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들 줄을 서시오..115건 수배자, 경찰서 옮겨가며 조사
지명수배 내린 6개서 돌며 48시간씩 조사
‘서울 서대문경찰서→구로경찰서→경기 광명경찰서→부천소사경찰서→인천 남동경찰서→강남경찰서…’
최근 열흘간 사기 용의자 남모(여·25)씨가 손에 수갑을 찬 채 경찰차에 실려 조사를 받으러 다닌 동선(動線)이다. 인천 남동서 관계자는 “워낙 강행군이다 보니 용의자가 조사를 받으며 중간중간 쪽잠을 자는 등 지친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고 했다. 무슨 사연일까.
남씨는 2016년 6월 인천지법에서 사기 및 사기 미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에 집행유예 2년, 보호관찰 80시간과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보호관찰과 사회봉사 등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채, 바로 다음 달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고는 한국인을 상대로 한 온라인 사기로 하루하루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다.
사기 수법은 다양했다. 경찰 관계자는 “'온라인 사기'라고 부를만한 모든 수법을 동원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온라인에서 중고 핸드백 등을 판매할 것처럼 속여 돈을 받고 잠적하는 전통적 수법은 기본. 문자메시지로 은행을 사칭해 사람들을 속이기도 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은행이 입금 내역을 실시간 전송한 것처럼 가짜 문자를 보낸 뒤 전화를 걸어 “돈을 잘못 입금했으니 돌려달라”고 하거나, 개인 간 거래에서 돈을 보낸 것처럼 가짜 문자를 보내고 물건을 받아 챙기는 수법 등이었다.
이런 식으로 5년간 남씨에게 당한 사기 피해자가 128명, 사기 피해액은 총 6억2838만원이었다. 피해자들이 각자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면서, 남씨에게는 수배령만 서울을 비롯해 인천, 일산, 부산 등에서 총 115건 내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 등을 포함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이 법원은 남씨가 보호관찰과 사회봉사 명령을 어기고 해외로 도주한 죄를 물어 ‘집행유예 취소’ 처분을 2018년 내렸다. 잡히기만 하면 선고됐던 징역 6개월형이 집행된다는 의미다.
남씨는 지난달 26일 일본 도쿄 시부야 자택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고, 별다른 직업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5일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통상의 경우라면 입국과 동시에 곧바로 수감 대상. 그러나 남씨는 전국 각지 경찰서에서 ‘조사 대상자’가 돼 있었다. 남씨를 가둬놓으면 전국에서 경찰관들이 남씨가 수감된 교도소로 몰려가 조사하는 상황이 빚어질 판이었다. 결국 검찰은 ‘남씨를 체포영장이 발부된 경찰서마다 인계해가며 조사받게 하라’는 수사 지휘를 내렸다. 경찰서마다 체포영장 유효 기간인 ’48시간'씩 남씨를 조사한 뒤 다음 경찰서로 넘기게 된 것이다. 17일에도 경찰은 “남씨에 대한 조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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