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격 공무원 전 부인 "힘없는 서민에 죄 뒤집어씌워" 울분
서해 북단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군에 피격돼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47)씨의 유가족이 “이씨는 월북이 아닌 실족했을 뿐”이라며 월북을 시도했다는 경찰과 군의 발표를 거듭 반박했다.
이씨의 전 부인 A씨(41)와 아들 B군(17)은 지난 1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나라는 힘없는 서민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씌웠다”며 “정부가 한 가정을 이렇게 몰락시킬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A씨는 이씨에 대해 “책임감이 강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길 가다 어르신 짐 들어 드리고 딸과도 매일 통화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했다”며 “8년 동안 불법 어선을 단속하면서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월북은 꿈도 꿔본 적 없다. 처음에 단순 실족으로 알았다”며 “월북이란 단어는 뉴스 속보에서 처음 봤다.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월북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A씨는 그러면서 “이씨는 평소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뉴스도 거의 안 봤다. 또 애국심이 강해 국경일이면 오전 6시에 일어나 태극기를 걸었다”며 “근데 (이씨가 사망한 지 3일 뒤인) 9월 24일쯤 해경이 전화로 ‘남편이 평소 북한을 동경했느냐’, ‘사회주의를 찬양했느냐’고 물어서 어이가 없었다. (결혼한 지) 20년이 다 됐지만 남편에게 북한이나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씨가 도박 빚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진 월북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김홍희 해경청장은 지난달 26일 국정감사에서 “(이씨가) 자진 월북한 증거가 다수 있다”면서 “구명동의를 입고 부력재에 의지했으며, 북한 민간 선박에 신상정보를 밝히고 월북 정황을 이야기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또 “통신·금융 정보 조회를 통해 도박 빚과 꽃게 대금으로 인한 압박 상황도 확인했다”며 이씨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경은 앞서 지난달 22일에도 “실종자가 출동 전후와 출동 중에도 수시로 도박을 하는 등 인터넷 도박에 깊이 몰입돼 있었다”며 자진 월북의 근거를 제시했었다.
A씨는 정부의 월북 결론에 “국방부가 (월북) 의사를 밝힌 내용이 있다고 했는데, (북한군이) 무서워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총 든 북한군 앞에서 살려고 그런 말을 했을 수 있다. 그걸 진심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재차 반박했다.
그러면서 “실족 확률이 높다. 남편이 담배를 자주 피운다. 하루 두 갑 정도 피우고 배에서도 피운다. 최근 밥도 안 챙겨 먹어서 살이 빠지고 어지럼증이 있다고도 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씨가 도박 빚과 이혼으로 자진 월북했다’는 정부 측 결론에 “남편이 최근 1년간 도박한 거로 안다. 남편을 2000년 처음 만났는데 이 1년으로 이 사람 47년 인생을 해석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경은 정확한 월북 증거도 없이 도박 빚을 도피성 월북 근거로 단정했다. 만약 도박 빚과 이혼이 월북 이유라면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사람들은 다 잠재적 월북자로 보고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이 보상금을 받기 위해 이씨의 월북을 부정한다’는 비판에는 “난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 아이들이 월북자 자식이란 주홍글씨를 새기고 사는 건 씻을 수 없는 상처이므로 아이들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며 “(도박 빚도) 실종 1년이 지나 사망 신고가 되면 아이들에게 재산과 채무가 모두 상속돼 법적 보호자인 내가 처리할 생각”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남편이 공무원 신분으로 도박한 건 잘못이지만 월북과 연관 짓는 건 아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정부는 이 사건을 조용히 묻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아이들 때문에라도 끝까지 간다”고 재차 말했다.
A씨는 끝으로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냐’는 질문에 “해경은 남편이 북한 해역으로 흘러들어갈 동안 방관했고, 국방부는 남편이 북한 해역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살리지 않았다”며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피살’이 아닌 ‘사망’이라고 표현했다. 일부 국회의원은 ‘월북을 시도했으니까 사살당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며 “이 나라에서 버려진 느낌이 든다. 대한민국 가정의 한 가장이자 8년 동안 나라를 위해 일한 공무원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느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참 원망스럽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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