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추미애-윤석열의 동반퇴진 / 김태규

김태규 2020. 11. 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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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김태규

법조팀장

영화 <비트>의 임창정 대사를 빌리자면, 올해 대검찰청 국정감사 풍경은 ‘17대 1’의 싸움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여권 의원들의 공세에 혈혈단신으로 맞서며 한치로 물러서지 않았다.(더불어민주당 법사위원이 11명, 열린민주당이 1명이니 정확히는 12대 1이다) 날을 넘기면서까지 그가 남긴 숱한 명장면 중 언론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한 대목이 있었다.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위법하다고 강조했는데 ‘부하’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윤 총장은 이렇게 해명했다. “저는 평소에 부하라는 말을 안 쓴다.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내 명을 거역한다’는 둥 이렇게 얘기를 하시니까 그건 부하한테나 하는 얘기고….” 올 초 검사장 인사에 총장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자, 인사 의견을 내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은 윤 총장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검찰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했다고 했던 추 장관의 발언을 가리킨 것이다. 올해 1월9일의 일로, 윤 총장은 약 10달 전에 있었던 추 장관의 발언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었던 셈이다. 부부싸움에서도 몇달 전 얘기를 곱씹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진다.

조국 수사 이후 지금의 집권세력과 윤 총장 사이는 틀어졌고 불신은 깊어졌다. 추 장관의 1차 수사지휘권 발동을 불렀던 검·언 유착 의혹 수사를 둘러싼 충돌도 지독한 상호불신의 결과였다. 한동훈 검사장이 결백하다면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될 것을, 윤 총장은 규정을 무시하고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강행하며 수사를 막으려 했다. ‘측근 프레임’으로 한 검사장과 본인을 겨냥한 기획수사라고 의심한 것이다.

과도한 의심과 불신의 발로는 추 장관도 못지않다. 지난달 16일 김봉현씨가 “야권 정치인 로비 수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자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여권 인사와 달리 야권 정치인은 철저히 수사하도록 지휘하지 않았다는 의혹에서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감찰을 지시하고 총장의 지휘권까지 박탈했다. 윤 총장은 올해 5월 야당 정치인 로비 건을 보고받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밝힌 상태였다. 여당 중진 출신 청와대 정무수석과, 끈 떨어진 야당 전직 대표의 측근이면서 총선 낙선자. 수사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겠는가. ‘수사지휘의 편파성’은 무 자르듯 가를 수 없는 사안인데도 추 장관은 3개월 만에 두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윤 총장 가족·측근 관련 사건 4건까지 한꺼번에 얹었다. ‘이미 윤 총장이 회피한 사건에 왜 수사지휘를 했느냐’는 질문에 법무부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이건 감정싸움이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수용했던 윤 총장은 국감장에서의 ‘폭주’를 추 장관의 절제되지 않은 권한 행사에서 찾는 듯하다. 추 장관은 대전지검이 착수한 원전 수사를 공개 비판하며 윤 총장의 특수활동비 집행을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중립성을 잃은 ‘정치인 총장’의 행보를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장관과 총장이 공격하고 반격하는 혼돈의 나날이 지속되고 있다.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본인 행동의 이유를 상대의 ‘악행’에서 찾는다. 상대가 있어야 내가 존재하는 ‘배타적 공생관계’다. 끝이 안 보인다.

지금의 혼란은 제도가 아닌 사람의 문제다. 일방의 승리로 인식돼서도 안 되기에 공생관계인 두 사람이 함께 물러나야 한다. 추 장관은 윤 총장과의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며 조국 사건 이후 상황 관리에 실패했다. 윤 총장은 무엇보다 ‘정치인 총장’을 자처하며 ‘레드라인’을 넘어섰다.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 “정치할 생각이 없다”며 손사래 치던 윤석열과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는 윤석열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여권의 총공격에 본인과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행위’라고 항변할지는 모르겠으나, 정치권 입문 가능성을 열어두고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발돋움한 검찰총장이 공정하게 수사지휘를 할 거라는 믿음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

검찰총장은 국무위원이 아니므로 탄핵이 아닌 한 임기 중 해임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윤 총장은 임명권자가 바란다면 그만둘 수도 있다는 뜻을 사석에서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며 소임을 다하라’고 했다”는 윤 총장의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제 임명권자가 결단해야 한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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