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금강변에서 발상한 '자연미술' 종주국답게 키워가야죠"

송인걸 입력 2020. 11. 22. 19:46 수정 2020. 11. 2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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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고승현 운영위원장

고승현 금강자연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은 1981년 야투 결성 때부터 40년동안 모아온 ‘자연미술’ 활동 기록을 영구보존할 ‘비엔날레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송인걸 기자

코로나19로 인간의 오만을 반성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자연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연미술’은 평화를 기원하는 금강 일대 작가들이 자연 질서를 존중하며 예술의 원형을 탐구하면서 비롯됐다.

지난 18일 오후 충남 공주 연미산 자락 옛 마티고갯길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야투의 사무실에서 고승현(65)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운영위원장과 만났다. 고 위원장은 40년 전 자연미술의 첫 여정부터 참여했다.

20대 작가들 의기투합해 40돌 고향 공주 금강변 금빛모래밭에서 ‘야투-야외현장미술연구회’ 결성 89년 독일 ‘야투-아카이브전’ 계기 10여개 나라 34개 단체 ‘협회’ 참여

“코로나로 ‘자연 위한 예술’ 재평가” 강금실 대표 등 참석해 학술세미나

이이남 작 ‘고흐-신인류를 만나다’를 내세운 2020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포스터. 오는 11월30일까지 공주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에서 열린다.
충남 공주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2020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출품작 가운데 이경호(기획작가)·엘라(디자인)·장태산 조상철(제작)씨가 협업한 `노아의 방주-오래된 미래’. 이 작품은 인간이 기후 위기에 대처하지 못해 대홍수가 일어난 2150년 산꼭대기에 좌초한 방주 형태의 배가 2200년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에서 발견된 상황을 가상한 것이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운영위원회 제공

“자연미술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묵은 사진집을 펼쳐 보였다. 한 작가가 큰 바위의 금에 작은 돌의 금을 겹치게 놓고 그 옆에 자신의 손바닥을 펴 손금과 이어지게 하고 있었다. 다른 사진은 모래밭에 돌을 세로로 세운 뒤 그림자를 따라 돌을 연속해 세워 그림자들이 이어져 있었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손바닥만한 넓은 잎이 있는 식물 밑에서 작가가 잎사귀를 몸에 그리고 누워 있기도 했다.

그는 “자연미술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떠오르는대로 시도해보는 것”이라며 “한국에서 시작해 세계에 알려진 현대 미술사조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민중미술이고 다른 하나가 자연미술”이라고 말했다.

1981년 군에서 전역해 한남대 미대 3학년에 복학한 그는 전두환 신군부의 폭압정치와 더불어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 속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을 절감했다. 그 자신 평화를 얻고자 찾은 곳이 고향 공주의 금모래 반짝이는 금강이었다. 그해 여름 같은 감성을 가진 유동조, 임동식, 지석철, 허진권 등 동향의 또래들이 의기투합해 ‘야투-야외현장미술연구회’를 꾸렸다. 야투 40년 장정의 첫 걸음이었다. “그때 ‘학교에서 배운 것만이 미술인가’를 놓고 토론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벽화를 보면 원시시대에도 인간이 감정을 표현했거든요. 순수한 표현 방식을 찾아서 시간과 계절의 흐름 등 자연의 변화를 좇게 된 거죠.”

그러나 자연미술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지난했다. 잠깐 사이에 작품이 완성됐다 사라지거나 실험적인 시도가 적지 않다 보니 사진이나 영상밖에는 자취를 남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미술’은 1989년 독일 함부르크대 미술관에서 연 ‘야투-아카이브’ 전시를 계기로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 작가들은 자연과 어울리는 야투 작가들의 작업 영상과 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환경 선진국인데도 자연을 작품의 도구로 여겼어요. 우리는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자연 그 자체를 돋보이게 하는 예술을 선보였죠.”

2년 뒤 안케 멜린 등 독일 작가 31명이 금강을 찾아와 ‘자연미술’을 함께한 것을 계기로 현재 10여개 나라 34개 예술단체가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야투를 중심으로 ‘자연미술’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원시시대의 아름다움, 창작에 대한 욕구, 본능에 따라 자연과 나의 관계를 만들어 보는 아트 프로젝트를 추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2014년 한국에서 출발해 2015년 인도, 201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란, 2017년 터키 등 유럽 7개 나라, 2018년 영국,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세계 작가들이 작업을 공유했다. 올해 중국·몽골 프로젝트는 코로나19 여파로 연기됐다.

하지만 <12×12×12×자연, 자연미술 큐브전> 같은 파생 프로젝트들은 여전히 활발하다. 큐브전은 가로·세로·높이 12㎝인 정육면체에 자연을 표현하는 것으로, 세계의 작가들이 개성넘치는 정육면체 작품 300여개를 보내왔다. 이 정육면체들은 순회전시 중인데, 지금은 청주에서 열리고 있다.

“40돌이라고 하니 초조합니다. 다음 세대가 자연미술을 이어가길 바라는데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자연미술은 특성상 작품을 사고 파는 개념이 아니어서 경제성이 없거든요. 이런 작업을 하려는 후배들이 있을까 고민합니다.”

고 위원장도 부인이 식당을 운영해 뒷바라지를 해준 덕분에 지금껏 활동을 해올 수 있었다. 그는 “작가의 희생을 기반으로 예술이 명맥을 잇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문화사업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한국이 자연미술의 종주국으로서, 금강이 그 발상지로서 제구실을 하려면 아카이브관을 갖춘 ‘비엔날레 미술관’ 건립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순수예술에 투신하는 작가들이 최소한의 존중을 받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5년 전 사회적협동조합 ‘자연의 소리’도 결성했다. 전문성을 갖춘 젊은이들이 자연미술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 그는 초기 기록은 물론 공주 원골에서 주민과 함께 열었던 마을예술제 등 그간의 활동 기록과 자료를 대부분 보존하고 있다. 이 기록들은 국가기록원이 독창성과 예술성 등을 인정해 ‘민간단체 소장 기록물’로 선정할 만큼 우수하다.

지난 20일 공주 연미산에서 열린 ‘2020자연미술 학습 세미나’에서 강금실 지구와사랑 대표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운영위 제공

야투 40년 역사는 20일 연미산 숲속마루 카페에서 열린 ‘2020 자연미술 학술 세미나-자연미술의 새로운 접근과 비전’에서 “자연을 위한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행사에는 강금실 ‘지구와 사랑’ 대표, 김왕배·송기원 연세대 교수, 정혜진 변호사, 이경호 작가, 심상용 서울대 교수, 이응우 야투 회장, 윤진섭 미술평론가, 임수미 2020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총감독 등이 참석했다.

“4대강 사업 때 만든 보에 막혀 제모습을 잃었던 곰나루가 올여름 큰비에 일부 되살아났어요. 자연의 복원력은 볼수록 경이롭습니다.” 고 위원장은 “야투는 자연의 시각에서 사회 갈등과 욕망이 얼마나 많은 재앙의 원인인지 알리는 구실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공주/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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