 만한’ 웹툰 작가마저 압정의 얇은 촉만큼이나 소수에 불과하다.

현실과 다른 사회 인식에 웹툰 작가 지망생들은 몸서리를 친다. “제가 상처만 받고 (갑질을 한) 에이전시에서 나간 뒤에 그곳에서 또 다음 작가를 뽑은 걸 봤어요. 그 작가도 데뷔만 바라보면서 저처럼 고생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저 세 글자만 말해주고 싶어요. 도망쳐!” ‘웹툰 작가’라는 말의 설렘이 더는 사라지고 말았다는 강성희가 절박한 표정으로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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