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우월주의'에 펀치 날린 K팝..트럼프도 맞았다

윤세미 기자 2020. 11.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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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K팝엔 군무만? 저항도 있다(下)

[편집자주] 칼군무로 상징되는 K팝은 혹독한 연습생 생활과 다년계약으로 비난받기 일쑤였다. 자연스레 자유와 저항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하지만 BTS와 블랙핑크 등으로 인해 전세계 각국으로 확산된 팬들은 K팝을 진화시켰다. 미국의 인종차별 반대(BLM) 시위와 홍콩, 태국과 칠레 등에서는 정권에 대한 항의 수단으로까지 승화시킨 것이다. 아미(A.R.M.Y)는 저항의 동맹군(Allied Forces)이 됐다.

백인우월주의 맞짱...K팝 날린 펀치, 트럼프도 맞았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K팝 열혈팬들이 미국에서 하나의 사회세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백인우월주의 단체의 해시태그 운동을 번번이 좌절시킨 것도, 인종차별 반대시위를 지원사격한 것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유세장을 텅텅 비게 한 것도 K팝 팬덤이었다. 다양성과 열정을 공유하는 K팝 팬들은 팬덤 활동을 통해 쌓은 응집력과 전투력을 무기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K팝 팬덤, 백인우월주의 '발랐다'

올해 K팝 팬덤의 '밥'이 된 건 백인 우월주의단체 '큐아논(QAnon)'이다. 큐아논은 진보세력을 어린이 인신매매 등을 일삼는 범죄집단으로 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이에 맞선 구원자로 여기는 백인우월주의 음모론 집단이다. 이들의 주장을 총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지만 큐아논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추종자들을 끌어모으면서 세력을 확장했다. 올해 6월 백인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흑인 남성이 숨진 뒤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벌어지자 이를 조롱하면서 #백인의생명은소중하다(WhiteLivesMatter)라는 해시태그로 트위터를 뒤덮은 것도 이들었다.

'큐아논'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여성/사진=AFP

큐아논에 제동을 걸고 나선 건 K팝 팬덤이다. 이들은 K팝 스타의 '밈(meme·짤)'에 #덕후트위터나가신다(Stan twitter RISE)라는 해시태그를 붙인 뒤 #백인의생명은소중하다 #큐아논 같은 해시태그와 묶어 게시물 폭탄을 던졌다. K팝 스타의 밈으로 인종차별주의 해시태그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큐아논에 관한 책을 쓰는 음모이론 연구원은 마이크 로스쉴드는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큐아논은 홈그라운드에서 K팝 팬들에게 완전히 털렸다"면서 "이 세상에서 큐아논에 이렇게 맞설 수 있는 단체는 단연코 없다"고 평가했다.

K팝 팬덤은 큐아논을 막아세우는 한편 인종차별 반대시위는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텍사스주 댈러스 경찰이 불법시위 영상을 제보하라며 '아이워치 댈러스(iWhatch dallas)' 감시앱을 공개하자 K팝 팬들은 이 앱을 자신이 응원하는 스타 관련 게시물로 도배해버렸다. 방탄소년단(BTS) 팬클럽 아미(ARMY)는 흑인 인권운동에 쓰라면서 100만달러(약 12억원)을 모금해 기부하기도 했다.

K팝이 날린 펀치, 트럼프도 맞았다

K팝 덕후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새삼 주목받은 건 지난 6월 20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를 '폭망'으로 이끌면서다. 2만석 규모 경기장에서 열린 이 유세에는 신청자가 수십배를 초과해 대흥행이 예상됐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0만명이 털사에서 열리는 유세 티켓을 신청했다"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트럼프 캠프는 경기장 밖 야외무대도 준비했다. 그러나 유세 당일 현장에 나온 사람은 6000명 남짓에 불과했다. 경기장은 썰렁했고 야외무대도 곧바로 철거됐다.

지난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세장 2층이 텅텅 비었다/사진=AFP


CNN,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유력 언론은 '노쇼 시위'를 주도한 세력으로 K팝 팬덤과 10대 틱톡 이용자들을 지목했다. 실제로 이들은 좌석을 예매한 뒤 현장에 가지 말자는 약속을 온라인으로 공유했고 트럼프 캠프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48시간 안에 관련 게시물을 지우는 치밀함도 보였다. '세계 최강 권력자' 현직 미국 대통령의 행사를 대실패로 이끈 초유의 사건이었다.

11월 3일 대선 당일에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트위터에 #4년더(4MoreYears) 해시태그 게시물을 올리자 K팝 팬들은 이 해시태그에 스타들의 밈 공격을 단행했다. 트럼프 연임을 반대하는 이들도 덩달아 K팝 스타들의 사진을 올리면서 흐름에 동참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한 BTS 팬이 올린 #4년더 해시태그 게시물/사진=트위터


그렇다고 K팝 팬덤이 민주당을 응원한 것은 아니었다.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 민주당 당선을 위한 풀뿌리 단체인 '바이든작전실(Biden War Room)'이 '바이든을 위한 K팝(K-pop for Biden)' 밈을 트윗하면서 K팝 팬덤의 힘을 빌리려고 했지만 "우린 너도 싫은데(We don`t like you, either)," "됐다 그래(hell to the no)"라는 반응만 돌아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인종차별 같은 분명한 불의에는 저항하지만 과도한 정치색이 자신이 응원하는 스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게 블룸버그의 분석이다.

외신은 Z세대를 대표하는 K팝 팬덤이 미국에서 정치·사회운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하나의 세력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은 "K팝 팬덤이 젊고 디지털 지식이 풍부하며 정치적 관심이 높은 Z세대의 표본으로서 온라인 운동가로 진화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K팝 팬덤은 강력한 네트워크를 동원해 효과적으로 디지털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이들은 K팝 산업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고려돼야 하는 하나의 세력이 됐음이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윤세미 기자


태국시위대의 '다만세'떼창…4년전 한국 촛불시위 도화선
17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의 의사당 부근에서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한 시위자가 저항의 상징인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태국 의회가 이날부터 이틀간 7개 개헌안을 논의하는 가운데 의사당 주변에는 개헌 찬반 집회가 열렸다. 2020.11.17./사진=[방콕=AP/뉴시스]

케이팝이 '유행가'를 넘어 '투쟁가'가 됐다.

태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태국에선 야당인 '퓨처포워드당'(FFP)이 지난 2월 해산된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퇴진은 물론 군주제 개혁까지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확산됐는데, 시위대가 케이팝을 따라부르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케이팝을 대표하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태국 시위대의 영상이 큰 인기를 끌었다.

다시 만난 세계는 지난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이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 등에 반대하며 농성을 벌이던 와중 경찰과 대치하던 상황에서 부른 노래로 당시 촛불시위의 도화선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세는 방황 속에서도 꿈과 도전을 놓지 않겠다는 소녀들의 꿈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소위 '조공'하기 위한 모금에도 익숙했던 태국 케이팝 팬들은 반정부 시위를 위해서도 수십만달러를 보내며 행동에 나섰다. 지난달 20일 기준으로 따져도 300만바트(1억1000만원) 이상이 시위대를 위해 보내졌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3일(현지시간) '케이팝이 태국 젊은층의 시위를 촉발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수십만달러를 모금하고 춤을 통해 젊은층에게 영감을 주는 등 케이팝 팬들은 태국 반정부 시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으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태국 수도 방콕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소녀시대'의 '다시만난세계'에 맞춰 춤을 추자, 주변에 몰린 시위대도 함께 노래를 부르며 호응하고 있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지난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던 칠레에선 케이팝 팬들이 시위대 배후로 지목당한 일이 있었다. 그만큼 케이팝 팬들의 영향력을 크게 본 것이다.

칠레 내무부가 검찰에 제출한 112쪽 분량의 시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케이팝 팬들은 아르헨티나 좌파 인사 등과 함께 시위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이름을 올렸다.

보고서는 지난해 10월 18일부터 11월 21일까지 트위터 등 SNS에서 500만여명의 사용자가 쓴 시위 관련 게시물 6000만여건을 분석한 것으로, 칠레 정부는 보고서에서 케이팝 팬들이 시위 초기 400만여건이 넘는 리트윗(재전송)을 통해 시위 동참을 부추겼다고 썼다.

이에 일각에선 칠레 정부가 시위 원인을 내부에서 찾기보다 케이팝 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야당인 사회당의 마르셀로 디아즈 하원의원은 "수치스럽다"며 "우리는 케이팝을 범죄자로 만들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8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며 돌을 던지고 있다. 현지 언론은 지금까지 시위로 22명이 숨졌고 2000명 이상이 다쳤으며 이 중 230여 명이 경찰이 쏜 고무탄에 맞아 실명했다고 전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시위대의 사회적 요구에 대해 지나치게 강경한 진압과 무력 사용을 시인했으며 "폭력진압 행위는 처벌받게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2019.11.19./사진=[산티아고(칠레)=AP/뉴시스]


이지윤 기자

K팝 팬덤이 뭉쳤다…군무 아닌 저항 시작됐다
방탄소년단 팬들/사진=AFP

‘소셜 미디어계의 가장 강력한 군대’ - CNN

K팝 팬덤엔 '이름'이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팬덤 '아미(A.R.M.Y)', 블랙핑크의 팬덤 '블링크' 등이다. 팬들은 하나의 이름 아래 단단한 '소속감'을 갖는다. 전 세계 다른 가수의 팬보다 K팝 팬덤이 잘 '조직화'하고, 하나의 메시지를 더 잘 공유해내는 배경이다.

이런 특성은 K팝의 세계화와 함께 '정치 참여'의 동인이 됐다. 올해 미국을 뜨겁게 달군 반反인종차별 운동 'BLM(Black Lives Matter)'에 미국 K팝 팬덤이 큰 목소리를 낸 게 대표적이다. 태국과 홍콩 반정부 시위에서 K팝 음악이 주제가가 되고, 팬덤을 중심으로 시위가 조직되기도 했다.

◇BLM 시위대의 '동맹군'

K팝 팬들/사진=AFP

6월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시위가 반인종차별 운동으로 번졌다. 전 세계가 '#BLM' 해시태그를 통해 공감하자 미국 K팝 팬덤이 움직였다. 특히 미국 '아미'들은 전 세계 아미들에게 인종차별 반대운동에 동참을 권했고 이는 BTS와 그 소속사까지 행동케 했다.

BTS와 방탄소년단과 소속사는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합니다”라는 선언과 함께 BLM 운동단체 측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팬덤 아미는 이 행보에 발 맞춰 27시간 만에 100만 달러 이상의 액수를 모금했다.

텍사스주 댈러스 경찰이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의 불법행위를 촬영한 영상이 있으면 공유해달라"고 하자 이들은 한국 아이돌 가수 영상을 한꺼번에 공유해 사이트를 먹통을 만들기도 했다.

CNN은 K팝 팬덤을 두고 “지난해 SNS에 60억 건의 포스팅을 올린 소셜미디어계 가장 강력한 군대”라며 “이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고 평가했고 AP통신은 “(미 시위대의) 예상치 못한 동맹군(unexpected ally)”이라고 묘사했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클라호마주 털사 유세에 '노쇼'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유세 입장권을 샀다가 당일에 가지 않는 방식으로 행사를 공격한 것이다.

포브스는 “K팝 팬들이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해시태그를 빼앗아 인종 평등을 부르짖는 이들과 연대를 표했다”고 보도했고 NYT는 “음원 차트를 휩쓸고 콘서트 티켓을 매진시키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을 화제로 만들어온 K팝 팬들이 이제는 미국 정치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반정부 시위 주제가 '다시 만난 세계'

홍콩 반정부 시위에서 경찰에 체포된 시위대의 가방에서 떨어진 방탄소년단 캐릭터 인형/사진=Cheng Oi Fan Alex 페이스북 캡처


4개월째 군부제 개헌을 위한 시위가 이어지는 태국에서 K팝 팬덤은 중심에 섰다. 이들은 시위대에게 필요한 장비를 사기 위해 모금을 벌여 300만 밧(1억1000만 원) 이상 모았고 시위를 방해하는 공공기관 광고 거부를 촉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홍콩 반정부 시위 현장에 떨어진 BTS '굿즈'는 세계 아미들이 홍콩 민주화 운동에 관심 갖게 했다. 10~20대 주축이 된 시위대는 소녀시대 노래 '다시 만난 세계'를 주제가 삼아 부르며 결집했다.

지하철 요금 인상이 도화선이 돼 반정부 시위가 이어진 칠레에서는 정부가 시위에 영향을 미친 세력 중 하나로 K팝 팬들을 지목하는 보고서를 내 빈축을 샀다. 칠레 내무부 보고서에선 K팝 팬덤이 시위 동참을 부추겼다고 명시됐다. 정부가 시위의 근본 원인을 스스로에서 찾지 않는다는 비난이 쏟아졌는데, 그만큼 K팝 팬덤의 영향력을 크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현지매체 라테세라는 "K팝은 정치와는 무관하다. 되레 어떻게 자신을 개발하고, 성취하고 열심히 일하는지 보여준다. 이런 점이 칠레 젊은이들로 하여금 정치에 관심 갖게 하고 좋은 사회를 꿈꾸게 했다"고 평가했다.

K팝이 그 자체로 정치적 메시지를 품진 않지만, 이들이 내는 메시지는 팬들로 하여금 결속감과 적극성을 공유하게 했고 이는 정치 참여의 동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은 "K팝 팬덤이 젊고 디지털 지식이 풍부하며 정치적 관심이 높은 Z세대의 표본으로서 온라인 운동가로 진화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K팝 팬덤은 강력한 네트워크를 동원해 효과적으로 디지털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이들은 K팝 산업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고려돼야 하는 하나의 세력이 됐음이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임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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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미 기자 spring3@mt.co.kr, 이지윤 기자 leejiyoon0@mt.co.kr, 임소연 기자 goatl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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