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임시주총 요구도 들어줘야 하나?"..KCGI에 맞대응 나선 한진칼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한진칼이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KCGI(강성부펀드)의 임시 주주총회 소집 요구가 지나치게 '졸속'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한진칼 이사회의 공식 결정 전에 이런 입장을 드러낸 것 자체가 KCGI 등 3자연합의 공세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런 가운데 오는 25일에는 한진칼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 심문이 예정돼 양측 공방은 다음주 중대 고비를 맞을 전망이다.
사내외 이사 선임’ 안건에는 이사 후보가 몇 명이고, 누구를 이사 후보로 낼 것인지 관련 내용이 전혀 없다. KCGI는 향후 이사 명단을 다시 밝히겠다는 입장이지만 이처럼 기본 형식조차 갖추지 못한 요구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들린다. 한진칼 관계자는 “적어도 임시주총을 요청하려면 최소한 몇 명을 이사로 선임하겠다는 것인지 기본 내용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런 내용을 언제까지 다시 전달하겠다는 계획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진칼은 KCGI의 ‘정관 일부 변경’ 안건도 기존 발표 내용의 짜깁기라는 입장이다. ‘이사 자격기준 강화’ 변경 안건은 지난 2월 정기주총 당시 내놓았던 안건과 같다. ‘윤리경영위원회 및 경영평가위원회’ 변경 안건도 앞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발표 때 KDB산업은행이 제시한 내용을 그대로 베꼈다.
한진칼은 그러나 조만간 이사회를 소집해 공식적으로 임시주총 개최 여부를 결정해 논란을 없앨 방침이다. 단 임시주총 개최 이유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요청을 굳이 이사회에서 수용할 이유는 없다는 전망이다. KCGI가 법원 허가를 통해 임시주총을 소집할 수 있지만 이 절차는 최소 45일 이상이 걸려 임시주총 개최는 빠르면 내년 1월에나 가능하다.
한진칼은 KCGI의 이런 행보를 주가 부양을 위한 ‘노이즈마케팅’ 성격이 짙다고 분석한다. 한진칼은 경영권 분쟁 파장이 컸던 지난 4월 한때 11만원까지 올랐지만 이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 지난 20일 종가는 7만3700원이다. KCGI는 특히 보유주식 2840만9819주(46.71%)중 상당수를 제2금융권의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확보했다. 만약 주가가 계속 약세를 보이거나 추가 하락할 경우 주식을 강제 처분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 경우 한진칼 주가는 대규모 매물이 나오며 한 단계 더 밀릴 가능성도 있다.
법원 결정의 핵심은 이번 유상증자 목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여부다. KCGI 주장이 인정되지 않고, ‘재무구조 개선’이나 ‘항공산업 재편’이라는 경영상 합리적 목적 때문이라고 법원이 판단한다면 한진칼 손을 들어줘 가처분 신청 ‘기각’이 나오게 된다. 반면 KCGI 주장대로 이 유상증자가 ‘경영권 방어’ 목적이라고 판단한다면 법원은 가처분 ‘인용’ 결정을 내린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제3자 배정’ 신주 발행을 위법으로 보는 판례도 있지만, 반대로 경영권 분쟁 상황이라도 경영상 목적을 인정받아 신주 발행을 법적으로 인정한 판례도 있다. 한진칼과 산업은행이 기대를 거는 이유도 이처럼 사안에 따라 법원의 판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단순 법리보다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업의 큰 틀을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지난 20일 우기홍 대항항공 사장은 기자들에게 “아시아나항공은 코로나 이전부터 어려운 상황이었고, 대한항공 역시 코로나 이후 더 형편이 어려워졌다”며 “항공산업을 잘 보존하는 방안을 고민하던 과정에서 추진된 것인 만큼 법원의 합리적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이 KCGI 측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 한진칼은 유상증자가 막히고 아시아나항공 인수도 무산될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 경영권 분쟁도 더 과열돼 자칫 KCGI 측 3자연합의 무리한 요구가 관철될 수도 있다.
산업은행은 대한항공과의 시너지 극대화를 포기해야 하고, 다시 채권단 관리아래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지난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아시아나항공 통합이 무산되면) 차선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 양대 항공사 경영 정상화 작업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항공산업 재편 방침을 개인들의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한 사모펀드가 정면으로 뒤짚는 것이어서 만만치 않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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