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불법 아닌 '비혼 임신'..불가능한 '비혼 임신'

박진수 2020. 11. 2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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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사유리 씨는 한국 사회에 '비혼 임신과 출산'이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우리 사회에 새로 던져진 화두인 만큼, 정말 불법인지 아닌지를 두고서도 많은 말이 오갔습니다. 한국에서 '비혼 임신과 출산'은 불법일까요?

"일단 한국에서는 모든게 불법이에요. 한국에서는 결혼하는 사람만 시험관이 가능해요. 그리고 일본에는 싱글로라도 시험관이 가능한데 한국에는 절대로 금지니까" -사유리(KBS 인터뷰 발췌)

[관련 기사]
[KBS 뉴스9] “꿈일까 무서워요”…자발적 ‘비혼모’ 선택한 방송인 사유리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49388
[KBS 뉴스9] “왜 결혼 안 한 여성은 엄마가 될 수 없나요?”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49392
‘자발적 비혼모’ 된 방송인 사유리…인터뷰 공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49639

■불법 아닌 '비혼 임신'...의사들도 "불법 아니었어요?"

보건복지부는 어제(19일) 불법이 아니라는 답을 내놨습니다. 비혼 임신과 출산이 법적으로 위법하지도 않고, 비혼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다만, 정자를 기증받는 기증 체계는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에게만 정자를 제공하고 있고 지원 역시 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생명윤리법
제24조(배아의 생성 등에 관한 동의) ① 배아생성의료기관은 배아를 생성하기 위하여 난자 또는 정자를 채취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에 대하여 난자 기증자, 정자 기증자, 체외수정 시술 대상자 및 해당 기증자ㆍ시술 대상자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 그 배우자(이하 "동의권자"라 한다)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다만, 장애인의 경우는 그 특성에 맞게 동의를 구하여야 한다.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생명윤리법)은 시술 대상자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 그 배우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 한하기 때문에 배우자 없이 출산하는 게 위법하지는 않습니다.

보건복지부 산하 연구기관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역시 정자 기증 시 배우자가 없다면 시술 대상자 본인의 동의만으로 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한국에 보조생식을 규율하는 법률은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습니다.

생명윤리법이 체세포 복제·배아나, 잔여 배아 연구 등을 규율하고, 임신을 목적으로 시행하는 '보조생식술'을 규율하기에는 내용 등이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어제 복지부의 설명 이후 산부인과 의사들도 혼란스러운 반응입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의 '보조생식술 윤리지침' 때문입니다. 이 윤리지침은 정자 공여 시술의 대상을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라고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지침상 원칙이 존재하는 겁니다.

보조생식술 윤리지침
1. 정자 수증자의 조건 및 기준
가. 정자 공여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정부 부처와의 혼선도 문제입니다. 일선 배아생성의료기관은 매년 정기적으로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실사를 받는데, 각 기관의 모든 시술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규정 외의 시술로 추궁을 당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에, 괜한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난자·정자 공여나 대리모 시술 등은 하지 않아 왔다고 겁니다.

가족관계증명서 등 서류를 제출받아 복지부의 검사에 대비해왔다고도 말합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수차례 보건복지부에 법이 없다는 질의를 했지만, "의사의 판단에 따라 본인 책임 아래 시행하는 것이다."라는 답변도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결국 "법적 강제는 없지만 사실상 법적인 강제가 이뤄지고 있다."라는 게 일선 의료기관의 반응입니다.

■지원은 불가…사회적 논의 첫걸음

모자보건법은 "모성 및 영유아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건전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도모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그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모자보건법을 볼까요? 현행 모자보건법은 '난임'을 부부 사이의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사실혼 관계도 지난해 10월부터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난임과 비혼 임신과 출산이 동의어는 아닙니다. 다만, 사유리 씨의 사례와 같이 비혼이면서 난임이라면 정부 지원 혜택을 받을 순 없습니다.

모자보건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1. "난임(難姙)"이란 부부(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경우를 포함한다. 이하 이 호에서 같다)가 피임을 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부부간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아니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미 통계청의 '2020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13세 이상 국민 10명 중 6명은 결혼 없이 동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10명 중 3명은 결혼 없이 자녀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겠죠.

국회와 여당도 논의에 동참했습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어제(19일)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비혼모 출산에 대한 세부적 규정이 없어 혼선이 벌어지고 있다며,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불필요한 지침의 수정을 위한 협의 조치에 바로 들어가 주시기 바란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지침의 보완과 더불어서 제도개선에 필요한 사항은 역시 국회에서 검토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직 논의할 게 산더미입니다. 생명윤리법이 있긴 하지만, 임신의 영역을 규율하고 있진 않습니다. 정자 기증을 위한 세부 기준이나 절차 등에 대해서도 법적·윤리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좋든 싫든 사유리 씨를 계기로 우리 사회도 이제 '비혼 임신과 출산' 논의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박진수 기자 (realwa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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