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한양도성 600년 물길 이야기

박영서 2020. 11. 1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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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성부는 한양도성과 성저십리(城底十里, 도성 밖 10리 내의 지역)를 모두 관할했지만, 일반적으로 한양은 내사산(內四山, 남산·낙산·북악산·인왕산)과 사대문을 연결한 한양도성을 일컬었다.

한양도성에는 많은 물길이 있었다.

이 책은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려운 한양도성 내의 물길 흔적을 탐색하는 '물길 안내서'다.

한양도성 내에서 '개천'으로 흘러든 지류를 25개로 분류하고, '개천'을 포함해 모두 26개의 물길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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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물길을 걷다 도경재 지음 / 모두북스 협동조합출판사 펴냄

조선시대 한성부는 한양도성과 성저십리(城底十里, 도성 밖 10리 내의 지역)를 모두 관할했지만, 일반적으로 한양은 내사산(內四山, 남산·낙산·북악산·인왕산)과 사대문을 연결한 한양도성을 일컬었다. 한양도성에는 많은 물길이 있었다. 도성의 한복판을 '개천'(청계천)이 서에서 동으로 흘렀다. 내사산에서 발원하여 도성 안으로 흐르는 여러 물길(지류)은 본류인 '개천'으로 합류했다. 옥류동천, 삼청동천, 정릉동천, 남산동천, 필동천, 쌍이문동천, 남소문동천 등이 대표적인 물길이었다. 이 물길들은 사람들을 모으고 집을 이루게 했고, 빼어난 경치를 자랑했으며, 생활하수와 오수도 나르는 역할도 담당했다. 하지만 한양 땅을 흐르던 많은 물길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무심히 걷고, 차를 타고 지나는 길의 많은 부분이 예전에는 물길이었음을 알고 있거나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은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려운 한양도성 내의 물길 흔적을 탐색하는 '물길 안내서'다. 한양도성 내에서 '개천'으로 흘러든 지류를 25개로 분류하고, '개천'을 포함해 모두 26개의 물길을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청계천으로 불리는 '개천'의 본류를 이루는 물길이 어떻게 흘렀고, 땅 속에 묻혀 사라지거나 길이 되어버리는 등의 변화, 그리고 사라진 물길을 따라 어떠한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지에 대한 작업이다.

저자는 문화해설사로 '역사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한양도성 안 역사길 아래쪽에 물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옛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면서, 어쩌면 그들의 삶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물길을 이해하면 그 시절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물길 답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물길을 따라 걷는 것은 그 길이 품고 있는 역사를 거슬러 오르며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 물길은 역사를 거슬러 오르는 통로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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