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설명서] 전동킥보드 안전 규제 거꾸로 풀어진 이유 설명해 드림
전동킥보드 한 번 쯤 타 보셨나요? 어렸을 때 타던 씽씽이 생각이 나서 재밌기도 하고, 전기 모터가 달려 있어서 원하는 곳까지 꽤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제가 취재를 위해 드나드는 곳 중엔 서울대학교가 있는데, 지하철역에서 멀고 캠퍼스가 워낙 커서 전동킥보드를 이용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전동킥보드 공유서비스가 유행하기 시작한 지난해 초엔 제가 산업팀에 있었습니다. 신 산업으로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했었는데 당시 업계는 말 그대로 '무법지대'였습니다. 법적으로 전동킥보드는 원동기장치자전거, 즉 오토바이의 일종으로 분류됐습니다. 당연히 안전모와 원동기 면허가 필요하고, 전동킥보드 기기에 대한 안전 인증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키지 않고 영업하는 업체가 많았습니다. 업체들 입장을 들어보니 "일단 시장을 먼저 선점하는 게 중요해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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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제기했지만 저 역시 의문이 남았습니다. 오토바이에 적용하는 규제를 전동킥보드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현실성이 없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전동킥보드는 오토바이처럼 도로로 다녀야 하는데, 자동차 운전자와 전동킥보드 이용자 모두 서로를 불안해 했습니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큰 피해가 날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이동수단인 만큼 국토교통부와 국회 등에서 여기에 맞는 규칙과 제도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띄는 건 전동킥보드 한 대에 둘이 타는 모습이었습니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놀이기구 타듯 이동하는 모습이 불안해 보였습니다. 일부 대여 업체에선 둘이 타고, 빙글빙글 곡예하듯 타는 동영상을 홍보용으로 사용하던데, 업체들이 이용자의 안전보다 재미나 편의성만을 강조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용자들이 저렇게 타는 모습을 따라하다가 다치면 과연 업체가 책임질까요?
사고는 늘어나는데 규제는 거꾸로 풀어버린 이런 법이 어떻게 국회를 통과한 건지 의아해서 이력을 찾아봤습니다.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습니다. 국회의원 184명 중 183명이 찬성했고 1명이 기권했습니다. 기권한 의원에게 전화해 물어보니 이 법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실수한 거 같다"고 합니다.
이 법안을 본회의에 올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록도 뒤져봤습니다. 역시 전동킥보드에 대한 토론은 없었습니다. 3개 의원실에서 발의한 법안을 경찰청 등이 종합해서 대안으로 냈는데, 위원장이 "이의 없으십니까?"하고 물어보니 의원들이 "예"라고 대답한 게 전부였습니다.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들의 연속입니다. 당시 법안을 만들 때 참여한 경찰청 관계자와 전문가들을 찾아서 물어봤습니다. 여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전기 자전거'를 참고했다"고 말했습니다. 바퀴가 달리고 전기 모터의 힘을 빌려서 달리는 게 비슷하니 전기 자전거와 전동킥보드를 같게 봤단 겁니다.
실제로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전동킥보드와 같은 개인형 이동수단의 법적 지위를 전기자전거와 같게 보는 겁니다. 원래 오토바이 수준의 규제를 적용했던 게 과하다 싶으니 전기자전거 수준으로 내려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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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의문이 풀렸습니다. 이번에 통과한 전동킥보드 관련 법은 이미 있던 전기 자전거 관련 법을 그대로 '복붙'했던 겁니다. 만 13세부터, 면허가 없어도 탈 수 있고, 안전모를 안 써도 처벌하지 않는 전기 자전거 관련 규정을 그대로 따온 결과물이었습니다.
법안을 만들 때 참여한 한 전문가는 "바퀴 두 개 달리고, 전기 모터를 쓰는 게 공학적으로 같은 구조인데 다르게 볼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청에서도 "전기 자전거와 최대 속도, 총 중량을 같도록 맞춰놨기 때문에 법적으로 똑같은 규제를 받는 게 적절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전문가들은 전기 자전거와 전동킥보드는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전동킥보드와 전기 자전거는 타는 방식부터 다릅니다. 전동킥보드는 서서 타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높고 넘어졌을 때 머리가 다치기 쉽다고 지적합니다. 바퀴가 작아서 작은 돌멩이만 있어도 크게 흔들리고요. 갑자기 방향을 틀거나 멈추기도 더 어렵습니다. 쉽게 말해서 전동킥보드가 더 위험한데 규제는 자전거 수준으로만 받으란 겁니다.
자전거도로로 달리라는 규정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전기자전거는 기존에 자전거가 다니는 길과 비슷하게 움직입니다. 전동킥보드가 다니는 길은 완전히 다릅니다. 지하철역 주변, 학교와 학원을 오갈 때, 잠깐 편의점 갈 때 등등 큰 길 부터 모세혈관에 해당하는 골목길까지 파고듭니다. 이용 목적이 다른 두 이동 수단을 같은 길로 다니라고 억지로 묶어놓은 겁니다.
경찰청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자전거도로 밖으로 달리는 전동킥보드를 일일이 단속할 수 없단 걸 인정합니다. 현실과 법이 달라 공백이 생기는 부분은 교육과 홍보를 통해 메꾸겠다고 합니다. 국회에서 법이 이렇게 통과가 됐는데 행정 기관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겠죠. 아직 시행도 안 된 법에 대해 다시 개정안을 내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전동킥보드의 법적 지위는 오토바이와 전기자전거의 사이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새 이동수단인 전동킥보드가 등장해서 문제가 생기면, 쌓인 데이터를 통해 그 특성을 충분히 연구하고, 현실과 최대한 가까운 법을 새로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전동킥보드를 타는데 면허를 따는 건 과하다고 생각했다면, 안전 교육 과정을 만들고 인증 받은 사람만 타는 것처럼 중간 수준의 규제를 고려해 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최신 기술을 적용한 이동 수단인 만큼 안전모를 써야만 시동이 걸리는 등 기술적인 규제를 검토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있는 제도와 공간에 억지로 욱여넣는 편한 결정을 한 게 아쉽습니다. 법을 만든 사람들이 전동킥보드를 몇 번이나 타 본 건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수많은 사고 영상을 보긴 한 건지 의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법을 통과시킨 한 의원은 "전동킥보드를 타 본 적이 없어서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지는 막연한 수준으로만 인지했다"고 한계를 인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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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행인 건 공백을 메꾸기 위해 여러 자발적인 시도가 논의되고 있단 겁니다. 법은 만 13세부터 탈 수 있도록 고쳐졌지만, 일부 전동킥보드 대여업체들은 만 18세 이상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무게 감지 센서를 이용해서 둘이 타는 것을 막거나,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방안도 추진 중입니다.
개인형 이동 수단에 관한 기본법도 발의가 돼 있습니다. 전동킥보드를 빌려주는 업체들이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지자체가 길거리에 방치된 전동킥보드를 수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법의 사각지대였던 부분을 채우기 위한 시도들입니다.
법에서 일일이 정해주지 못하는 빈틈은 업계와 이용자가 스스로 채워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업계에서 안전하게 전동 킥보드를 탄 이용자에게 혜택을 주는 시스템을 만들면 어떨까요? 지금은 전동킥보드를 반납할 때 세워둔 모습을 찍어서 업체에 보내야 합니다. 업체가 수거할 때 쉽게 찾기 위해섭니다. 이때 안전모를 쓴 걸 인증하면 포인트를 돌려준다거나, 이동 경로나 속도를 바탕으로 안전하게 탄 이용자는 등급을 높여서 할인을 해주는 방식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약간의 비용이 들어도 지금처럼 "전동킥보드를 잘못 탔다간 죽거나 크게 다친다"는 인식이 자리잡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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