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평위원장 도심 스님 "종교 혐오 막으려면 차별금지법부터"

김태훈 기자 2020. 11. 14. 14: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지난 10월 14일 경기도 남양주시의 불교 사찰 수진사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목조 전각 하나를 다 태운 뒤 불길이 잡혔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경내에 절에서 운영하는 노인요양시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문제는 이 화재가 과거 숱하게 일어난 불교 관련 시설 훼손 사태와 마찬가지로 개신교인의 손으로 자행된 방화였다는 점이다.

비록 수진사(대한불교 총화종)가 다른 종단의 절이었지만 한국 불교의 대표 종단인 조계종도 더는 참지 않고 나섰다. 11월 2일 종교평화위원회가 위원장 도심 스님 명의로 성명을 내고 개신교계를 향해 “개신교인에 의해 자행되는 사찰방화를 근절하라”며 “개신교는 폭력과 방화를 양산하는 종교가 아닌 화합의 종교로 거듭나라”고 강한 어조로 따진 것이다. <경향신문>은 11월 11일 조계종 총무원에서 도심 스님을 만나 격앙된 불교계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도심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장이 11월 11일 조계종 총무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태훈 기자


-그동안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가 ‘자비’의 태도로 조용히 넘어간 데 비해 이번 성명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자비사상을 바탕으로 한 포용의 종교다. 국내에 들어온 지 2000년이 넘는 동안 유입된 다른 모든 종교를 포용해 왔다. 그래서 불교는 이제 한국인의 정서 속에 그 DNA가 살아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포함해 계속 이어져 온 방화 사태는 이런 한국인의 정신문화를 말살하겠다는 것이라 묵과할 수 없다. 종교인으로서 사회를 화합시키고 안식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서로 분열해 다투는 일은 끝내자고 강하게 나선 것이다.”

-그 배경에는 ‘참을 만큼 참았다’는 불교계의 정서가 깔려 있는 듯하다.

“불자들을 만나면 듣는 소리가 ‘왜 우리는 참고만 있냐’ 하고 ‘우리도 나가서 포교하자’는 말까지 나온다. 오죽하면 그런 얘기가 나오겠나. 하지만 먼저 서로 화합을 만들어야 하는 때에 대척하는 입장만 강조하면 화합에 더욱 걸림돌이 되니 그렇게 감정적으로 나서기만 할 수도 없다.”

-이번 수진사 방화사건 말고 부산 범어사, 전남 여수 향일암 방화사건 등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피해도 많지 않나.

“방화 때문이라는 게 잘 안 알려지고 지나간 일 중 대표적으로 대구의 임휴사에서 대웅전과 산신각 등이 전소된 일이 있었다. 그밖에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방화뿐 아니라 불상·법당 훼손 사건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일일이 다 언급하지 않고 외부로 잘 알리지 않을 뿐이지만 사례들을 종단에서 계속 취합해 조사하고 있다. 나만 해도 내가 있는 절에서 ‘왜 불상 모시냐’며 소리 지르고 난리 치는 분들을 숱하게 만난다. 절에 모신 부처님은 믿음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상징이기도 하다. 불자들이나 스님들은 불상에 물걸레질도 안 하고 먼지만 떨며 청소할 정도로 모시는 대상을 그렇게 불 지르고 훼손하면 불자 입장에선 그보다 더한 치욕이 없다. 경전에도 그런 행동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써 있다.”

-그런 사건을 저지르는 사람 중 절대다수가 개신교인이었나?

“(말 대신 표정으로 긍정) 다른 종교나 아무 종교 없는 분들은 안 그런데 특히 그쪽만…. 그래서 더 황당하다.”

-불교가 자비를 내세우듯 개신교는 사랑과 용서를 말하는데.

“그래서 우리도 묻고 싶다. 이번 사건 이후 개신교계에서도 성명이나 사과문을 내고 다른 종교를 혐오하고 괴롭히는 일은 근본 교리에 어긋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더라. 그런 공식적인 입장 말고도 목사님들을 만나면 ‘그런 사람들은 사이비라서 그렇다’면서도 ‘그런 일을 막지 못하는 건 개신교계 시스템 차원의 문제다’ 하는 목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개신교가 어째서 문제인지는 내가 말할 수 없지만 불교에서 그런 일이 거의 없는 이유는 말할 수 있다. 불교는 세상 만물이 평등하고 홀로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남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뜯어고치려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마다 가르침이야 다들 성스럽지만 실제 따르는 속세의 인간들을 규제하려면 법적인 대응도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나.

“조계종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불교의 가르침이 바로 만물은 평등하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그걸 부처님이 몸소 보이며 차별 대신 다름을 인정하자고 한 것이다. 너와 나의 다름을 그대로 인정해야 사회가 평등하고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산에 소나무만 있고 다른 나무는 없으면 아름답겠나.”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적인 이유 중에는 이런 종교혐오 범죄 말고도 불교계가 다양한 차별을 겪어서라고도 하던데.

“불자들이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을 보면 취직 과정에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채용을 안 하거나, 진급에서 누락시키거나, 심하면 개종을 안 했다고 해고까지 당하는 일들이 있더라. 불자들이 다른 종교인들에게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찾기 힘들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서 피해를 입는 일들만 많다 보니까 나서지 않을 수가 없다. 성소수자라거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하면 안 되듯 종교로 인한 차별도 막자는 것이 차별금지법의 취지다.”

-법의 취지는 시민에게서도 공감을 얻고 있으나 국회를 통과할지가 문제다.

“이번 성명에서도 밝혔듯 국회나 정부가 방관하지 말고 법 통과에 힘쓰라고 요구했다. 정치권에서는 표 때문에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유독 개신교를 믿는 정치인들이 ‘성시화 운동’ 같은 것을 벌이는 등의 종교 편향 행위가 잦다. 얼마 전에도 한 정당의 청년위원회 대변인이 ‘하나님의 통치’ 운운한 적이 있지 않았나. 이번 방화사건만 보더라도 경찰과 검찰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특정 종교의 반사회적인 행위를 개인의 소행으로 치부하지 말고 어느 정도 선을 그어줘야 한다.”

-한국사회가 다종교 사회면서도 다른 나라처럼 종교 간 대립이 격렬하진 않았지만 점차 심각해지는 양상도 보인다.

“그동안 불교가 포용 안 했으면 한국에서도 더 큰 싸움이 났을 것이다. 나 같은 스님들은 길거리에 승복 입고 지나가면 사람들 눈에 띄기 때문에 행동거지를 더 조심하려 한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보고 시비 걸고 자신들의 종교를 전하겠다고 하는데, 특히 지하철이 심해서 스님들은 거의 지하철 타기를 꺼려 한다. 물론 선교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공권력이 다른 종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인 틀을 만들어 둬야 종교 간 평화도 더 지켜질 수 있다.”

-다른 종교들처럼 모임을 자주 열고 조직력을 강화해 맞대응하는 방법은 생각해보지 않았나.

“따지고 보면 불교 사찰에서도 주말마다 법회를 열고 있고, 또 매일 법문만 안 할 뿐이지 적어도 하루 세 번씩 기도도 하고 독경도 하는 법회가 열린다. 게다가 절은 언제나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게 열려 있다. 그래서 이런 방화나 훼불사건이 자주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열려 있는 종교이고 다른 종교도 다 받아주면서 교리를 비교해 따져보고 믿을 만하면 믿으라고 하는 종교다. 자신 있는 종교라는 뜻이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누구나 생각이 많아진 이 시대를 맞으며 불교를 찾는 사람들이 더 늘고 있다. 자연히 사람들이 찾아올 텐데 굳이 형식을 바꿔가며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먹고사는 일이 어려워져 더욱 분노와 혐오, 차별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듯하다. 이런 사회상에 던져줄 메시지는 무엇인가.

“부처님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신 것은 나만이 귀하고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존귀하고 그러므로 평등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꼭 법회에 나와야 불자가 아니라 생각을 좋게 하면 그 사람 자체가 불자라고 본다. 그리고 그게 차별 없는 세상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