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대사관]힘깨나 쓴다는 나라는 다 찔러봤다, 한국과 너무 닮은 아프간

전수진 입력 2020. 11. 21. 05:01 수정 2020. 11. 2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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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전쟁의 포화, 피랍된 포로, 총을 든 탈레반 등, 아무래도 어두운 이미지가 다수일 겁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사실 한국과 많이 닮았습니다. 전략적 요충지이기에 끊임없이 외침을 겪었지만 강인한 민족성으로 이겨냈다는 점이 대표적이죠.

한국을 두고 6ㆍ25 전쟁과 북핵 이미지만 떠올린다면 솔직히, 억울하잖아요? 아프가니스탄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아프가니스탄의 아름다움이 궁금해 문을 두드렸습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자리한 주한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으로 여러분을 모십니다.

서울 용산 한남동의 아프가니스탄 대사관 응접실. 아프간 특유의 화려한 패턴은 현지 여성들이 한땀 한땀 직조한 작품이다. 전수진 기자

문을 열어주는 분은 압둘 하킴 아타루드 주한 대사입니다. 한남동의 전형적인 건물에 자리 잡은 대사관 입구엔 화려하기로 유명한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의 카펫이 깔려있습니다. 아프간은 지역별로 다채롭고 화려한 패턴의 직조 기술이 발달했는데요, 영상을 보시면 그 화려함이 전해질 겁니다.


‘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

아프간 땅을 처음으로 밟은 한반도 출신 인물은 누구일까요. 역사 시간에 '열공'했다면 들어봤을『왕오천축국전』의 작가인 승려 혜초입니다. 인도 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엔 이웃 국가인 아프간에 대한 언급도 나옵니다. 아프간 사람들은 당시만 해도 불교를 주로 믿었습니다.

“강한 군사들이 많다. 모직 옷과 가죽 외투, 펠트 웃옷을 즐겨 입는다. 눈이 오고 매우 추우며, 사람들은 산에 의지해 살아간다.”
실크로드가 관통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탓에 아프간은 항상 외침의 위협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험한 산세를 이용해 외침을 막아냈다는군요. 아프간의 별명이 ‘제국의 무덤’인데요, 과거 영국부터 구 소비에트연방(소련)까지, 당시엔 힘깨나 쓰는 국가들이 침략했다가 모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소련이 1991년 붕괴한 것은 아프간 침략 실패로 인한 여파라는 연구결과들도 있습니다.

압둘 하킴 아타루드 주한 아프가니스탄 대사. 전수진 기자

아타루드 대사는 “아프간은 문명의 교차로인 데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외침에 시달려왔다”며 “‘인도를 정복하고자 하는 자, (아프간 수도) 카불을 먼저 손에 넣어라’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고단한 역사를 견디며 살아온 국가가 아프간인 셈이지요.


“한국인 탈레반 납치 사건은 비극”

한국과 아프간의 양국 관계는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 관계가 수립된 건 2000년대 들어서죠.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인들의 뇌리엔 여전히 2007년 발생했던 샘물교회 피랍사건이 강렬합니다. 아프간에 선교 여행을 갔다가 피랍된 뒤 두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던 안타까운 사건이지요.

아타루드 대사는 당시 독일에 근무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다시는 발생하지 말아야 하는 비극이었다”면서 “탈레반과의 갈등을 포함해 모든 전쟁이 어서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타루드 대사는 특히 한국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아프간에 파병된 한국의 평화유지군이 지역 안정에 크게 공헌했고, 최근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관해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하면서죠.


파란 보석부터 빨간 사프란까지

아프간을 대표하는 보석 라피스 라주리를 활용한 공예품. 전수진 기자

아프간은 풍요로운 문화 유산을 가진 나라입니다. 탈레반이 2001년 파괴하며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던 바미안 석불도 아프간의 대표적 유적이죠.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 패턴으로 만든 카페트며, 의복도 자랑거리입니다.

아타루드 대사는 “이런 의복이며 카페트를 만들어낸 아프간의 여성들은 비록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지녔다”고 말했습니다. 영롱한 파란색을 자랑하는 보석인 라피스 라주리는 아프간 여행자들에겐 반드시 사야 하는 기념품이죠.

아프가니스탄의 대표 음식들. 푸짐하게 한 상을 차려 가족과 지인들이 나눈다. 전수진 기자

향신료 중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프란도 유명합니다. 이런 허브 등을 활용한 음식 문화도 발달했는데요, 영상에도 나오지만 한국과 비슷한 ‘만두’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차려놓고 저녁에 오손도손 모여 식사를 하는 게 소중한 일과라고 하네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나 나오는데 이런 서예 작품이 눈길을 끕니다.

“당신이 찾는 것이 / 당신을 찾고 있다.”

시인 루미의 작품을 한글 서예로 옮긴 것. 전수진 기자

간단한데, 철학적이죠. 아프간 등을 주요 무대로 활약했던 중세 시인 루미(1207~1273)의 작품입니다. 아타루드 대사가 특히 좋아해서 모국어뿐 아니라 한국어로도 표구를 했다고 하네요. 루미는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도 추앙받는 문호입니다.

아프간이 애타게 찾는 평화가 곧 아프간에 찾아오기를, 그래서 코로나19가 물러간 뒤 언젠가 한국의 여행금지령도 풀리기를 고대해봅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영상=여운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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