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 금 화합물 먹고 순금 알갱이 내놓는 '박테리아 연금술'

이현경 기자 2020. 11.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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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중력 영향 첫 테스트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실험한 결과 스핑고모나스 데시카빌리스라는 박테리아는 무중력 환경에서도 금속 생성 활동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은 이 박테리아를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것이다. 유럽우주국(ESA) 제공

2019년 7월 25일(현지시간) 미국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우주화물선  ‘드래건’이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를 출발해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향했다. 드래건에는 ISS에 체류 중인 우주비행사들에게 보급할 물품 총 4.2t이 실렸다. 보급품의 절반이 넘는 2.2t은 과학 실험 장비였다.

그중에는 박테리아가 달과 같은 미세중력 환경에서 암석을 소화해 희토류 원소를 만들어내는지 시험하는 '바이오락(BioRock)’도 포함됐다. 우주에서 박테리아의 ‘채굴’ 활동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시험이 진행된 건 처음이다.  

연구책임자인 찰스 코켈 영국 에든버러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영국 우주생물학센터장)는 이달 11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그 결과를 처음 공개하며 “달이나 화성에 인류가 거주할 기지를 건설할  때 지구에서 원자재를 가져갈 필요 없이 행성에서 박테리아가 만든 희토류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박테리아가 무중력에서도 희토류 생산" 

최근 박테리아를 이용해 철, 금 같은 금속을 추출하는 바이오마이닝(미생물 제련)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도 전 세계 구리와 금의 약 20%가 이 방식으로 생산된다. 김진욱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박테리아 몸속에는 전자를 주고받으며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관이 있다"며 "전자를 주고받을 때 구리나 금 같은 원소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금속이 생성된다”고 설명했다. 

호주 애들레이드대 연구팀은 2009년 흙에 사는 '쿠프리아비두스 메탈리두란스'라는 박테리아가 독성을 띠는 금 화합물을 먹은 뒤 순금 알갱이를 똥으로 배설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내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공개했다. 이후 이 박테리아가 ‘CupA’라는 효소를 이용해 중금속 덩어리를 분해하면서 구리와 금을 내놓고, 그 과정에서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어 살아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ISS의 바이오락 실험에는 이 박테리아를 포함해 광물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테리아 3종이 사용됐다. 코켈 교수팀은 세로 4.2cm인 작은 생물 반응기 6개를 만들고 여기에 박테리아와 현무암을 담았다. 현무암은 달과 화성 표면을 덮고 있는 레골리스와 가장 유사하다. ISS에 도착한 생물 반응기는 원심분리기에서 다양한 속도로 회전하는 시험을 거쳤다. 

코켈 교수는 “박테리아가 지구보다 중력이 작은 달이나 화성에서도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금속을 생산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며 “회전 속도를 달리해 지구 중력과 미세중력, 무중력의 세 가지 상태에서 실험했다”고 설명했다. 화성에서는 지구 중력의 약 3분의 1이, 달에서는 약 6분의 1이 작용한다. 

코켈 교수는 BBC에 “‘스핑고모나스 데시카빌리스’는 무중력 상태에서도 활발히 반응을 일으켜 희토류 원소인 란타넘, 네오디뮴, 세륨을 추출했다”며 “바이오락은 우주에서 진행된 최초의 미생물 채굴 실험”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두 박테리아는 지구에서보다 금속 생산 능력이 떨어졌다.  

유럽우주국(ESA) 소속 우주인이 2019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중력에 따른 박테리아의 활동을 알아보는 '바이오락(BioRock)'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유럽우주국(ESA) 제공

●남극 빙하, 심해 열수구에서도 바이오마이닝 가능 

미생물의 채굴 활동은 우주 외에도 바다 깊숙한 곳에서도 일어난다. 지난해 김 교수는 극지연구소와 공동으로 남극 라르센C 빙붕 인근 바다에서 채집한 해양퇴적물에서 철을 만들어내는 미생물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한국 쇄빙선인 아라온호가 2013년 항해 당시 추출한 2.38m 길이 빙하 코어에서 베타프로테오박테리아와 델타프로테오박테리아 강(綱)에 속하는 박테리아가 철 이온을 만드는 환원 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한 것이다.

해저 수 천 m 깊이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해저지형인 심해 열수구 주변에 사는 박테리아는 철, 황, 구리를 자철석으로 바꾸기도 한다. 김 교수는 “자연적으로 금속이 형성되려면 온도, 압력, 수소이온농도(pH) 등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한데, 박테리아가 이런 자연 법칙을 깨고 저온과 고온, 무중력이 지배하는 우주와 해양 같은 극한 환경에서 금속을 만들어낸다”며 “박테리아를 이용한 바이오마이닝 기술은 미래 자원 확보 측면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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