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 참사'..화물차 운전자만의 책임일까

이수민 수습기자 2020. 11. 20. 10: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행자 있는데도 달리는 차량들 '운전문화 바뀌어야'
시민들 "예견된 인재..신호등·과속감시카메라 없어"
19일 광주 북구 운암동 한 어린이보호구역에 차량이 횡단보도에 정차하는 등 안전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당 어린이보호구역은 지난 17일 8.5t 화물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가족 4명을 들이받은 사고를 낸 곳이다. 이 사고로 3살 여아 1명이 숨지고 30대 어머니와 7살 여아가 중상을 입었다. 2020.11.19 /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수습기자 = 지난 17일 광주의 한 아파트단지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8.5톤 트럭이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일가족 4명을 덮쳐 3세 아이가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50대 화물차 운전자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참사 현장은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사고 직전 맞은편 도로의 어린이집 교사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아이의 모습도 포착됐다.

포털 사이트 누리꾼들은 "어떻게 대낮에 저런 사고가 벌어질 수 있냐", "꽃도 피우지 못한 아이들이 너무 안타깝다" 등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한 네티즌은 "오롯이 화물차 운전자만의 잘못이라고는 볼 수 없다"며 많은 운전자의 그릇된 운전 문화와 신호등·과속감시카메라 설치 등의 행정 문제를 꼬집었다.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화물차 운전자 A씨의 '전방주시 의무 태만'이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앞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전진했다"며 "화물차의 운전석이 높아 가족들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CCTV를 보면 화물차량이 차량 정체로 횡단보도 앞에 정차하고 일가족이 횡단보도에 들어선다.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더라면 일가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 직전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정지하지 않고 곧바로 달린 맞은편 차량 4대도 사고 원인으로 꼽힌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일가족은 화물차 앞을 지나 도로를 건너려고 했으나 맞은편에서 잇따라 달리는 차량들 때문에 건너지 못했다. 그사이 앞쪽의 신호는 바뀌고 화물차가 출발하면서 가족들을 치었다.

도로교통법상 모든 차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는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않도록 반드시 일시 정지해야 한다.

경찰은 일시 정지 의무를 위반한 맞은편 차선 운행 차량 4대 운전자들에게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등의 혐의로 출석을 통보했다.

근본적인 사고 원인은 '안일한 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파트 주민과 인근 상인들은 "예고된 사고 다발 구역"이라거나 "사고 발생 책임이 행정에 있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사고 현장은 이미 무단횡단으로 두 차례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다. 주민들은 횡단보도와 신호등 설치를 요구했지만, 다음 신호등까지의 거리가 30여 미터밖에 되지 않아 횡단보도만 설치했다.

어린이보호구역이지만 과속단속카메라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올해 3월25일부터 시행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치사상의 가중처벌(일명 '민식이법')' 이후 어린이보호구역 내 과속감시카메라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경찰청 등의 자료를 보면 광주시내 전체 어린이보호구역 589곳 중 현재까지 과속감시카메라가 설치된 구간은 약 28%인 166곳에 불과하다.

광주경찰청 한 관계자는 "설치가 의무인 것은 맞지만 예산이 한정돼 있어 한꺼번에 전체 어린이 보호구역에 카메라를 설치할 수 없었다"며 "과속감시카메라 설치는 어린이들의 등하교 통행량이 많은 곳을 기준으로 우선 배치됐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지적과 쓴소리가 이어지자 이용섭 광주시장도 전날 사고현장을 찾았다.

이 시장은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주민들의 불만을 들은 뒤 "경찰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광주시내 모든 어린이보호구역에 대해서 강도높은 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또 "각 스쿨존의 위험요소를 찾아서 조치하겠다"며 "안전 표지판, 도로반사경·과속방지턱 설치 등을 점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안타까운 사고를 통해 광주시의 행정과 운전자들의 인식이 보행자 중심으로 바뀌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운전자는 "평소 내 자신의 운전습관에 대해 반성하고 보행자를 더욱 주의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며 "주위에서도 다들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breath@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