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여성 단둥서 18시간 노예노동..전세계 수출 코로나장비 실체

김다영 입력 2020. 11. 22. 15:58 수정 2020. 11. 2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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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간 가디언 20일 현지 보도
"한국도 보호복 수입" 논란
"근로자 월급의 70%는 본국 송금"
北근로자 해외 송출은 유엔 제재 결의 위반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전인 2013년 9월 북한 근로자들이 개성공단의 한 업체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는 무관한 내용임. [중앙포토]


북한의 여성근로자들이 노예와 같은 환경에서 생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개인보호장비(PPE)가 전 세계로 수출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 여성근로자들은 중국에 있는 공장에서 휴식도 없이 하루 18시간 동안 일하고 있으며, 월급의 70%가량은 북한 관리자에 의해 김정은 정권에게 송금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이후 북한 근로자 고용은 유엔 제재 결의 위반이다. 북한 근로자들이 벌어들인 자금이 북한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백명 北 근로자 중국 공장서 ‘현대판 노예’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일(현지시간) 탐사취재를 통해 북한과 중국의 국경 지역인 단둥(丹東)에 위치한 PPE 생산 공장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단둥 공장의 한 관계자는 가디언에 "북한 노동자는 쉬는 날도 없고, 밖에 나갈 수도 없다"며 "북한 당국의 통제 속에서 국가를 위해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지에 의해 북한 여성들의 18시간 노예노동의 코로나19 개인보호장구(PPE)를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단둥화양방직의 공장 전경. 이들은 홈페이지에 "우리 상품은 주로 미국, 일본, 한국, 캐나다 등지에 수출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단둥화양방직 홈페이지]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한 달에 2200∼2800위안(약 37만4000원∼47만6천원)의 월급을 받는다. 그러나 북한 관리자는 월급의 대부분을 대부분 본국으로 보내고, 극히 일부만 실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월급의 일부분만 받더라도 북한에서 벌 수 있는 금액 보다는 많은 수준이어서 이같은 형태의 현대판 노예 노동이 가능하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네덜란드 레이든대학교의 렘코 브루커 한국학과 교수는 가디언에 "이들은 공장을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고 자유 시간도 없다. 만일 이를 어길 경우 임금을 거의 못 받는 상황이 된다"며 "이들은 현대판 노예와 같은 상태에서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재 없이 전 세계로 수출…영국 정부까지 납품
북한 근로자가 생산한 이 PPE 제품들은 영국 보건부에까지 납품된 것으로 확인됐다. 가디언은 영국 보건부(DHSC)가 '유니스페이스 글로벌'이라는 업체를 통해 단둥에서 북한 근로자가 생산한 수십만벌의 전신 보호복을 납품받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단둥화양방직이 홍보하고 있는 코로나19 방역복. [단둥화양방직 홈페이지]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직후 보호 장비 수급 계획을 세웠으며, 납품을 맡은 유니스페이스 글로벌이 중국 무역업체와 계약한 뒤 다시 이 업체가 북한 근로자가 배치된 단둥의 두 개 공장에 재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물품이 생산됐다고 한다. 영국 보건부나 유니스페이스 글로벌이 이 같은 사실을 인지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보도에 대한 질문에도 응답하지 않았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또 영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필리핀, 미얀마 등에도 북한 노동자가 생산한 보호 장비를 수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단둥의 의류 공장들은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보호 장비를 생산할 수 있도록 설비를 정비했다. 올해 단둥에만 14개 업체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보호 장비 생산업체로 등록했다. 단둥 지방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6월 약 2100만 벌 이상의 보호 장비가 생산된 것으로 집계됐다.


유엔 대북제재 위반에 자국법 위반도 가능
중국 업체들이 북한 여성근로자를 고용해 PPE를 생산한 것은 유엔 대북제재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엔은 지난해 12월 22일까지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나라는 이들을 모두 북한으로 송환하는 내용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벌어들인 돈이 본국으로 송금돼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 자금으로 쓰일 수 있어서다.

지난해 12월 베이징 북한 대사관 근처의 한 북한 식당. 2019년 12월 22일까지 북한 노동자 본국 송환을 의무화한 유엔 대북 제재를 무시한 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사진=신경진 기자]

그럼에도 이를 무시한 채 북한의 값싼 노동자를 고용한 것은 명백한 대북제재 위반이란 것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기사에서 지적된 사항의 사실 여부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에서 해당국을 상대로 정확한 조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미국 납품의 경우 강제노역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미국 국내법 위반 가능성도 크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박사는 "미 의회는 지난 3월 신장 위구르자치구 등에서 강제노역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완전히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며 "북한 노동자의 강제노역으로 생산된 중국 공장의 PPE 제품을 수입한 업체들은 미국 자국법을 위반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비즈니스·휴먼 라이트 리소스 센터의 필 블루머 사무국장도 가디언에 "각국 정부는 비상 수급 규정을 바탕으로 개인 보호 장비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자의 위험 요소를 확인하지 않은 채 계약을 맺어서는 안 된다"며 "이는 결국 노동자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美, 북한 노동자 파견업체 추가 제재
앞서 미 재무부는 지난 19일(현지시간) 북한의 노동자 해외 송출에 연루된 북한과 러시아 기업 2곳에 제재를 부과했다.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에 따르면 이번에 특별지정 제재대상(SDN) 리스트에 추가된 곳은 러시아에서 운영되는 북한 회사인 철산무역과 러시아 건설회사인 목란 LLC다. 이번 제재로 두 회사와의 거래에 관여한 이들은 제재 대상에 오를 수 있고, 외국 금융기관 역시 중요한 거래를 촉진하거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세컨더리 제재’(제3자 제재)를 받을 수 있다.

OFAC가 대북 제재의 칼을 뽑아 든 것은 지난 3월 이후 8개월여만이다. 해외 노동자 송출을 통해 북한 정권 유지와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외화벌이를 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바이든 정부 출범을 앞두고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도 불구하고 북한 노동자를 여전히 고용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등을 압박하는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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