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EP 위험하다" 최대 수혜국 일본, 축포 안 쏘는 이유

이현승 기자 2020. 11. 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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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RCEP으로 韓中과 첫 FTA 체결 ‘최대 수혜’
중국 견제용으로 끌어들인 인도 이탈로 계획 삐끗
아·태서 中 영향력 확대되면 美와도 껄끄러워져
美 TPP 재가입 바라지만 우선순위 밀릴 가능성

'RCEP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에서 눈을 떼서는 안된다.'

16일 일본 산케이신문은 전날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아세안 10개국이 서명한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주제로 한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일본 자민당 정부의 방침에 대체로 긍정적인 극우매체가 일본이 최대 수혜자로 지목받는 RCEP를 치켜 세우기 보다 우려한 건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이날 산케이를 비롯한 일본 주요 언론은 RCEP가 일본 경제에 분명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지만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대하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정부가 인도의 참가를 계속 권유하고 미국과 함께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해야 하는 큰 숙제를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2020년 11월 15일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아세안 10개국이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RCEP에 서명했다. / AP연합뉴스

일본은 RCEP 체결국 가운데 중국, 한국 모두와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지 않은 유일한 국가다. 다른 체결국은 두 국가 모두, 혹은 적어도 한 국가와는 FTA를 체결하고 있다. RCEP로 인한 공업품 관세철폐율이 91.5%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99.9%)에 비해 낮다고 해도 일본으로서는 최대 무역 상대국인 두 나라와 무역 협상의 길을 텄다는 것 만으로도 박수칠 만한 성과다.

그러나 RCEP이 중국 주도로 이뤄진 무역 협정이라는 점이 일본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청와대를 비롯해 협정 체결국 정부는 RCEP이 중국이 아닌 아세안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중국이 없었다면 2012년 이후 지지부진 했던 협상에 속도가 붙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게 무역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 취임 이후 미국과 무역 갈등을 겪으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적 중요성을 통감하게 됐다. 지역 내 존재감을 확대할 수 있는 RCEP 서명을 서두른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당초 중국은 한중일과 아세안 중심으로 RCEP을 추진하려 했으나 일본이 지역 내에서 중국 입김이 거세질 것을 우려해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인 인도와 호주, 뉴질랜드를 추가 하자고 해 지금의 형태에 이르게 됐다.

작년 인도가 돌연 RCEP에서 이탈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일본의 계획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인도는 대중 무역적자가 더욱 커질 것을 우려했고 일본 정부의 끈질긴 설득에도 결국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인도를 포함한 RCEP를 밀어 붙이던 일본 정부는 논의가 너무 오랜기간 표류한데다 코로나로 아세안 국가들의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자 인도를 제외한 협정에 서명하기로 했다.

이날 산케이는 사설에서 "인도의 불참이 심히 유감스럽다"며 "일본 정부가 강력하게 원했던 인도의 합류를 끈질기게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닛케이도 "인도가 이탈해 RCEP의 가치가 줄어든 건 부정할 수 없다"며 "당장 복귀를 재촉하긴 어렵겠지만 포기할 일은 아니다. 끈질기게 설득해야 한다"고 썼다.

인도는 인구와 경제력 기준으로 중국과 맞대결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데다 민주주의를 채택한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일본과 여러모로 뜻이 통했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주도의 새로운 안보 협의체 쿼드(QUAD)에 속해있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도 일본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미국과 무역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이 반도체나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일본 기업과의 거래를 확대함으로써 미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 이 경우 일본은 미국의 동맹이면서 중국의 부상을 도왔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 정부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RCEP 체결을 계기로 TPP에 복귀해 중국을 견제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이후 새로운 무역 협정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당장 코로나 대응과 국내 경제 회복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에서도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도 외국에 일자리를 내줬다며 TPP에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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