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대·문빠에 가로막혔다..진보 못하는 진보

정현수 기자 2020. 11. 16.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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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대한민국 4.0 II] 진보의 위기-보수의 자격【4】(上)
갈라치기 정책에 멍드는 민생…'틀에 박힌' 진보의 한계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전태일 50주기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11.14/뉴스1

지난 14일 민주노총이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열었다. 야권은 "방역도 편가르기를 한다"며 반발했다. 정부와 여당이 보수단체의 광화문집회, 개천절집회를 대하는 태도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자제 권고에도 집회를 강행했다.

'편가르기'. 어느덧 이번 정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 정부는 이 단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야권의 정쟁용 비판으로 치부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 추진된 정책 상당수가 계층간 갈등을 유발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정책에서 보여준 '틀에 박힌 진보'

지난 7월 30일 '임대차3법'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의 법적근거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단독으로 이 법안을 처리했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를 위한 제도다. 세입자의 2년 계약이 끝나면 추가 2년 계약을 연장토록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계약갱신청구권 시행으로 전세물량이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전셋값은 폭등했고 집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임대차3법은 당연히 제정됐어야 할 법이긴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며 "약자를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진영논리에 입각한 밀어붙이기식 입법전쟁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입법과정에서 우려가 있었지만 민주당은 귀를 닫았다.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대전제만 생각했다. 상임위원회와 본회의까지 민주당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했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보수진영의 반대는 발목잡기로 규정했다. 입법에는 성공했지만 결과까진 내다보지 못했다.

정치평론가인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서울에서 10억원의 전세를 사는 사람과 5억원의 아파트를 가진 사람 중 누구의 권리를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는데 너무나 틀에 박힌 진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시대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유연함이 부족하다는 게 문재인정권의 문제"라고 밝혔다.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0회국회(임시회) 제7차 본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적 300인, 재석187인, 찬성185인, 기권2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0.7.30/뉴스1


◇어느덧 사라진 단어, 소득주도성장

부동산정책과 결은 다르지만 소득주도성장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이다. 말그대로 소득을 높여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내세운 대표적인 수단이 최저임금 인상이다. 정부의 의지대로 최저임금은 많이 올랐다.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다는 명분과 이를 전체 경제성장으로 연결시킨다는 희망까지 겹쳐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정부 초창기 거의 모든 정책의 상징과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주는 사업주도 최저임금을 받는 저임금 근로자도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최저임금 부담을 느낀 소상공인은 최저임금 대상인 아르바이트생의 자리 자체를 줄였다. '을들의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최저임금 인상 후 소득통계가 나올 때마다 논란이 반복되는 등 국가 전체의 소득재분배 효과도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이른바 '조국 사태'가 터졌다. 대한민국 국민은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극명하게 갈라졌다. 범진보진영에서 기득권 엘리트인 검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명확했다. 검찰은 개혁의 대상이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은 진통 끝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올해 총선을 거치면서 계층 갈등은 더 심화됐다. 정치권이 선거 국면에서 이를 활용한 측면도 없지 않다. 통합은 요원했고 갈등만 남았다. 이번 정부 계층 갈등의 한 요소였던 탈원전은 다시 정쟁의 한가운데 섰다. 월성1호기 문제는 탈원전 이슈를 넘어 검찰개혁의 재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과거 학생운동을 할 때 한국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을 바라보는 소위 '마음의 습관' 같은 게 있다"며 "이걸 포기하면 마치 정권의 기반이 흔들린다고 생각해 자존심 싸움처럼 돼 버린다"고 말했다.

(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 검찰이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를 압수수색 중인 5일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에서 직원들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2020.11.5/뉴스1


◇'핀셋 정책'의 면죄부

세법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부와 여당은 세법을 개편할 때마다 '핀셋'이라는 단어를 꺼낸다. 고소득자와 다주택자 등 '가진 사람'들에 한해 증세를 한다는 것이다.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에게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지난 8월에만 하더라도 3주택자 이상 또는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율을 올리는 내용의 종부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세법개정안에는 현행 42%인 소득세 최고세율을 45%로 올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특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혁보다는 제도 개혁으로 가야 한다"며 "많은 변화가 한꺼번에 있다보면 갈등이 중첩되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하나씩 제도 개혁을 해나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현수·권혜민·김상준·유효송 기자


기득권이 된 '86세대'와 '문빠'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한열 동산에서 열린 고(故) 이한열 열사 33주기 추모식에서 '한열이를 살려내라'란 문구가 적힌 판화 조형물이 공개되고 있다. 2020.6.9/뉴스1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는 범진보진영의 핵심이다. 80년대 학생운동 세대인 이들은 민주화의 주역이다. 정치의 세계에 들어온 뒤에는 두 번의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변화를 꿈꿨던 이들은 현재 기득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거대여당으로 등극한 더불어민주당의 다수도 86세대다. 현실에 안주하는 86세대에 극성 지지층까지 겹치면서 진보가 진보하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득권이 된 86세대

민주당 내 86세대는 주류 중 주류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운동 당시 활약했던 이들이 민주당의 주류로 활동하고 있다. 민주당의 원내대표 출신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우상호 의원은 1987년에 각각 고려대와 연세대의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이들은 같은해 결성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초대 의장과 부의장을 맡았다. 4선의 이 장관은 지난 7월 통일부 장관이 됐다. 역시 4선의 우 의원은 내년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 중이다. 전대협 출신으로는 3기 의장을 지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다.

이들 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경험을 공유한 이들이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소속으로 당선된 국회의원은 180명. 이 중 50대는 113명(62.7%)에 이른다. 86세대가 다수 포진하면서 평균 연령도 55.1세를 기록했다.

86세대의 헤게모니는 21대 총선의 압승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하지만 범진보진영 차원에서 86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 같지 않다.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1987년에 태어나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 의원으로 당선된 장혜영 의원은 86세대를 '기득권자'로 규정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40대 주자들도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소장파'로 꼽히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86세대는 기회를 소진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1971년생이다. 1973년생인 박주민 의원도 선배 세대와는 다른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86세대는 이제 주도권을 다음 세대에게 일부라도 이양하기 시작해야 마땅하다"며 "86세대가 정치적인 대표성을 가지게 된 것은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는 것인데, 지금에 와서도 그것을 주장하기에는 정치권 86세대는 이미 보상 받을 만큼 다 받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15년 전 한국의 엘리트 3만2000명을 분석한 결과도 소개했다. 그는 "운동권 출신 엘리트의 국회의원 당선 확률은 모든 조건을 통제했을 때 다른 엘리트보다 100배가 넘었다"며 "그런데 86세대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운동권으로 희생할 때 당신들은 뭐했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열린 윤리심판원 징계논의에 참석하고 있다. 금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 투표 당시 기권표를 던졌다. 이후 민주당 윤리심판원은 지난 5월25일 금 전 의원이 당론과 다른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경고' 처분을 내린 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생겼고 금 전 의원은 지난 2일 재심을 신청했었다. 2020.6.29/뉴스1


◇진보진영의 실세 '문빠'

문재인 대통령의 극성 지지층을 의미하는 '문빠'의 존재도 범진보진영의 동력을 가로막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의 기득권 역할을 하고 있다. 팬덤 정치의 출발점은 2000년대 초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팬덤 정치를 기반으로 극적으로 당선되면서다.

팬덤 정치의 무기는 소통과 참여다. 이를 잘 활용하면 '플랫폼 정당'으로 제도화할 수 있다. 하지만 팬덤 정치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민주당 내부에서 '문빠'로 대표되는 극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금 전 의원은 민주당 극성 지지층의 비판을 가장 많이 받았던 의원이다. 당론과 다른 행보를 보여왔던 금 전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하고 당의 징계까지 받았다. 강성 당원들의 비판에 직면했던 금 전 의원은 결국 당을 떠났다.

그는 탈당계를 내면서 "다른 무엇보다 편 가르기로 국민들을 대립시키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범법자, 친일파로 몰아붙이며 윽박지르는 오만한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며 "건강한 비판이나 자기반성은 '내부 총질'로 몰리고 입을 막기 위한 문자폭탄과 악플의 좌표가 찍힌다"고 비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정치의 역할은 갈등을 조정하고 조율하는 것인데, 강성 지지층들만 남게 되면서 정치의 본래 기능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며 "팬덤 정치도 점차 정치를 극단적, 적대적으로 만들면서 갈등 조정기능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강성 지지층에 의한 행태는 과잉 민주주의다. 원칙적으로 정당이 중심이 돼 정책의 의제를 만들고 개혁의 방향성을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주의를 다수결이나 목소리 큰 사람의 것으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정현수·권혜민·김상준·유효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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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권혜민 기자 aevin54@mt.co.kr, 김상준 기자 awardkim@mt.co.kr,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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