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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그땐 '검찰 특활비' 수사하자더니

장슬기 기자 입력 2020. 11. 1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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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특활비 상납사건 땐 검찰 특활비로 맞불 놓은 조선일보, 최근 대검 특활비 조사지시에 "치졸하다" 비판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정부 부처의 특수활동비가 논란이 된 건 박근혜 탄핵 국면 때다. 박근혜 정권 청와대가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고, 국고손실·뇌물 등 혐의로 박근혜씨 등 관련자들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국정원뿐 아니라 청와대, 국회, 법무부, 검찰 등 주요 국가기관에서 영수증 없이 세금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특활비를 폐지·축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현 정부 청와대도 공직자들이 쌈짓돈으로 쓰는 특활비를 대폭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언론에는 국민의 입장에서 특활비가 꼭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는 현 정부가 출범 초 “특활비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국정원뿐”이라며 “나머지 기관들은 '기밀유지가 필요한 수사' 등 이유를 대지만 이번처럼 부하 격려금 등으로 사용되는 게 태반이고 일부 국회 상임위원장들이 개인 자금으로 빼돌린 사례도 적발됐다”고 비판했다. '돈봉투 회식' 당사자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사의를 표명한 다음날인 2017년 5월19일 사설이다.

국정원이 청와대에 특활비를 상납한 것이 문제라면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고, 같은 논리로 검찰과 법무부의 특활비에도 문제가 있다면 수사해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전 정권 청와대가 받은 국정원 특활비 사건 관련자들이 처벌받는 것에 대해 “혁명이냐”(사설), “쿠데타라도 났나”(김대중 칼럼) 등의 강경한 표현으로 비판하면서 국정원이 아닌 다른 곳의 특활비는 모두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특활비 수사에 맞불을 놓는 작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 2017년 11월21일 조선일보 사설

같은해 11월21일 사설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매년 10억원씩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쓴 것이 뇌물이면 법무부가 매년 20~30억씩 검찰 돈을 받아쓴 건 무언가”라며 검찰과 법무부의 특활비 문제도 함께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같은달 노무현·김대중 정부의 특활비도 수사해야 한다며 '국정원·검찰의 특활비 부정 유용 의혹 사건' 수사를 위한 특검법을 발의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검찰이 적폐청산을 이유로 전직 대통령들을 수사하던 시기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2018년 1월18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지금 보도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 측 혐의 중엔 도를 넘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정치 보복과 비리 수사는 종이 한 장 차이”라며 “국정원 특활비 문제에서 자유로운 정권이 과연 얼마나 되겠나”라고 주장했다. 도를 넘는 것이 보이는데도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이다.

▲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2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국정원이 특활비 상납으로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갔더니 검찰의 특활비 문제를 수사해야 한다며 소위 '물타기'하던 조선일보가 최근 정반대의 논조를 폈다.

지난 9일 사설 제목을 “與 이번엔 尹 특활비 조사, 치졸하다”로 뽑고 추 장관이 윤 총장 특활비를 조사하라고 대검 감찰부에 지시한 사실을 비판했다. 추 장관이 최근 윤 총장과 각을 세워온 맥락을 담았지만 “치졸하다”는 말까지 쓰며 강하게 비판했다. 3년전에는 검찰의 특활비를 문제 삼았지만 최근 검찰을 바라보는 입장이 바뀌자 뉘앙스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지난 10일 기사에선 법조계에서 나오는 주장이라며 검찰의 특활비뿐 아니라 청와대와 국정원의 특활비도 검증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와 국정원이 정보공개법에 따라 특활비 전체 규모만 국회와 기획재정부를 통해 공개했을 뿐 집행 내역이 비밀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발언 “(법무부의 검찰 특활비 전용이) 예전 청와대의 (국정원) 특활비 상납 문제와 다를 것이 뭐냐”를 인용했다.

▲ 10일 조선일보 기사

매일경제는 10일 한 논설위원의 칼럼 “尹총장 특활비까지 문제삼은 與…청와대 특활비도 검증해라”에서 야당과 위에서 언급한 조선일보 기사와 사설 내용을 녹여냈다.

최근 여당은 대검, 야당은 법무부 특활비에 대해 현장검증까지 진행했다. 정기적인 특활비 부분만 확인했기 때문에 의혹이 남았다고 주장하지만 현재로선 검찰과 법무부 모두 특활비가 부적절하게 쓰인 증거가 나타나진 않았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판을 크게 키웠지만 근거없는 의혹제기로 특활비 현장검증은 맹탕으로 끝났다. 사실 특활비는 증빙 없는 돈이기 때문에 갑자기 현장검증을 한다고 비위사실이 드러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법무부의 특활비를 두고 이미 유죄판결이 나온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과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을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하는 것도 문제지만 언론까지 이에 동조하는 모습은 현실 왜곡에 가깝다. 결국 이번 특활비 논란은 세금을 제대로 쓰자는 취지보다는 추·윤 갈등의 연장선으로 악용된 측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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