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국일보

퇴계 옆 2인자 자리 놓고 다툰 두 가문, 400년 만에 '화해'

김정혜 입력 2020. 11. 22. 16:45 수정 2020. 11. 26. 08:53

기사 도구 모음

퇴계 이황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그 다음째 서열인 왼쪽 위패 자리를 놓고 무려 400년간 이어진 두 가문의 갈등이 봉합됐다.

경북도는 22일 조선시대 창건됐다 훼손된 호계서원을 복원하면서 이를 기념하는 고유제를 계기로 퇴계 위패의 왼쪽 옆자리를 놓고 400년간 벌인 두 문중의 다툼이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퇴계 제자들이 호계서원을 세우고 위패를 봉안하면서 두 번째 서열인 왼쪽 위패를 누구의 것으로 하느냐를 두고 다퉜던 시비다.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서애 류성룡·학봉 김성일 문중간 '병호시비'
대원군 나섰다 실패했지만 경북도가 성공
한쪽 높은 자리, 다른 한쪽 두 자리로 합의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세 경북 안동시장, 임종식 경북도교육감 등이 지난 20일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호계서원에서 서원 복원을 기념해 열린 복설 고유제를 지켜보고 있다. 경북도 제공

퇴계 이황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그 다음째 서열인 왼쪽 위패 자리를 놓고 무려 400년간 이어진 두 가문의 갈등이 봉합됐다.

경북도는 22일 조선시대 창건됐다 훼손된 호계서원을 복원하면서 이를 기념하는 고유제를 계기로 퇴계 위패의 왼쪽 옆자리를 놓고 400년간 벌인 두 문중의 다툼이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병호시비(屛虎是非)'로 불리는 두 가문의 갈등은 서애 류성룡와 학봉 김성일 문중 간 벌어진 사건이다. 퇴계 제자들이 호계서원을 세우고 위패를 봉안하면서 두 번째 서열인 왼쪽 위패를 누구의 것으로 하느냐를 두고 다퉜던 시비다.

당시 학봉 문중은 서애보다 네 살 위인 점을 들어 나이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서애 문중은 학봉보다 벼슬이 높았던 점을 내세워 관직에 따라 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두 문중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결국 호계서원 내 위패를 모시는 사당은 사라졌다. 이어 퇴계의 위패는 도산서원으로, 류성룡의 위패는 병산서원으로 갔다. 김성일의 위패는 낙동강변의 임천서원으로 옮겨졌다.

두 가문과 학맥의 갈등이 계속되자 대원군이 나섰다. 하지만 양쪽의 유림들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격분한 대원군은 호계서원을 철폐했다.

지난 2009년 드디어 양쪽 문중이 나섰다. 이들은 '류성룡 왼쪽, 김성일 오른쪽’으로 합의했다. 이번에는 안동의 유림들이 막아 섰다. '종손 간 합의할 사항이 아니라 학파 간에 결론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3년, 호계서원 복원을 추진하는 경북도가 기발한 중재안을 냈다. 류성룡을 왼쪽에, 김성일을 오른쪽에 놓고 바로 옆에 김성일의 후학인 이상정을 배향하자는 제안이었다. 한쪽에는 높은 자리를, 다른 한쪽에는 두 명의 자리를 제시한 것이다. 두 문중은 타협안을 받아들였고, 400년의 갈등도 마무리됐다.

경북도와 호계서원 복설추진위원회는 65억원을 들여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한국국학진흥원 부지 내 호계서원을 복원했다. 이어 지난 20일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권영세 안동시장, 임종식 경북도교육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호계서원 복설을 기념하는 고유제와 추향례를 진행했다.

복구된 호계서원은 부지 1만㎡에 13개 동의 서원건물로 구성됐고, 총 93칸에 이른다.

고유제 때 초헌관으로 참석한 이철우 도지사는 "호계서원 복설은 영남 유림의 대통합이 만들어낸 성과"라며 "화합, 존중, 상생의 새 시대를 여는 경북 정신문화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한국일보 www.hankookilbo.com (무단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