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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반일 테러리스트는 나가라"..日기업의 지독한 '혐한'

황현택 입력 2020. 11. 2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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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금도 회사에 다닌다는 게 신물이 납니다. 차별이 싫어서 소송까지 냈다면 알아서 그만둬야죠. 정신적 고통이 아닌 때때로 돈을 뜯어내려 한다고밖에 볼 수 없네요."(오사카지부 경영 4과 팀장)

"어떤 생각을 하든 자유지만, 경영진 가르침과 회사 방침에 이해와 납득을 못 하면 다른 세상에 가서 사세요. 회사 직원 1천2백여 명 가운데 당신 생각에 찬동하는 사원은 없어요."(시스템실 직원)

"이렇게 회사에 폐를 끼치고도 지금도 월급 챙겨가면서 회사에 다닌다고 생각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납니다."(토지활용사업부 직원)

A 씨는 일본인 남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으나 여전히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한국 이름을 쓰고 있다.


일본 오사카(大阪)에 사는 50대 재일 한국인 3세 A 씨. 그는 많은 재일교포와 달리 통명(通名·일본식 이름)이 아닌 본명(本名·한국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일본인 남편과 결혼했는데, 남편과 시댁 모두 그런 A 씨의 결정을 존중해 줬습니다.

그가 '후지주택'이란 주택 건설 전문업체에 들어간 건 2002년 2월입니다. 1974년 설립된 회사는 날로 덩치를 키워 2003년 12월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된 제법 '이름난' 중견업체입니다. A 씨 역시 한때 일이 재밌고, 보람도 컸다고 합니다.

그런 A 씨는 언제부턴가 직장 동료들로부터 "회사를 그만두라"는 요구를 매일 받고 있습니다. 벌써 5년 넘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굴욕과 두려움, 고립감을 딛고 오늘도 변함없이 출근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후지주택 본사


"한국은 날조 국가" 문서 배포

'후지주택'의 창업자는 이마이 미쓰오(今井光郞)입니다. 지역사회에서 우익 사관으로 똘똘 뭉쳐진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 채택 운동에 앞장서고, '국가를 위해 회사를 경영한다'를 경영이념으로 내걸었습니다. 회사는 실제로 2010년쯤부터 회장 명의 교육용 자료를 하나둘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영이념에 따른 종업원 인격 교육'의 일환이었습니다.

주로 우익 필자가 쓴 글이나 인터넷 댓글 등을 모아 사내 게시판에 올렸고, 각 부서는 이걸 복사해 1천3백 명 전 사원에게 나눠줬습니다. 직원들에게는 글을 읽은 감상문을 쓰게 했고, 회사는 그 중 일부를 골라 '감명받은 감상문'이라며 이를 재배포했습니다.

내용은 부동산 업무와 무관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은 아시아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 '종군위안부는 고급 매춘부로 사치스럽게 생활했다'는 등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고 역사를 왜곡한 글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인을 야생동물에 비유하거나, "한국은 영원한 날조하는 국가", "자이니치(在日, 재일한국·조선인을 의미)는 죽어라"는 등 혐한(嫌韓) 표현도 상당했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A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거의 매일 자료가 배포되다시피 했어요. 처음엔 너무 충격이 커서 어찌할 줄을 몰랐죠. 용서할 수 없었어요. 왜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왜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줄 필요가 있는 건지..."

일본 이쿠호샤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 전쟁으로 미화하는 등 극우사관을 반영한 대표적인 우익 교과서이다.


결정타는 2013년 5월, 일본의 식민지배와 아시아 침략전쟁을 미화한 극우 출판사, 이쿠호샤(育鵬社) 역사 교과서가 채택되도록 직원을 동원한 사건이었습니다. 직원들은 교과서 전시회에 참가해 이쿠호샤 교과서를 호평하는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민간기업이 사원들을 '배외주의 캠페인'에 동원하는 퇴행적 행태를 보인 겁니다.

A 씨는 변호사와 상담했고, 조언에 따라 혐한 자료를 하나씩 모았습니다. 회사 측이 "300만 엔(약 3천400만 원)을 줄 테니 회사를 그만두라"고 회유하기도 했지만, 그는 2015년 8월 결국 법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일본 법원이 7월 2일 후지주택과 이 회사 회장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재일 한국인 여성에게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승소’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일본 교도통신]


日 법원 "배상하라" 반쪽 판결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5년의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7월 2일 오사카 지방재판소는 "재일교포 여성이 민족 차별적 문서로 고통을 받았다"며 후지주택과 이마이 회장에게 110만 엔(1천228만 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재판부는 "한국 국적이나 민족적 뿌리를 가진 자의 입장에서 보면 현저하게 모욕을 느끼게 하고 명예 감정을 해친다"면서 "현저한 혐오 감정을 품는 피고(후지주택 및 회장)로부터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현실적인 두려움도 느끼게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다만, 혐한 문서를 배포한 행위가 내용, 취지, 목적, 방식 등에 비춰볼 때 "원고(A 씨)를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고 기술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특정 개인에 대한 차별적 행위로는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적 언동이나 시위·행진, 인터넷 게시물 등은 국적자 전체를 향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반쪽 판결'로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또 후지주택의 2019 회계연도 매출액이 1,104억4천400만 엔(약 1조2천419억 원)에 달하는 점과 여성이 5년 가까이 외로운 법정 투쟁을 벌인 점 등을 고려하면 위자료 산정액 역시 인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후지주택, 반성은커녕

소송에선 이겼지만, A 씨에게는 어느 것 하나 바뀐 게 없습니다. 1심 판결 이후에도 회사는 지속해서 직원들에게 감상문을 적게 한 뒤 이걸 모두가 돌려보게 했습니다. 내용은 더 치밀하고 노골적으로 바뀌었습니다.

"파트타임(비정규) 직원임에도 여러 명의 변호사를 고용해 중대 사건인 것처럼 회사를 흔들고 있습니다. 배경에는 일본을 깎아내리려는 조직이 감춰져 있습니다." (사업기획본부 개발부 직원)

"원고 측은 국가 전복을 꾀하는 '테러리스트'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 드네요. 위안부 문제 등은 몇 번이나 트집을 잡아 소동을 일으키고, 결국에는 영토('독도'를 의미)까지 넓히려고 하고..." (분양주택사업본부 영업1과 2계)

이마이 회장은 이번에도 회사에 대한 지배력 등을 토대로 직원들을 동원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A 씨에 대한 집단 따돌림과 인식 공격, 심지어 퇴사까지 종용했습니다. 재판을 계속할 의지를 꺾기 위한 집요한 공격입니다. 1심 판결 이후 지난 넉 달여(7월 6일~11월 15일) 동안 뿌려진 자료는 204건에 이릅니다.

A 씨는 1심 판결 이후에도 회사 측이 차별과 사직 압박 문서 배포를 이어가자 11월 6일 “이를 금지해 달라”며 항소이유서를 변경해 법원에 제출했다.


심리적 고립감이 극에 달했지만, A 씨는 또다시 이런 글들을 모아 지난 6일, "문서 배포를 금지해 달라"는 내용을 덧붙인 항소이유서를 오사카 고등재판소에 제출했습니다. 그는 "직원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는 위치입니다. 드러내놓지는 못하지만, 응원해 주는 동료들도 많아요"라면서 "한 발, 두 발, 조금이라도 나아가려면 회사에 있는 동안은 계속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후지주택 역시 1심 판결 직후 "회사가 최종적으로 패소하면 반드시 일본 언론 출판, 사상 신조의 자유의 큰 제약, 탄압이 가해질 것"이라며 항소했습니다. "차별 없는 일터를 만들어 달라"는 한 재일 한국인의 고단한 싸움은 내년 1월 28일 오전 10시 30분 항소심 첫 재판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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