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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이 미군철수로 이어지는 걸 文이 모를 리 없다"

송홍근 기자 입력 2020.11.22. 10:01 수정 2020.11.2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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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의 탄생비화' 펴낸 언론인 남시욱

●정밀(精密)하게 들여다본 한미동맹의 기원
●文정권 바이든 당선 서운한 게 아니라 두려울 것
●평택기지, 中에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
●“우리는 동맹국이 있다”고 中에 선 그어야
●中이 참을 수 없는 선도 넘어선 안 돼
●역사상 최초 친미적 정치 지도자는 고종

남시욱 화정평화재단 이사장. [박해윤 기자]
한반도는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조중(朝中·북한과 중국)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이 병립하는 정전(停戰) 상태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퇴조하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한반도의 지정학도 요동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일본, 호주, 인도와 함께 중국의 외연 확장 및 이양(二洋·인도양,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는 게 골자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도 동참하기를 바란다. 

신(新)냉전 구도가 형성되고 미·중 갈등이 통상 마찰을 넘어 전방위로 확산하면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는 개별 사안이 아니라 제로섬(zero-sum·한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한쪽은 손해 보는 구도)으로 엮인다. 

문재인 정부는 강대국 외교에서 '균형'을 중시하나 한미관계와 한중관계가 제로섬 게임으로 구조화하면 "한미동맹을 확고히 하는 동시에 중국과 관계를 공고히 하자"는 견해는 탁상공론이 될 수 있다. 미·중이 갈등하는 시대, 한미동맹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정밀(精密)하게 들여다본 한미동맹의 기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재향군인의 날인 11월 11일(현지 시간) 대선 승리 선언 후 첫 공식 행사로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필라델피아=AP 뉴시스]
남시욱(82) 화정평화재단 이사장이 최근 펴낸 '한미동맹의 탄생비화'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과정을 정밀(精密)하게 들여다본 책이다. 한미동맹의 기원이 1953년 체결돼 67년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구조(structure) 노릇을 해온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다. 

대한민국이 미국을 설득해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과 미국이 동맹을 맺고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견제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한미동맹이 67년간 동아시아 평화의 균형자 구실을 한 것이다. 

남시욱 이사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동아일보 수습 1기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해 사회부·정치부 기자, 도쿄특파원으로 일했다. 동아일보 출판국장·편집국장·논설실장·상무이사를 역임했다. 문화일보 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민주화를 이뤄낸 주역은 시민 모두이나 동아일보 탐사보도가 방아쇠 구실을 했다. 그는 현대사 분수령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탐사보도 사령탑이었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서 고문치사 사건 진실을 파헤친 일련의 보도를 진두지휘했다. 

그런 그가 산수(傘壽·80세)를 넘긴 나이에 한미동맹의 기원을 탐구하는 일에 천착한 까닭은 뭘까. '한미동맹의 탄생비화' 머리말에 그는 이렇게 썼다. 

"대한민국은 북핵의 인질이 된 채 미국의 핵우산 아래서 소나기를 피하듯 보호를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됐다. 만약 1953년 휴전 직후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과 방위조약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외부 세력의 공작과 국내 친북·친중 세력의 발호로 인해 내부적으로 붕괴 위기에 처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연구를 새삼스럽게 조약의 체결과정에 집중하는 동기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있다." 

‘한미동맹의 탄생비화'는 한미 상호보호조약의 가조인, 정식 조인 및 비준, 비준서 교환과 조약 발표에 이르는 전 과정을 살피면서 양국의 교섭 당사자 간 오간 대화 내용과 회담 분위기, 협상 전략과 그 전략이 나온 정치적·국제적 배경을 자세하게 서술한다.

위기의 한미동맹이 마주한 또 다른 변곡점

남시욱 이사장이 최근 펴낸 ‘한미동맹의 탄생비화’.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과정을 정밀하게 들여다본 책이다.
‘한미동맹의 탄생비화' 1장 제목은 '미국이 거부했던 한미동맹'이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벼랑 끝 전술을 구사했다. 미국에서는 그를 술수의 달인(master of manipulation)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승만의 고집불통에 시달렸다. 미국에 눈엣가시와도 같았다. 이승만은 통일 없는 휴전 반대, 국군 단독 북진 통일을 외쳤다. 워싱턴이 '이승만 제거, 군사정부 수립'이 골자인 '에버레디계획(Plan Ever Ready)'을 수립한 이유다. 이승만은 휴전 반대를 고집스럽게 주장하면서 유엔군 철수 이전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미국의 동의 없이 반공포로 2만7000명을 석방하는 돌발 사태도 벌였다. 한미 협상이 이뤄지는 과정에서도 에버레디계획은 책상 위에 올라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자 한미동맹 67주년이다. 한국과 미국을 둘러싼 정세는 한미동맹의 미래에 도전을 예고하고 있다. 내년 1월 20일 미국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다. 위기의 한미동맹이 마주한 또 다른 변곡점이다. 

남시욱 이사장은 "67년 전 이승만에게 선견지명이 있었다"면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와 다르다. 평택 미군기지는 중국에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라고 했다. "바이든 당선으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면서 "북한도 바이든 행정부를 두려워할 것"이라고도 했다.

조선조 말 이후 70년 만에 이룩된 聯美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은 67년간 한미동맹이라는 구조(structure)에서 살아왔습니다. 

"미국은 처음에 상호보호조약을 맺을 의사가 없었습니다. 미국이 이승만한테 양보한 거예요. 미국 군부에서 특히 반대가 심했습니다. 에버레디계획을 세워 이승만을 제거하려고까지 했습니다." 

-당시의 이승만을 두고 '벼랑 끝 전술' '술수의 달인' 같은 표현도 있더군요. 

"강대국 시각에서 이승만을 나쁘게 표현한 것이지요. 약소국 주장을 왜 받느냐는 미국 내 여론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처지에서는 달랐지요. 미군이 싹 가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중공군 앞에서 국군은 보잘것없었습니다. 미국은 말 잘 안 듣는 이승만을 제거하려고도 했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책에서 한미 상호보호조약 체결을 '조선조 말 이후 70년 만에 이룩된 연미(聯美)'라고 표현했던데요. 

"한미 상호보호조약 체결은 고종 때인 1880년 10월 중신회의에서 '연미(聯美)' 노선을 채택한 지 70년 만의 일입니다. 조선은 1882년 5월 제물포에서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합니다. 미국 공사가 부임했을 때 고종이 신이 나 춤을 췄습니다. 조미 수호통상조약 1조는 체약국 중 어느 한쪽이 '불공경모(不公輕侮·deal unjustly or oppressively)', 즉 부당한 처사나 모욕 또는 일방이 위협을 당했을 때 다른 일방이 중재에 나서기로 규정했습니다. 

미국은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 때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묵인하는 조건으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양해했습니다. 조미 수호통상조약 1조를 완전히 위반한 것이지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아무런 방어 조치도 하지 않고 한국에서 철수해 버려 1년 후 6·25전쟁이 일어나게 만들었습니다.

평택기지, 中에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

이러한 민족적 비극과 국가적 위기를 겪은 이승만으로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한미동맹을 탄생시킨 게 일생일대 큰 보람이었지요." 

중국 외교관 황준원이 1880년경 쓴 '조선책략'은 연미(聯美) 친중(親中) 결일(結日)을 언급한다. 황준원은 연미국, 친중국, 결일본하라는 문장 아래 미국이라는 나라는 영토적 야심이 없고 사람을 천시하지 않는다고 토를 달아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에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어땠습니까. 

"6·25전쟁 때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합니다. 북진하다가 소련 포로를 잡으면, 그러니까 소련 정규군이 개입한 게 밝혀지면 후퇴하라는 지령이 있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한반도는 종심이 짧습니다. 압록강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너무 짧아요. 대륙에서 지상군이 벌떼같이 달려오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미군은 그때나 지금이나 공군과 해군을 중심으로 전쟁을 치릅니다. 한반도는 미국에 전략상 가치가 높지 않았습니다. 애치슨라인에서 한국이 제외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평택 같은 기지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중국에는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예요. 67년 전 이승만이 선견지명을 가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미동맹이 위기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위기이지요. 문재인 정부 핵심 세력이 한미동맹을 바꾸려고 합니다. 한미연합훈련이 중단돼 있습니다. 동맹이 함께 훈련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미국 일부에서는 한국이 언젠가 중국으로 갈 동맹이라고 의심합니다. 일본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미국이 대만을 키우고 있습니다. 미국이 앞으로 중국 봉쇄를 넘어 해체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대만이 독립하고, 위구르·티베트가 해방되면 중국이 해체되는 것이지요."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가치를 무시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트럼프가 한미동맹 자체를 위협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 장사꾼 아닙니까. 주한미군 주둔비를 더 내라는 둥 압박했지요. 톱-다운(top-down) 외교로 김정은을 상대하면서 북한 문제를 헝클어놓기도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지난해 2월 베트남에서 열린 김정은과 정상회담에서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트럼프가 완전히 속아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운동만 한 사람들의 민족지상주의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1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11월 29일 연합뉴스에 보낸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 기고문에서 "우리 군대를 철수하겠다는 무모한 협박으로 한국을 갈취하기보다 동아시아와 그 이상의 지역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국과 함께 설 것"이라고 썼습니다. 

"미국은 초당적 외교를 해왔습니다. 한미동맹을 만든 것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공화당 정부입니다. 6·25전쟁에 미군을 보낸 것은 해리 트루먼의 민주당 정부고요. 외교 스타일 문제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과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는 민주당 정부든, 공화당 정부든 한국의 존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국이 당면한 문제는 중국이 아니라 북한입니다. 바이든 집권으로 문재인 정부가 이상하게 만들어놓은 대북정책이 계속 진행되기 어려워졌습니다.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지요. 집권 세력은 종전선언을 두고 출구가 아니라 평화로 가는 입구라고 말합니다만, 북한은 종전선언을 통해 미군을 철수시키고 돈까지 받아내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전개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11월 중순 동맹국 정상들과 통화하면서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메시지를 전했다. 동맹 중시 및 다자주의 외교를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11월 12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전과 번영의 핵심축(linchpin)으로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동참을 당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통화 직후 트위터에 올린 메시지에서 "굳건한 한미동맹과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향한 당선인의 굳은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권 핵심에는 트럼프 대통령 낙선을 서운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습니다. 

"서운해하는 게 아니라 두려울 겁니다. 대학생 때부터 운동만 한 사람들은 민족지상주의, 통일지상주의예요. 미국 조야(朝野)에서 문재인 정부를 친북·친중 정부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바이든의 외교정책은 예측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톱-다운(top-down) 방식이 아닌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북한과 협상할 겁니다. 트럼프는 자기 상술만 믿고 원 맨 플레이를 하지 않았습니까. 김정은이 그것을 역이용했고요. 

바이든이 미국을 다시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상원 외교의원장을 지냈으며 한국에 대한 이해도 상당히 높습니다. 북한도 바이든이 두려울 겁니다. 상식적인데다가 속아 넘어갈 사람이 아니니까요. 한미동맹의 위기 요소도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합동훈련도 다시 시작할 거고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맺은 동맹은 끊어지지 않아

-그렇다면 북한에 친화적인 주장을 하는 세력이 꿈꾸는 나라는 어떤 모습이라고 보는지요. 

"간단해요. 한미동맹 고리를 끊는 거죠.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방식으로 한미일이 군사동맹을 맺는 겁니다. 중국은 한미동맹이 아니라 다자 협력을 통한 한반도의 다원적 안보를 그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단면적으로 얘기하면 중국도 한 다리 걸치겠다는 뜻이지요. 크게 보면 한반도 중립화와 비슷한 얘기입니다. 이승만이 가장 반대한 게 미국이 손을 떼고 나가는 중립화예요." 

-조중(朝中·북한과 중국)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은 한반도 문제의 또 다른 축입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맺은 동맹이니 끊어질 수 없어요." 

-미국과 패권 경쟁이 시작되면서 중국 처지에서도 북한의 가치가 높아졌습니다. 

"북한을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베이징이 뒤로는 물품을 다 대주면서 평양을 가지고 놀잖아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이 결국 답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지요. 

"세련되게 말하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건데요. 일리가 있는 얘기지요. 그럼에도 명확하게 할 것은 '우리는 동맹국이 있다, 너희들과는 서로가 이익을 보는 경제 관계가 중심이다'라고 중국에 딱 선을 그어놓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에 참여하는 등 중국이 참을 수 없는 선을 넘지 않는 것도 필요하고요." 

-미국 우위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고 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친미적 정치 지도자는 이승만이 아니라 고종입니다. 고종은 무엇보다도 미국은 영토를 탐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멀리 있는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이 있는 큰 나라를 견제해야 합니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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