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빨려들어간 낚싯배..9명 목숨 구한 해경 민간구조대

진창일 입력 2020. 11. 21. 10:01 수정 2020. 11. 2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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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낚싯배, 여수 해상 암초 부딪혀 침몰 시작
"저체온증 때문에 위험한 겨울바다..민간 역할 커"

지난 8일 오후 1시 11분쯤 전남 여수시에서 70㎞ 떨어진 해상에서 9명을 태운 9.77t급 낚싯배가 갑자기 후미부터 침몰하기 시작했다. 낚시꾼들은 뱃머리로 몸을 피했지만, 차가운 바닷물은 거침없이 밀려들었다. 그때 이들의 목숨을 구한 것은 해경도 아닌 ‘민간구조대’로 활동하던 3.49t급 유자망(流刺網) 어선 ‘화성호’ 선장 정병오(56)씨였다.

지난 9일 전남 여수시 돌산 상동항에서 여수해양경찰이 9명의 목숨을 구한 유자망 어선 선장 정병오씨 부부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여수해경


“낚싯배 보고 혹시나 했는데…”
낚싯배가 침몰하던 그 날, 선장 정씨는 부인과 함께 아침 일찍 바다로 나와 투망을 던지고 있었다. 정씨는 “그날따라 갯바위로 낚시꾼들을 태우러 가는 9.77t급 낚싯배에 눈을 뗄 수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조업할 때마다 과속하는 낚싯배가 만든 파도가 밀려와 투망 작업 중이던 부인이 다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그의 부인이 다급히 정씨에게 낚싯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알렸다.

정씨 부부의 배를 지나쳐 갯바위에서 승객을 데리고 나오던 낚싯배가 암초에 부딪혀 후미부터 침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고지점은 여수시 삼산면 초도 인근의 무인도인 ‘술대섬’. 여수항으로부터 70㎞ 거리로 화물·여객선으로는 2시간이 걸린다. 무턱대고 해경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


거센 파도만큼 무서운 ‘저체온증’

정씨는 “낚싯배가 가라앉는 것을 보고서 바로 작업하던 투망도 모두 내팽개치고 배를 몰고 달려갔는데 약 3분 정도밖에 안 되는 사이에 배가 전부 침몰해버렸다”며 “그날따라 날도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 구조가 어려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선장과 선원·승객 모두 구명조끼를 입어 가라앉진 않았지만, 배에 싣고 있던 구명부환을 엮어 바다에 떠다니는 승객을 한데 모았다. 해경에게서 해상사고 구조요령을 배운 대로 배를 바람이 부는 방향에 세우고 선장과 승객들이 더는 떠내려가지 않게 막았다.

정씨는 “이날이 입동(11월 7일) 하루 뒤였는데 겨울 바다에서 파도만큼 무서운 게 저체온증”이라며 “바로 달려가서 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구했는데도 저체온증 때문에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해경 구조협조요청보다 빨랐던 인명구조

지난달 6일 오전 2시 54분께 전남 신안군 흑산도 북방 약 26㎞해상에서 불이 난 86t급 어선 '2017 국제호'에 목포해경 소속 1509함 대원들이 접근하고 있다. 사진 목포해경


정씨 부부가 구조작업을 모두 끝내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니 해경으로부터 구조협조요청 문자가 와 있었다고 한다. 정씨 부부가 발 빠르게 해상사고를 당한 선원과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었던 것은 2017년부터 여수해양경찰서의 ‘민간해양구조대’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수해경 관계자는 “해경 관할 면적이 대한민국 육지 면적의 4.5배에 달하는데 사망자 발생을 줄이려면 민간선박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고 했다. 지난달 6일 오전 4시쯤 전남 신안군 흑산도 북방 26㎞ 해상에서 불이 난 86t급 어선 ‘2017 국제호’에서 사망자가 1명도 나오지 않은 데는 바다에 뛰어든 선원들을 구조한 민간 선박의 도움이 있었다.

지난해 기준 해경에 등록된 전국 민간해양구조대원은 4681명, 선박 3788척이다. 여수해경에는 올해 11월 기준 526명·378척의 해양구조대가 등록돼 있다. 여수해경은 9명의 목숨을 구해준 정씨 부부를 찾아 ‘인명구조 유공 감사패’를 전달했다.

여수=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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