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도 대응도 틀렸다.. 악순환 연속 부동산대책
호텔 등 개조.. 서울시 3만5000가구
전국 11만4000가구 임대주택 공급
"전세대란 새임대차법 후폭풍" 지적
정부는 "저금리·1인가구 분화 원인"
전문가 "효과 의문.. 규제 완화 필요"
통화 하는 장관, 머리 감싼 차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윤성원 국토부 1차관(왼쪽)과 손명수 국토부 2차관(오른쪽)은 곤혹스러운 모습으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
국토교통부는 앞으로 2년간 서울 3만5000가구 등 전국에 임대주택 11만4000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는 이번 대책의 배경이 된 최근 전세가격 상승의 원인을 ‘복합적’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시장과 국민은 유예기간도 없이 전격 시행된 새 임대차보호법이 불러온 대참사로 보는데도, 정부는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와 1인가구 분화 속도 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진단이 정확하지 않으니 처방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새 임대차보호법에 대해 “시행 전에 57.2%였던 전·월세 계약 갱신율이 지난달 66.2%까지 높아지는 등 성과가 있다”고 자평했다. 지난 7월 말 여당이 단독처리한 새 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 주거권 강화와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질서 형성에 도움이 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9%포인트의 계약갱신율이 높아진 효과를 제외하고 뛰는 전셋값에 전세난민으로 전락한 다수 서민의 고통은 너무 크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김 장관의) 이런 말에 국민은 짜증이 난다”며 “현재의 전세대란은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3개월 사이에 폭발한 것이다. 전 정권 탓만 하고, 한두 해 문제가 아닌 유동성을 거론하는 게 국민이 정부 정책을 더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2년반에서 3년이 걸리는 공사기간 등을 고려할 때 아파트 준공물량을 단기에 확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호텔 전용 주택 수요 등에 대해선 “최근 가구 수가 1, 2인가구를 중심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도심 우수 입지에 이들을 위한 공급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부동산시장은 전세난이 매매수요로 바뀌면서 매매시장이 다시 불안해지는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전세와 매매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서로 가격을 밀어올리고 끌어당긴다.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단지 주택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과열 우려가 있으면 즉각 대응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전세대란의 근본 원인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이 없고, 아파트 추가 공급 없이 ‘땜방’ 대책으로 일관했고, 매매 안정화 방안도 없는 ‘3무(無) 대책’이라고 혹평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는 “11·19대책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권 교수는 그러면서 “매매시장이 정상화되면 전세시장도 안정되기 마련”이라며 “정부가 보유세 인하와 양도세 감면 등으로 거래 활성화 환경을 조성하고, 160만가구 이상인 민간임대주택의 거래가 가능하도록 규제 완화에 나서는 등 ‘주맥경화’를 푸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고 장담한다. 부동산 가격을 반드시 잡겠다.”
19일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9일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부동산 시장 안정을 약속한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정부는 이날 ‘11·19 부동산대책’을 내놨다. 지난해 문 대통령은 “과거에는 ‘미친 전월세’라고 했는데, 우리 정부에선 전월세 가격도 안정돼 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 이번에 나온 대책은 그 ‘미친 전월세’를 겨냥한 것이다. 전월세 대란은 정부·여당이 전격 시행한 새임대차보호법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점은 아이로니컬하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번 대책으로 전세 불안은 물론 주택시장 전반의 상승세를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오히려 대책이 나올 때마다 부동산 시장 안정화는커녕 ‘풍선효과’ 등으로 집값이 상승하는 부작용만 양산해 왔다.
특히 이번 대책의 타깃인 전세시장 불안은 지난 7월 여당이 단독 입법처리한 새 임대차법 영향이 크다. 전세물량 부족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충분하고 장기적인 공급계획을 제시하지 못했다. 단기처방식 ‘땜질’ 대응으로는 추가 대책을 양산하는 악순환만 되풀이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24번의 대책이 엉클어놓은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그는 그러면서 “임대차 3법은 집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사회적 합의로 이룬 소중한 성과”라며 “임차인 주거 안정의 긍정적 효과를 임대차 시장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방법은 전세 수급을 안정시켜 임대차 3법이 조기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규정한 새 임대차법이 최근 전세난의 주요 원인이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법 손질이 불가피히다는 지적을 일축한 것이다.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부동산 시장도 안정시키지 못한 대책으로 인한 고통은 국민 몫이다. 한국감정원이 지난 16일 기준으로 조사한 주간 동향을 보면 전국의 아파트값이 0.25% 상승했다. 감정원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지난 2012년 5월 이후 8년6개월 만에 최고치다. 지방 아파트값은 0.32% 올라 감정원 통계 작성 이후 최고로 상승했다. 5대 광역시 중 부산도 이번주 0.72% 올라 역시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 상승을 기록했다.
전세난은 진정될 기미가 없다. 이번주 전국의 아파트 전셋값은 0.30% 올라 전주 대비 0.03%포인트 더 올랐다. 63주 연속 상승이다. 서울은 0.14%에서 0.15%로 오름폭을 키워 73주 연속 상승을 이어갔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은 “민간에서 잘 돌아가던 부동산 시장을 정부가 자꾸 흔들어대니 ‘쑥대밭’이 됐다”며 “정부가 대책을 낼 때마다 시장 생태계가 무너지고 교란됐는데, 이제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손 원장은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거나, 그동안의 행보에 대한 ‘자기부정’을 하지 않는 한 대책이 없다”며 “최소한 지금까지 나온 대책만큼의 대책이 향후에 더 나와야 시장이 정상 회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산층 주거방안 없이 청년층 집중 “엉뚱한 대책만 내놔”… 싸늘한 시장
19일 정부의 전월세 대책에 대해 부동산 시장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최근 전월세 대란은 이른바 ‘전월세3법’이 초래한 현상인데, 뾰족한 대책 없이 엉뚱한 정책만 내놓았다는 반응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탓에 전월세 가격이 오르고 다시 집값을 밀어붙이는 악순환만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최근 전월세 대란 원인으로 지난 7월 말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전월세2법(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 상한제) 영향이 크다고 볼멘소리다. 당시 강남과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 속에서도 전월세 시장은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는데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월세2법을 전격 시행하면서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포털 사이트 댓글엔 “(정부가) 자신들만의 사고에 갇혀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폄훼하고, 눈과 귀를 닫고 있다”며 “자신들의 정책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우기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이날 내놓은 대책에 대해서는 현재 전월세 대란을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시장에서는 평범한 가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데 정부는 청년이나 1인가구 등에게나 도움이 될 공급대책만 내놓았다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중산층이 거주할 전세 대책이나 분양 대책이 없다면, 서울에는 자가에 사는 부자와 공공임대에 사는 거주민만이 살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치권은 여야로 반응이 갈렸다. 민주당 허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번 대책으로 전세 공급이 증가하면 이에 따른 연쇄적인 전세 이동이 발생해 전세 매물이 증가하고, 임대차 3법에 따른 변화된 거래 관행도 정착되어 갈 것으로 기대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임차인의 안심 거주기간이 늘어나는 등 임차인의 주거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 포함)이 전세난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나기천·이현미·권구성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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