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청소노동자의 작은 바람 "'왜 밥먹는데 숟가락 소리 나?' 갑질도 참았는데.."

2020. 11. 1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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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소영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LG트윈타워 분회장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임금 인상도 인상이지만 가장 큰 바람은 더 일하는 거에요. 보시다시피 저희 아직 건강해요."

박소영 씨는 LG그룹 본사가 있는 LG트윈타워 간접고용 청소노동자다. 지금은 청소 일을 하며 노동조합 동료들과 함께 LG트윈타워 앞에 세운 천막에서 농성도 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시작한 농성은 어느덧 한달을 넘겼다.

LG건물을 쓸고 닦는 박 씨의 회사는 지수아이앤씨(지수)라는 건물 관리 용역업체다. 지수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고모인 구미정 씨와 구훤미 씨가 50%씩 지분을 나눠 소유한 회사다. LG트윈타워뿐 아니라 LG강남빌딩, LG광화문빌딩 등 LG 계열 건물 관리를 주로 한다.

지수의 2019년 매출은 1350억여 원, 당기순이익은 45억여 원이었다. 구 회장의 두 고모에게는 각각 30억 원씩 총 60억 원의 주식 배당이 돌아갔다. 그 전 해에도, 다시 그 전 해에도 지수는 수십억 원 단위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주식 배당을 했다.

전라남도 조도라는 작은 섬에서 구미정 씨와 같은 해인 1955년에 태어나 란제리 공장, 전파사, 우유 대리점 등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던 박 씨의 삶은 구 회장의 두 고모와는 많이 달랐다. 박 씨는 "평생 그런 돈은 만져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다.

상상해본 적도 없는 돈을 버는 이들에게 박 씨가 바라는 건 뭘까. 박 씨는 "이곳에서 더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정년 연장이다. 작년 3월 지수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에게 만 65세 정년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박 씨는 내년에 일을 그만둬야 한다.

LG트윈타워에서 일하는 5년 동안 최저임금과 갑질을 참으며 일해온 박 씨도 '이제 나가달라'는 말만은 참을 수 없었다.

▲ LG트윈타워 앞에 차려진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LG트윈타워분회 농성 천막. ⓒ프레시안(최형락)

대기업이라고 다르지 않은 고령 노동자에 대한 대우

박 씨는 2015년 LG트윈타워에서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건물 두 개 층의 사무실과 복도, 화장실을 청소한다. 매일의 업무 중 가장 힘든 일은 '독한 약품'을 써가며 26개의 좌변기와 소변기를 닦아야 하는 화장실 청소다.

박 씨에게 LG트윈타워는 두번째 청소 일자리다. '그래도 대기업이니 전에 일하던 곳보다는 낫겠지'하는 기대가 있었다. 가족들도 적지 않은 나이에 대기업 건물로 출근한다니 신기해하며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청소 일을 한다고 하면 '그래도 큰 회사니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실은 달랐다. 대기업 청소 노동자라고 해서 다른 곳에서 일할 때보다 나을 건 별로 없었다.

월급은 딱 최저임금이었다. '근무시간 꺾기'도 있었다. 회사는 평일 8시간 일하는 청소 노동자의 휴게시간을 1시간 30분으로 잡았다. 이렇게 하면 주 40시간 근무 기준 매일 30분, 매주 2시간 30분의 노동시간 부족분이 생긴다. 청소노동자들은 이 부족분을 격주 토요일 근무로 채웠다.

1년 토요일 근무의 1/3 가량인 8번은 식당 바닥 왁스 작업이었다. 그간 바닥에 쌓인 묵은 때를 벗겨내고 약품 냄새를 참아가며 다시 왁스를 칠했다. 토요일에 나와 긴 시간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회사는 밥 한 끼 준 적이 없었다.

회사는 노동자의 안전에도 무심했다. 분명 월급에서는 4대 보험료가 나가는데 일하다 다친 동료 중 산재보상을 탔다는 이는 없었다. 다친 뒤 돌아오는 것은 관리자의 '왜 다쳤냐'는 다그침뿐이었다. 고소작업에 대한 안전장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화장실 천장을 닦아야 할 때는 사다리도 없이 변기를 밟고 올라가 일했다.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때도 있었다. 업무시간 중 청소노동자의 로비 출입은 금지였다. 쉬는 시간이면 어깨를 주무르라고 시키고, 같이 밥을 먹는 청소노동자에게 '숟가락 소리 난다'며 '조용히 먹으라'고 하는 등 갑질을 하는 관리자도 있었다. 2만 원씩 회비를 걷어 회식을 하는 날에도 식사비를 내고 돈이 남았는지 그 돈이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몰랐다.

알면서 당하는 일도 있고, 몰라서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박 씨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아가며 일했다. 다른 곳에 가서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노인에 대한 대우가 대부분 이렇다는 사실은 몸으로 알고 있었다.

▲ 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가 새벽에 출근해 화장실 바닥을 닦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노인 일자리에서마저 밀려나면 기다리는 건 빈곤임을 알기에

참고 참아온 박 씨에게 더는 참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작년 3월 회사가 일방적으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의 정년을 만 65세로 정한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에게는 원래 정년이 없었다. 면접을 볼 때 관리자는 '자신들이 보기에 건강하고 일을 잘 하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도 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들은 정년 개념 없이 매해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며 일을 해왔다. 그래도 청소 일에는 문제가 없었다.

한국사회의 노인 빈곤은 심각하다. 2018년 통계청 발표를 기준으로 한국사회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44%다. 이들은 한 달 97만 1000원(중위소득 50%) 이하를 벌어 산다. 노인 안전망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1955년생 여성의 32%만 국민연금을 받는다. 이들의 월 평균 연금 수령액은 34만 원이다.

박 씨와 같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의 상황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 일자리를 잃으면 당장 빈곤의 늪으로 빨려 들어간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박 씨는 작년 8월경 '노동조합'을 알게 됐다. 출퇴근 등 생활반경이 겹치는 여의도 다른 빌딩의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 회사에서는 만 70세 정년을 시행하는 곳도 상당수 있다는 말도 함께 들었다.

박 씨는 3명의 동료와 함께 생전 처음 노조 문을 두드렸다. 두달여 뒤 LG트윈타워에도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생겼다.

그 뒤 박 씨와 박 씨의 동료들은 회사에 그간 참아온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 뒤 바뀐 것이 꽤 있다. 이제 일하다 다쳤을 때 산재보상을 못 받는 일은 없다. 명절 상여금 10만 원도 새로 생겼다. 가장 좋은 건 근무시간 꺾기가 없어져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청소노동자에게 갑질을 하던 관리자도 징계를 받았다.

문제는 회사가 가장 중요한 쟁점인 정년에 대해 기존의 입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박 씨가 가입한 LG트윈타워분회는 회사에 '노사 협의로 정년을 정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 빨간 몸자보를 입고 화장실 거울을 닦고 있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프레시안(최형락)

한번쯤은 LG가 고령의 청소노동자 처지를 돌아봐주기를

박 씨는 자신들에게는 생계가 달렸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큰 돈 드는 일이 아닌 '더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대기업 LG와 그 가족회사인 지수가 들어주지 않는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간 시도해온 인원 감축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노조를 처음 만들었던 사람 중 일부를 내보내면 다시 청소노동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했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정년에 관한 한 박 씨도, 박 씨의 동료들도 물러설 곳이 없다. 지금 일자리를 잃으면 노인 빈곤의 늪에 빠질 위험이 큰 이들인 탓이다.

LG그룹과 그 가족회사인 지수는 고령의 청소노동자들을 끝내 밀어내고야 말까. 그래도 한번쯤은 LG그룹과 지수가 고령인 청소노동자들의 처지를 떠올리고 생각해주기를 바라며 박 씨는 오늘도 천막을 지킨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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