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원전 대안 '경주 혁신원자력 R&D' 친원전·탈원전 진영 모두 반발
원자력硏, 2026년 경주 감포 혁신원자력 R&D 단지 구축 계획
‘탈원전 지지’ 정의당 대전시당 "감포서 원전 연구 확대 우려"
‘탈원전 반대’ 원자력연 노조 "‘원치 않는 파견 없다’ 명문화하라"
원자력연 "2026년 사업 구체화… 당장 명확한 입장 못 밝혀"
탈원전 정책으로 축소된 대형원전 연구개발(R&D) 사업의 대안으로 추진 중인 ‘혁신원자력’ R&D 사업 계획을 두고 친원전뿐만 아니라 탈원전 진영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경주 감포읍에 혁신원자력 연구단지를 세워 2026년부터 250여명의 인력을 투입, 2030년까지 500명 규모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혁신원자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될지는 연구과제들이 정해질 2026년이 돼야 알 수 있다. 대형원전보다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소형원자로(SMR) 등이 연구될 것으로 예상된다.
혁신원자력 사업은 현재 사실상 중단된 차세대 대형원전 ‘파이로프로세싱·소듐냉각고속로(파이로·SFR)’ R&D 사업의 공백을 메울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파이로·SFR은 1997년부터 20년간 8000억원이 투입된 원자력연의 핵심 연구과제였지만 지난 2018년 4월 전면 재검토화가 결정됐다. 이 여파로 2017년 5200억원이었던 원자력연의 한해 사업 규모는 작년 4300억원으로 2년간 17% 줄었다.
탈원전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업이지만 탈원전 정책을 지지하는 쪽에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남가현 정의당 대전시당 위원장은 9일 "경주에서 구체적으로 뭘 연구하겠다는 건지 아직 공개된 게 없다"며 "새로운 대형원전 연구를 수행할 시설이 대전에 부족해서 경주로 이전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내부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혁신원자력 사업이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형원전도 연구과제에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혁신원자력의 연구과제 중 하나로 거론되는 소형원자로에 대해서도 남 위원장은 "소형원자로도 핵폐기물과 방사능 유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대형원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대전에서 안 되는 건 경주에서도 안 된다"고 했다.
이같은 ‘불신’은 "원자력연이 원전 해체와 방사능 안전 관리가 아니라 여전히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는 측면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정의당 대전시당과 대전충남녹색연합·대전환경운동연합 등 원자력연의 소재지인 대전 지역단체들은 지난달 30일 원자력연 본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자력연이 핵폐기물을 발생시키는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의 재가동과, 누구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파이로·SFR 연구를 계속 하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원자력연은 "경주 감포에서 무슨 연구를 할지 정해지지 않아 이들이 제기하는 우려에 대해 아직 입장을 밝힐 수 없다"며 "사업 구체화 시점을 2026년보다 더 앞당기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들과 달리 탈원전 정책 폐기를 주장하는 원자력연 노동조합도 이유는 다르지만 혁신원자력 사업을 반대하고 있다. 노조는 파이로·SFR의 대안이 아니라 원래 사업의 복구를 요구한다. 또 경주에 수백명 규모가 들어갈 연구단지가 세워지면 대전에 경제적 기반을 둔 연구자들이 원치 않는 파견을 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탈원전 정책의 일환인 이 사업을 강행할 경우 그 피해가 연구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강권호 원자력연 노조 지부장은 이날 "연구자들의 근로환경과 직접 연관된 사업 계획을 연구원측이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9월 노조원 75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403명(53%)이 ‘본 사업은 연구원의 미래에 긍정적이지 않다’고 응답했다. 672명(89%)은 ‘사업 추진과 관련해 내부구성원들과의 소통이 부족하다’고 했다. 정의당 대전시당도 "원자력연은 내부 구성원들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걸로 아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며 노조측을 지지하고 있다.
원자력연은 "본인 동의없는 전출은 없다"며 연구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퇴직자로 인해 생기는 결원을 신규인력으로 보충하고, 이 신규인력을 경주로 보낸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 약속을 명문화하라는 노조의 요구에 원자력연은 "사업이 구체화되지 않아 인력운용계획도 당장 확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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