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전투기 개발 한창인데..인도네시아는 '외면'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0. 11. 1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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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조립중인 한국형전투기(KF-X) 시제 1호기. KAI 제공
 
한국형전투기(KF-X)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개발을 담당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최근 KF-X 시제1호기 조립에 착수했다. KF-X에 탑재할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는 시제품 제작이 완료됐으며, 적외선 탐색 및 추적장비(IRST)와 전자전장비 등도 시제품 제작이 한창이다. 

반면 KF-X 공동개발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태도는 심상치 않다. 

양국은 2015년부터 8조7000억원의 사업비를 공동 부담해 2026년까지 차세대 전투기를 개발해 양산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인도네시아는 1조7000억원을 투자하고, 시제기 1대와 기술자료를 받아 KF-X의 현지 버전인 IF-X 48대를 현지 생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2017년 하반기 분담금부터 경제난을 이유로 지급을 미뤄 5003억원을 미납했다. 그러면서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을 방문해 유럽산 전투기 구매를 타진하는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6년 11월 인도에서 열린 국제 방위산업 전시회 '인도 디펜스 2016' 인도네시아 군 부스에 인도네시아와 합작해 개발하는 한국형 차세대전투기(KF-X) 모형이 설치돼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같은 행보는 인도네시아 현지 안보 사정과 더불어 KF-X에 대한 실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유로파이터에 라팔까지…“KF-X 기다리지 않는다”

유럽산 전투기에 관심을 보이는 인도네시아 행보의 중심에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장관이 자리잡고 있다. 군 장성 출신이자 조코위 대통령의 대선 맞수였던 프라보워 장관은 지난해 취임 직후 “국방예산과 무기체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미국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에 접근했다.
독일 공군 무장사들이 타이푼 전투기에 미티어 공대공미사일을 장착하고 있다. MBDA 제공
지난달에는 오스트리아를 방문, 오스트리아 공군이 운용중인 에어버스의 타이푼 전투기 10여 대를 도입해 성능 개량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프랑스로 건너가 방위산업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앞서 지난 1월 프라보워 장관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현지 언론들은 프라보워 장관이 라팔 전투기 48대, 스코르펜급 잠수함 4척 구매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프랑스 닷소가 만든 라팔 전투기 10대 미만을 도입하는 쪽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업계 소식통은 “프랑스는 인도네시아가 라팔을 구매한다면 스칼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사거리 560㎞)도 함께 판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인도네시아가 KF-X 대신 라팔이나 타이푼 전투기 구매를 추진하는 것은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과 무관치 않다. 

중국은 지난해 남중국해 우디섬에 J-11B 전투기를 배치했으며, 피어리 크로스 암초, 수비 암초, 미스치프 암초 등 7곳을 인공섬으로 조성해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보르네오섬 인근 남중국해 나투나 제도 주변 해역에는 중국 어선단이 출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군함과 전투기를 파견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인접한 호주는 F-35A 스텔스 전투기를 도입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F-15SG 전투기를 운용중이다.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과 갈등이 빚어지면, 인도네시아는 즉각 전투기를 출격시켜야 한다. 그런데 KF-X는 2026년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에 들어간다. 그나마도 개발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으면 일정 지연이 불가피하다. 
스칼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장착한 프랑스 공군 라팔 전투기. 닷소 제공
반면 라팔이나 타이푼은 기술적 검증이 끝났고, 전력화 기간이 KF-X보다 짧으며, 실전배치에 필요한 시간도 적다. 오스트리아 공군이 쓰던 타이푼은 성능이 떨어지지만, 에어버스가 독일 공군 등을 염두에 두고 성능개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성능개량을 마치면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이나 스톰 쉐도우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등 정밀유도무기 운용이 가능하다.  
인도네시아가 운용중인 F-16, Su-27보다 우수한 기종을 빠르게 확보해 전력공백을 메울 방법이 유럽에 있다면, KF-X에 매달릴 이유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영국 공군 F-35A 편대가 훈련을 위해 비행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금 KF-X로는 해외 시장서 외면받아”

정부도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으나 뚜렷한 진전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방위사업청과 KAI 관계자들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건너가 실무협상을 벌였지만, 추가 협상을 하기로 한 것 외에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내부에서는 KF-X에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삭티 와휴 트렝고노 국방 차관은 지난 7월 KF-X 사업과 관련해 “인도네시아가 얻을 이익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도 프라보워 장관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군 소식통은 “인도네시아는 이제 KF-X에 관심이 없다. 재정적 여건도 좋지 않다”고 전했다. 

이는 KF-X의 성능과도 관련이 있다는 평가다. 

서방 세계 전투기 중 지금까지도 주문이 끊이지 않는 기종은 F-16이다, 1978년 첫 도입 이래 4600여대가 생산된 베스트셀러 기종으로 중동전쟁과 걸프전,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 등에 참가해 성능을 입증했다. 서방국가들은 F-16에 만족했지만, 1993년 걸프전에서 미국이 F-117 스텔스 전폭기를 선보이자 스텔스 기능이 추가된 전투기에 관심을 보였다. F-35 개발에 영국, 이탈리아 등이 참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F-35는 강력한 스텔스 성능을 갖췄지만, 무장 탑재력에서는 F-16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뒤처졌다. 미국이 스텔스 성능을 과신한 탓이다. 중국과 영국이 기존 공대공미사일보다 속도와 사거리가 늘어난 PL-15, 미티어 미사일을 개발하는 동안 미국은 뒤늦게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  

이같은 ‘틈새’를 파고든 것이 라팔과 타이푼이다. 라팔은 이집트와 그리스 등에 판매가 이뤄졌으며, 타이푼도 초기 생산분에 대한 성능개량과 더불어 독일에 납품이 이뤄질 예정이다. 라팔과 타이푼은 F-35보다 한 세대 이전 기술을 쓰고 있지만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스톰 쉐도우(스칼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등을 갖췄고 신뢰성도 확보된 상태다.

KF-X는 F-35 개발이 본격화된 2000년대 이후 세계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신형 전투기다. 그만큼 많은 기대를 모았다.
미국 록히드마틴의 F-16V가 시범비행을 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하지만 F-35보다 스텔스 성능은 부족하고, 무장탑재는 F-16보다 떨어진다. 미티어 미사일을 제외하면 대부분 항공폭탄이다. 레이더 파괴 미사일이나 하푼 지대함미사일 등을 탑재해 전천후 작전이 가능한 F-16보다 떨어진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LIG넥스원이 탐색개발중인 국산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빨라야 2028년에 개발이 완료된다. 체계통합과 감항인증 등의 절차를 거치면 2030년에야 본격적으로 KF-X에 쓸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전투기를 구매하는 것은 탑재 무장도 패키지로 도입한다는 의미다. 어떤 무장을 탑재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 전투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현재 KF-X로는 해외 시장에서 라팔이나 타이푼, F-16V와 경쟁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조립중인 KF-X 시제 1호기의 모습. KAI 제공
국산 공대공미사일과 공대함미사일 개발이 추진중이지만, KF-X가 모습을 드러내는 2020년대 중반 이전에는 개발 완료가 쉽지 않다. 개발이 완료돼도 KF-X에 체계통합하고, 이를 안정화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비행하던 도중 항공무장이 갑자기 지상으로 떨어지거나, 발사 버튼을 눌렀는데도 발사되지 않는 등의 돌발상황을 방지하려면 철저한 검증에 기반한 안정화 절차가 필수다. 전투기 개발 경험이 부족한 국내 사정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리스크 감소를 위한 ‘진화적 개발’도 중요하지만, 항공무장 탑재 능력을 단기간에 강화하지 않으면 해외 시장 진출은 물론 인도네시아의 이탈 움직임도 저지하기 어렵다. KF-X 무장 강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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