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FTA, 중국이 RCEP 협상 주도? 틀렸다"

조계완 2020. 11. 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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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도' 앞세워 '미-중 거대 FTA 대결' 판도 분석하지만,
청와대·정부 "협상 타결 주도해온 쪽은 아세안과 한국"
한국 등 15개국, '세계최대 FTA' RCEP 협정 서명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세계 최대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정문 서명식에 참석, 서명을 마친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 2020.11.15 연합뉴스

한국·중국·일본·아세안(10개국)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하 알셉)이 15일 협상 개시 8년만에 최종 타결된 가운데, “알셉은 중국이 주도한 협정”이라는 일부 통상전문가와 언론매체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 중국 주도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중-미 사이의 메가 FTA 대결’로 향후 거대 무역협정 판도를 분석하지만, 청와대·정부는 “알셉 협상을 이번 타결까지 주도해온 쪽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과 아세안”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8년간 진행된 알셉 협상과정에 시민사회 쪽 전문가로 직접 참여해온 남희섭 변리사(지식연구소 ‘공방’ 소장)는 16일 “알셉이 중국 주도라는 기사가 제법 있던데 제가 알기로 중국이 협상을 주도한 적이 없다. 주도했다고 하려면 의제를 주도적으로 설정하거나 이견이 있을 때 조율할 역량이 되어야 하는데 중국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주도국이 없었다고 보거나 아세안이 주도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정부 통상당국자도 “이번 알셉의 참여국간 수입관세 타결 내용은 아세안 10개국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관세 양허안이 기본이고, 이를 기초로 삼아 한·중·일·호주 등 비아세안 국가들 사이의 관세 양허 스케줄과 폭에서 협상이 이뤄지는 과정을 밟았다”며, “아세안 국가들은 ‘비아세안 국가들 사이의 개방 양허수준이 아세안에 적용하는 개방 수준보다 더 우대해줘서는 안된다’고 요구해 관철시켰다”고 말했다. 아세안 그리고 한국이 주도했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도 보도자료에서 “우리는 협상 마무리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최근 협상 막바지 단계에서는 비아세안국가(한·중·일·호주 등) 사이의 이해를 조정하는 역할을 장기간 수행하면서 원산지 등 주요 이슈를 합의하는데 적극 기여했고, 주요 아세안 국가들과 수시로 물밑 접촉을 하면서 협상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협상 진전을 독려했다”고 밝혔다.

알셉 협상 판도를 중국이 주도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정황은 여러 측면에서 드러난다. 정부 당국자는 “관세 양허(감축·철폐)의 경우 중국은 이번 협상과정에서 아세안 국가들이 요구한 것보다 낮은 수준의 시장개방 자유화를 원했다”며, “한-중-일 3국 사이의 개별 국가간 관세양허 수준도 협정 출발 때부터 너무 개방화 수준을 높이지 말고 80%대에서 일단 타결하자는 쪽으로 중국도 입장을 정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일본이 주도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11개국)에 다시 참여할 가능성이 높고 그럴 경우 미국이 주도하는 거대 CPTPP 무역협정에 맞서기 위해 중국이 이번 알셉 타결을 주도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사실 중국은 알셉 협정의 영향력을 좌우하는 시장개방 수준을 오히려 낮게 잡았다는 뜻이다.

지난해 알셉 협상 불참을 선언하면서 이번 타결·서명에서 일단 빠진 인도 쪽을 보더라도 ‘중국의 알셉 주도’는 설득력이 낮다. 협상 개시 이후 8년이나 지지부진한 상태를 이어온 것도 인도가 마치 “‘알셉 트럭’ 뒤편에 매달린 20피트짜리 무거운 대형 컨테이너”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인도는 시장개방으로 중국산 값싼 공산품과 호주산 농산물이 자국 시장에 물밀듯 흘러들 것으로 우려하면서 타결을 계속 주저해왔다. 이렇듯, ‘중국 주도 알셉’에 대한 우려가 큰 인도를 협정에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은 협상과정에서 뒤로 물러나 있는 형국이었다. 다른 알셉 참여국들도 중국이 앞장서지 말고 뒤편에서 소극적으로 임하기를 원한 것으로 알려진다.

알셉 지역블록이 무역·인구·총생산 규모에서 세계 최대인 건 맞지만, 사실 알셉의 시장 개방화 수준은 다른 거대 지역무역협정에 견줘 낮은 편이다. CPTPP는 서비스·노동·지식재산권·경쟁·투자정책을 포함하는 매우 포괄적인 범위를 다루는데 반해 알셉은 주로 협정 참여국의 점진적인 공산품 관세감축과 원산지 규정 통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방 수준만 봐서는 실제 내용에서 그다지 야심찬 협정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알셉을 통해 자국 상품을 더 많이 수출하려는 목적보다는 21세기 육상·해상 실크로드 경제벨트로 불리는 ‘일대일로’를 아세안으로 확장하려 했다. 알셉은 관세 철폐·감축을 목표로 하는 무역협정인데, 중국은 관세보다는 일대일로에 목적을 두고 있던터라 알셉 협상·타결 과정에서 주도자 역할을 하지 않았고, 또 못했다는 뜻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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