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 물려받았는데..상속세도 집 한 채

심재현 기자 2020. 11. 21.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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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기업 막는 상속세] (상) 상속세로 벌주는 나라

[편집자주] 전세계에서 대주주 상속세율(60%)이 가장 높은 나라 대한민국. 직계 비속의 기업승계시 더 많은 할증 세금을 물려 벌주는 나라. 공평과세와 부의 재분배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전국민의 3%만을 대상으로 하는 부자세이면서도 전체 세수에서의 비중은 2%가 채 안되는 상속세. 100년 기업으로의 성장을 가로막는 상속세의 문제점을 짚고 합리적 대안을 찾아봤다.

살던 집 팔아 상속세? 남 일 아니다…1주택자도 세금 비상
서울 강남권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제공=뉴스1

대기업 총수 자녀들의 문제로만 인식되던 상속세 문제가 집값 상승 바람을 타고 1주택 상속 자녀들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15일 국세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주택, 토지 등 부동산 자산을 물려받아 상속세를 낸 사람은 연간 4000~6000명 수준이다. 한 해 사망자가 약 30만 명이란 점을 고려하면 상속자 중에서도 2% 이내만 부담하는 일종의 부유세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3~4년간 서울 아파트를 비롯해 전국 집값이 급등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강남권에서는 한 채에 20억~30억 원대 아파트가 즐비하고, 강북권에서도 입지가 좋은 신축 아파트는 정부가 초고가주택으로 설정한 시세 15억원을 훌쩍 넘는다.

상속세 공제(기본 5억+배우자 5억)를 적용해도 과세 대상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평생 모은 재산으로 서울에 주택 한 채를 마련한 중산층마저 상속세 부담을 안게 된다는 얘기다.

3년 전엔 비과세였는데…집값 급등에 1주택자도 상속세 수천만원 내야

실제로 서울 한 중산층 가구를 가정해 배우자 사망에 따른 상속세 납부액을 추정한 결과, 집값 상승 영향으로 3년 전 비과세 대상이었던 1가구 1주택자도 배우자 사망 시 적지 않은 상속세를 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머니투데이가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세무사)에 의뢰해 서울 시내 주요 아파트 소유자 사망 시 상속세 납부액을 추정한 결과, 3년 전 비과세였던 전용 84㎡ 이하 중소형 아파트들이 새롭게 과세 대상에 포함됐고 납세액도 수천만 원~수억 원대에 달했다.

자산, 가구원 수 등 상속세 납부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변수가 있는 점을 고려해 가상의 납세자를 설정했다. 별도 소득 없이 공적연금으로 생활하며, 자녀가 2명인 중산층을 가정했다. 금융자산 규모는 강남권 1억원, 비강남권 5000만원으로 책정했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59㎡에 살았다면 3년 전엔 배우자 사망 시 상속세를 내지 않았다. 당시 시세가 8억5000만원으로 공제 한도를 넘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 아파트의 최근 시세(14억5000만원)를 반영하면 상속세 5571만원이 부과된다. 배우자가 없거나 동시 사망한 경우 자녀들에 부과되는 상속세는 약 2억2698만원에 달한다.

같은 단지 전용 84㎡의 경우 배우자가 있을 때는 3년 전엔 상속세 비과세 대상이었지만 최근 시세를 반영하면 약 7788만원의 상속세가 부과된다. 배우자가 없을 때는 세부담이 3억원을 넘어선다.

용산구 이촌동 한가람 아파트 전용 59㎡도 3년 전엔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됐지만 최근 시세를 반영하면 배우자 생존 시 6125만원, 배우자가 없을 때는 2억4444만원 상속세가 부과된다.


◇강남권 고가주택은 상속세 납부액 대폭 상승…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가격

이전부터 상속세를 내야 했던 강남권 고가주택은 세부담이 대폭 확대된다.

강남구 대치동 한보미도맨션 전용 84㎡는 배우자가 있을 때 상속세 부담액이 7593만원에서 2억3778만원으로 3배 이상 증가한다. 배우자가 없는 경우 최대 6억8676만원의 상속세가 예상된다.

대치동 선경 아파트 전용 124㎡의 경우 배우자가 있을 때는 3억9298만원, 배우자가 없을 때는 9억5836만원의 상속세액이 산출됐다. 이 주택에 거주 중인 자녀들은 부모가 동반 사망할 경우 웬만한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성년이 된 후 10년 이상 장기 동거주택 상속공제 6억원을 하더라도 부담은 만만치 않다.

상속세 내려고 집 팔아야 하나…전문가 "1주택 배우자 상속세 감면·유예 필요"

주택 상속세는 공시가격이 아닌 시세가 과세표준이며 물납이 허용되지 않고 전액 현금으로 부과된다. 또 집을 팔 때는 상속세와 별도로 매수액과 매도액의 차이를 과표로 하는 양도소득세도 추가로 내야 한다. 1주택자는 집을 팔아서 세금을 내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우병탁 팀장은 "법이 바뀌지 않으면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상속세를 내야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보완책을 주문한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전 한국세무학회장)는 "상속세 부과 대상이 중산층으로 확대되는 것은 법 취지에 어긋나고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며 "특히 1주택자는 배우자 사망에 따른 상속세 때문에 강제로 주택을 팔거나 이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시세 상승을 고려해 주택 상속세 공제 한도를 높이거나, 1주택자 사망 시 배우자는 추후 자녀 세대에 물려줄 때까지 과세를 유예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엄식 기자

"상속세 3번 내면 경영권 사라진다"…국내 100년 기업 9개뿐

'9개 vs 3만3000여개'. 한국과 일본의 100년 기업 수다.

해외에는 1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이 부지기수다. 기업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과 일본에는 200년 이상 유지되는 기업도 많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년 이상 된 전 세계 장수기업이 7000개가 넘는다.

독일 제약회사 머크, 영국 금융사 C호어앤컴퍼니, 이탈리아 총기제조업체 베레타가 그렇다. 미국 포드와 독일 BMW, 스웨덴 발렌베리처럼 낯익은 이름의 기업도 창업주 가문이 3대 이상 경영권을 대물림한 기업이다.

국내에서 100년 기업은 아직까지 기업인들의 꿈에 가깝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창업 100년을 넘긴 국내 기업은 9곳뿐이다. 200년 이상 기업은 없다.


1896년 서울 종로에 문을 연 '박승직 상점'이 124년 동안 두산그룹으로 성장한 게 가장 오랜 기록이다. 동화약품, 신한은행(이상 1897년), 우리은행(1899년), 몽고식품(1905년), 광장(1911년), 성창기업(1916년), KR모터스(1917년), 경방(1919년) 등이 갓 100년을 넘었다. 국내 최대 기업 삼성전자는 이제 막 51돌을 지났다.

산업화가 늦었다는 말만으로는 해명이 부족한 부분이 많다. S&P지수에 등재된 전 세계 90개 기업 평균수명이 65년인 데 비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집계한 국내 1000대 기업의 평균수명은 28년에 그친다. 한세대를 넘기지 못했다는 뜻이다.

재계에서는 경쟁 심화 같은 시장 내부 요인 외에 법·제도적 규제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업을 승계할 때 한국에서는 상속세 최고세율이 60%에 달한다. 상속자산이 30억원을 넘어서면 50%를 과세하되 최대주주 지분일 경우 상속자산을 평가할 때 20%를 할증해 평가하기 때문이다.


상속세 부담을 낮춰주는 가업상속공제제도가 있지만 요건이 까다로운 탓에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이 매년 70~80곳에 그친다.

국내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한 2세 기업인은 "상속세를 3번 내면 경영권이 사라진다는 얘기가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지분 100%를 물려받은 기업인이 상속세 60%를 내면 지분이 40%로 줄어들고 그 다음 대에서 남은 지분 40%에 대해 또 한 번 60%의 상속세를 내면 최초 지분의 16%만 남는다. 한번 더해 3대째 상속하면 지분이 6.4%만 남는다.


해외에서는 가업을 이어갈 때 상속세율을 낮춰주거나 공제 혜택을 대폭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6개 회원국 가운데 스웨덴, 호주, 캐나다 등 13개국이 상속세를 폐지했거나 자본이득세 등으로 전환해 상속세를 적용하지 않는다.

프랑스, 독일, 일본, 스위스 등 17개국은 전체 상속자산이 아니라 상속인 개개인이 받는 자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제도를 도입했다. 전체 상속자산이 최고세율 구간에 해당하더라도 유족 여러 명이 나눠 상속하면 최고세율을 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장수기업이 많은 독일에서는 가업을 승계하면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을 50%에서 30%로 낮춰준다. 기업상속공제 등 공제혜택까지 활용하면 실제 부담하는 상속세 최고세율이 4.5%까지 낮아진다. 이런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이 매년 7000~1만개사에 달한다. 일본은 2018년부터 가업상속은 상속세를 유예하거나 면제해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 가운데 창업 10년 미만인 기업의 고용능력지수는 0.49에 그치는 반면, 60~70년 또는 70년 이상 된 기업의 고용능력지수는 각각 14.17, 27.39에 달한다.

법인세 납부능력지수도 창업 10년 미만 기업은 0.52에 머무는 데 비해 60년 이상 기업은 5.14까지 올라간다. 해외에서 장수기업을 늘리기 위해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스웨덴에서는 세계적 제약회사 아스트라AB와 가구업체 이케아 등 상속세 부담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해외 이전을 준비하자 2005년 의회가 만장일치로 상속세를 폐지했다. 이들 기업은 곧바로 이전 계획을 철회했다.

황승연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국 부의 재분배를 위해 당장 상속세를 많이 거두는 게 효과적이냐, 상속세 부담을 낮추되 장수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늘리는 게 효과적이냐의 문제"라며 "상속세를 3번 내면 기업이 넘어가는 상황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키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상속세 한국 11조, 미국 7조, 스웨덴 0원…정의로운 나라는?

상속세 11조원이 현실이 됐다. 이른바 '삼성 상속세'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했던 삼성그룹 계열사 주식 18조원의 60% 규모다.

내년 4월 말 이뤄질 총수 일가의 자진신고 절차가 남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상속과 세금 납부 외에 마땅한 방도가 없다. 납부액이 확정되면 국내 연간 상속세 총액의 3배에 달하는 역대 최고액으로 기록된다.

◇상속세 논란 배경엔 국가경제 손실우려


삼성 상속세는 사실 해묵은 이슈다. 1950년 상속세법이 제정됐을 때부터 줄곧 고액주식 상속자에 대한 최고세율은 상속지분의 45%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2000년 들어 상속세법이 마지막으로 개정되고 삼성그룹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을 때 이미 현재 논란이 되는 규모의 상속세가 사실상 확정됐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상속자산이 최대주주 지분일 경우 20%를 할증 평가하고 △30억원 초과 지분에 대해서는 50%를 과세한다. 할증평가를 반영한 실질 최고 상속세율은 60%다.

20년 전부터 예고됐던 사안을 두고 새삼 재계뿐 아니라 정치권과 학계에서도 문제제기가 이어지는 것은 현실이 된 천문학적인 상속세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해외 사례에 비해 과세액이 징벌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하다는 점이 논란에 불을 붙였다.


그 배경에는 세금에 치여 경영권을 포기하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가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상속세를 내지 못해 지분 상속을 포기하고 경영권을 넘긴 사례(2017년 락앤락·유니더스, 2013년 농우바이오, 2008년 쓰리세븐)가 이미 드물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삼성 총수 일가의 상속이 미국에서 이뤄진다면 상속세는 7조30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영국에서라면 3조6000억원만 낸다. 호주나 스웨덴은 상속지분을 팔지 않는 한 상속세를 한 푼도 물리지 않는다. 세금은 지분을 팔았을 때 자본이득세를 물린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6개 회원국에서 삼성 총수 일가가 적용받을 수 있는 상속세율은 미국 40%, 독일 30.0%, 영국 20.0%다. 호주, 스웨덴 등 13개국은 0%다. 한국에서는 자진신고 세액공제 등을 반영해도 상속세율 57%가 적용된다. 상속세를 기간 안에 신고하면 세액의 10%를 깎아주던 데서 3%만 빼주는 것으로 2016년 혜택을 축소했다.

◇이중과세도 문제…살아서 내고 죽어서 또 내고


물론 한 국가의 세금 체계가 사회문화와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소득세·법인세·재산세·양도세 등 과세 부문별로 차이를 두고 각각의 과세율이 유기적으로 맞물린다는 점에서 상속세만 따로 떼 내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이를테면 상속세가 낮은 나라에서는 높은 수준의 소득세로 조세형평성을 맞춘다. 상속세가 없는 스웨덴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올해 개정분(57% 구간 폐지)을 반영해 52%에 달한다. 한국의 현행 소득세 최고세율은 42%.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0년 세법개정안'에 신설되는 10억원 초과구간의 최고세율을 반영해도 45%다.

과세표준을 비교하면 스웨덴에서는 6876만원 이하 소득에 대해 32%, 6876만원 초과 소득에 대해서는 52%의 2단계 소득세율을 매긴다. 총 7단계로 나뉘는 한국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에서 4600만원 초과 8800만원 이하 소득에 대한 세율은 24%에 그친다. 유럽 복지국가 모델로 평가되는 스웨덴에 비해 국내 소득세율이 현저하게 낮은 게 사실이다.


문제는 '소득세+상속세'의 합산세율이다. 한국의 합산 최고세율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 2위인 일본이 100%, 한국은 102%(상속세 60%+소득세 42%)다. 정부의 '2020년 세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105%가 된다. 부의 세습 방지, 부의 재분배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내고 죽어서 또 내는' 이중과세 논란이 빚어지는 이유다.

일본을 포함해 OECD 16개 회원국이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형태로 부과해 상속세 부담을 낮추려고 하는 것도 이를 의식한 조치다. 전체 상속자산의 규모가 아니라 상속인이 받는 자산의 규모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상속세법에 대입하면 전체 상속자산이 최고세율 구간에 해당하는 30억원을 초과하더라도 유족 여러 명이 나눠 각자 30억원 이하를 물려받으면 최고세율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재분배 위해 상속세 폐지…"상속세가 오히려 탈세 조장"


스웨덴을 포함해 OECD 주요국이 잇따라 기업 최대주주의 상속세 폐지 또는 인하에 나서는 더 직접적인 이유는 상속세 부담을 낮추는 것이 오히려 국가경제와 부의 재분배에 보탬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2005년 상속세를 없애기 전 상속세 부담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해외 이전을 준비했다. 세계적 제약회사 아스트라AB와 가구업체 이케아가 대표적이다. 이들 업체는 스웨덴 의회가 만장일치로 상속세를 폐지하자 본사 이전 계획을 철회했다.

기업 최대주주들이 상속받는 주식 지분은 엄밀한 의미에서 가처분소득은 아니다. 100억원을 상속받으면 60억원을 세금으로 내고 40억원만 가져가도 되는 셈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학계 한 인사는 "경영권과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상속받는 지분은 지분대로 유지하면서 상속세를 내려면 기업 총수로 올라서는 순간부터 주식담보대출을 비롯해 빚쟁이로 출발할 수밖에 없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높은 상속세가 오히려 탈세를 조장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자본이득세 고민할 시점…"세금도 국가별 경쟁"


기업승계가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업의 존속과 일자리 유지를 통해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본다면 현행 상속세제는 말 그대로 거침없이 역주행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올 1월 "한국의 고율 상속세가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임동원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스웨덴처럼 기업승계에 한정해 상속주식을 처분할 때 차익에 과세하는 자본이득세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상속주식을 처분하면 피상속인과 상속인 모두의 자본이득에 과세하기 때문에 조세형평성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스웨덴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세금도 국가별로 경쟁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상속세 역시 세계적인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심재현 기자

상속세 마련 못해 '눈물의 매각' 나선 기업들

#1973년 설립된 유니더스는 콘돔시장 세계 1위에 이름을 올렸던 중견업체다. 세계 조달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으며 연간 11억 개가 넘는 콘돔을 생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5년 창업주 김덕성 회장 별세 후 사모펀드에 결국 경영권이 넘어갔다. 2세인 김성훈 사장이 세금 분할 납부를 신청하며 회사 경영의지를 밝히기도 했지만 약 50억원의 상속세를 부담하기 어려워 결국 2017년 11월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농우바이오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종자기업이다. 1995년 50만달러 수출을 시작으로 중국·미국 등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며 사세를 키웠다. 하지만 2013년 창업주 고희선 명예회장 타계 후 1200여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유족들이 회사를 포기했다. 결국 2014년 농우바이오는 농협경제지주에 매각됐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상속세율이 과도하게 높아 기업승계 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은 기업을 키우려는 의지를 저하시키고 경영상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활동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15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19년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중소기업 10곳 중 7곳(66.8%)이 중소기업의 영속성 및 지속경영을 위해 '가업승계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중요하지 않다'고 답변한 기업인은 5.2%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사에 응한 대다수 기업들은 가업승계 과정에서 상속·증여세 등 '막대한 조세 부담'(77.5%)을 가장 크게 우려했다.

실제로 가업승계의 길목에서 상속세 부담 등을 이유로 매각을 택하는 사례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점유율 세계 1위를 자랑하던 손톱깎이 업체 '쓰리세븐(777)'은 2008년 창업주 김형규 회장이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면서 유족들은 약 150억원의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밀폐용기 국내 1위 업체 락앤락 창업주 김준일 회장은 생전에 상속세 부담 등을 고려해 2017년 6200억원을 받고 회사를 홍콩계 사모투자펀드(PEF)에 팔았다.

이밖에 광통신 소자제조 업체 우리로광통신, 온라인 화장품 판매사 에이블씨앤씨, 신발갑피 원단 제조업체 유영산업 등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경영권을 매각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중견·중소기업계에선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기업 성장을 위축시키고 기업가의 의욕을 꺾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매출액 3000억원 미만으로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에 대해 가업승계 감면을 하고 있으나, 이외의 감면 조건이 까다로워 실제 활용 빈도가 낮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율(50%)은 OECD국가 평균(26%)의 2배에 달한다"면서 "최대주주 할증 세율 60%를 감안하면 일본의 55%보다 높다"고 말했다.

그는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 상속세가 없는 나라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징벌적 과세' 차원의 과도한 상속세로 대주주의 지분 감소에 따른 경영권 우려 등 경영 장애요인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또 세계적으로 상속세가 축소되는 움직임에 맞지 않고 기업가 정신 고취, 기업의 영속성 차원에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민 기자

상속세 OECD 2위·소득세 7위…이중과세 반발 나오는 이유
한국의 상속세율은 소득세율과 더불어 세계 주요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경영권을 함께 상속받는 경우 상속세율이 최고 60%에 달한다. 이미 재산형성과정에서 최고 42%까지 과세하고 남은 상속재산에 대한 부과하는 게 이 정도다.

1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경제연구원, 학계 등에 따르면 현행법상 50%인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일본의 55%에 이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36개국 가운데 2위 수준이다. 프랑스의 상속세율이 최고 45%로 한국의 뒤를 이었고, 미국과 영국은 상속 재산에 최고 40% 세금을 적용한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연간 5억원 초과 시 42%(지방세 제외)로 OECD 국가 가운데 14번째다.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 벨기에, 이스라엘 증이 최고 50%대 소득세를 부과하고 일본과 프랑스, 독일 등은 45%까지 소득세를 물린다.

기재부는 2020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연간 10억원 이상 소득에 대해 45%까지 소득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정부안대로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한국은 OECD 국가 중 7위 수준의 소득세 과세 체계를 갖게 된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안에 비해 소득세 구간을 더 세분화하고 최고세율을 46%까지 올리는 법안을 발의해, 국회는 정부안과 함께 다룰 예정이다.

일각에서 상속세가 과도하다는 반발이 나오는 것은 소득세와의 상관관계 때문이다. 상속을 하는 부모가 재산 형성과정에서 최고 42%에 달하는 소득세를 납부했는데, 납세 후 남은 재산에 그보다 더 높은 세율로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은 일종의 이중과세라는 지적이다.

특히 OECD로 대표되는 주요국가 가운데 소득세와 상속세 모두 상위권에 위치한 탓에 납세자 관점에선 조세 구조가 가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캐나다와 스웨덴, 호주 등 OECD 13개국은 상속세가 아닌 상속재산 처분 시 과세하는 자본이득세 등을 도입한 점도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상속세 부담을 지운다는 근거다.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 이상 국가 안에서 살펴봐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50%대 상속세율을 유지하는 국가는 일본뿐이다. 소득세와 상속세 최고 세율 합산 기준으로도 프랑스와 일본만 우리나라보다 세율이 높다. 상속세 대주주 지분 할증 10%까지 합쳐지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세율(60%+42%)이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상속세는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장치로 다른 나라에 비해 제일 높은 편"이라며 "재산 형성과정에서 납부한 소득세와 비교해 이중과세 논란이 있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산이 자녀에게 이전되는 점에선 일종의 소득에 물리는 세금이기 떄문에이론적으론 틀리다 할 수 없다"며 "이중과세 논란과 부의 대물림에 따른 세대 간 소득격차 완화 등을 고려해 상속세율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각 나라의 조세제도는 형성과정에서의 정치적·역사적 합의인 만큼 우리나라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과거 짧은 기간 고도성장을 이뤄내며 지나쳐 온 과세 형평과 국가 차원의 지원 등 결과로 현대의 부를 쌓았다면 그에 맞는 고율의 세율도 합리적이란 의견이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개발 시대에서 기업의 성장은 정부와 사회의 자원을 집중한 성과로도 볼 수 있어 다른 나라와의 단순비교는 맞지 않다"며 "부의 형성이 사회적인 노력의 결과이고 성과를 제대로 배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현행 상속세율은 분배 정의에 더 적합하다"고 밝혔다.

김훈남 기자

"차라리 기업 대신 현금을 물려주겠다"
"저도 내년이면 나이가 70이에요. 회사가 더 성장하려면 젊은 세대가 경영을 맡아야 하는데 상속세 부담이 커서 고민입니다."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는 양변기 부품으로만 47년 외길 인생을 걸었다. 22세에 단돈 5만원으로 회사를 창업해 코스닥 상장사로 키워냈다. 그의 인생을 바쳐 키운 자식같은 회사지만, 최근 들어서는 심각하게 매각을 고민하고 있다. 증여세가 만만치 않아서다.

송 대표는 "경영이 2대로만 내려가도 (세금을 내느라) 지분이 별로 안 남는다"며 "차라리 (매각해) 다 써버리는 게 나을 정도다"고 토로했다.

2세 경영은 최근 수년간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에 가장 큰 고민거리다. 회사 창업부터 성장까지 이끌어온 CEO들이 중년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이슈다.


실제 코스닥협회가 지난 6월 코스닥 상장사 1409개사의 CEO 1707명을 조사한 결과, 평균 나이가 56.3세로 집계됐다. 50대 CEO는 785명으로 전체의 46%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60대가 447명(26.1%), 70대 이상도 116명(6.7%)이었다. 은퇴를 앞둔 CEO가 전체의 80%에 달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은 상속·증여세 부담에 대부분 가업승계를 계획하지 않고 있다. 올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발간한 '2019년 중견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견기업 1400곳 중 82.9%는 가업승계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현재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율은 최고 50%로 OECD 국가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여기에 상속세법상 최대주주 할증 대상에 포함되면 최고세율은 60%로 치솟는다. 세금이 지나치다는 비난을 의식해 정부는 올해부터 중소·중견기업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완화했지만, 여전히 공제를 받으려면 업종, 자산, 고용을 7년간 유지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이는 세계적으로 기업가 정신을 고려하는 흐름과도 동떨어진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창업주가 사업을 시작해 성장궤도까지 올려놓는 특성상 창업주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경영자가 바뀔 경우 기업DNA가 달라져 명운이 사그라드는 경우가 많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자랑하는 일본도 가업 승계를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해석해 예외조항을 두는 것과 대조된다.

2008년 '중소기업 경영승계 원활화'법을 제정해 각종 감면 혜택을 만든데 이어, 2018년부터는 10년 한시 '특례사업승계제도'를 만들어 증여·상속세를 전액 유예 또는 면제하는 조치를 시행 중이다. 일본에 명문 장수기업이 많고, 중소기업에도 청년들의 취업이 줄을 잇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에서는 상속 대신, 기업을 팔아서 현금 물려준다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의 M&A팀들은 물론, PEF(경영참여형 사모펀드)도 CEO가 고령화된 기업들을 주된 영업 대상으로 삼는다. 그나마 국내 토종 PEF라면 사정이 낫지만 해외 PEF에 넘어가면 기술력, 노하우까지 해외유출될 수 있다.

지난 2018년 7월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한국은 기업 오너가 상속을 하는 것보다 사모펀드에 회사를 내놓는 것이 더 이득인 나라"라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 PEF 시장 급성장 배경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은 상속세율이 작용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1970~1980년대 설립한 회사 창업주들이 은퇴할 나이가 되면서 최근 5~6년간 가업승계 이슈가 있는 기업들은 PEF의 주요 딜 소싱처가 되고 있다"며 "PEF에게 기업이 넘어가면 일단 현금이 생기는 데다 경영권은 바뀌어도 2세들이 전문경영인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어 선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소연·김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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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기자 urme@mt.co.kr, 세종=김훈남 , 구경민 기자 kmkoo@mt.co.kr, 유엄식 기자 usyoo@mt.co.kr, 김소연 기자 nicksy@, 김영상 기자 vide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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