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12살 아들..태항산 4계절 누빈 경찰 엄마 '20년 추적'

유상철 입력 2020. 11. 23. 10:01 수정 2020. 11. 2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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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열두살 나이로 실종된 아들 찾으러
20년간 중국 곳곳과 태항산 누빈 '리페이 엄마'
동영상플랫폼 계정 만들어 소식 전하기 시작
지원자 몰리며 7만 팔로워 함께 수색 동참
차에서 숙박하며 연락 받는 곳으로 달려가

아들을 찾아 20년 세월 동안 중국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한 엄마의 사연이 초겨울 문턱에 선 중국인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다. 22일 중국 신경보(新京報)에 따르면 올해 56세의 허수쥔(何樹軍)이 하나뿐인 아들 리페이(李飛)를 잃은 건 지난 2000년의 일이다.

허수쥔과 아들의 다정한 한 때. 아들 리페이는 열두 살 때인 2000년 9월 실종돼 지금까지 소식이 닿지 않고 있다. [중국 신경보망 캡처]

허수쥔은 허난(河南)성 쟈오줘(焦作)시 공안국의 경찰로, 그해 9월 10일 경찰학교 내 합숙 훈련을 받으러 집을 비워야 했다. 당시 이혼 상태였지만 아들에겐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전 남편 가족과 함께 중국 전통 가옥인 사합원(四合院)에서 살았다.

아들은 당일 점심을 먹고 자전거 열쇠를 복사하러 간다며 30위안을 받아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 열두 살 나이에 키도 150cm나 돼 집을 못 찾을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이튿날엔 학급 간부를 뽑는 날로 리페이는 거울을 보고 출마 연설 준비까지 한 상황이었다.

허수쥔과 아들 리페이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리페이는 2000년 9월 실종됐다. [중국 신경보망 캡처]

리페이는 열쇠를 복사한 뒤 집 방향으로 갔다고 했다. 한데 자전거는 집에 그대로 있었고 이후 리페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후 경찰에 신고하고 혈연관계를 입증할 채혈을 한 뒤 사람 찾는 공고를 내는 등의 수속이 이어졌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후 허수쥔 스스로 아들 찾기가 시작됐다. 그는 “모자(母子)는 마음으로 연결이 돼 있다”며 아들이 살아있을 것이란 직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집과 학교 주위, 오락실, 공원, 기차역 등으로 점점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허수쥔은 아들 찾기에 나서면서 동영상 플랫폼계정을 만들었다. 그러자 많은 중국 네티즌이 자원봉사자로 나서며 허수쥔의 아들 찾기를 돕고 있다. [중국 신경보망 캡처]

나중엔 산으로 놀러 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쟈오줘시에서 가까운 태항산(太行山)을 누비기 시작해 이젠 춘하추동 4계절 내내 태항산에서 음식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어느 계절엔 어디서 무얼 먹고 어떻게 목을 축일지까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을 헤매게 된 건 리페이 실종 두 달여 뒤 폭설이 내린 산시(山西)성 가까운 태항산에서 비슷한 용모의 숨진 소년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다. 전 남편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던 허수쥔은 숨진 소년이 아들이 아닌 걸 확인했으나 마음이 무너졌다.

허수쥔은 자신의 가방에 잃어버리기 전의 아들 사진과 쌍가마를 가진 인상착의 등을 소개하는 글을 붙였다. [중국 신경보망 캡처]

“추운 겨울 등이 드러날 정도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한 소년의 죽음을 보며 우리 아들은 오죽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태항산을 오래 타다 보니 산속에서 구름 모양만 봐도 내일 비가 올지 짐작할 수 있게 됐다.

허수쥔은 지난해 경찰에서 은퇴한 뒤 최근 중국 동영상 업계의 발전에 힘입어 새로운 아들 찾기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리페이 엄마(李飛媽媽)’라는 동영상 플랫폼계정을 만든 것이다.

허수쥔은 자신의 아들뿐 아니라 실종된 다른 아이에 대한 포스터를 함께 만들어 실종 아이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 신경보망 캡처]

아들의 어릴 적 여러 사진과 특징인 쌍가마와 왼손의 손금이 끊어져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수억 명의 중국 네티즌에게 이젠 30대가 됐을 아들의 행적을 수소문하고 있다.

그리고 차량을 구매해 연락을 받는 대로 달려가는 일과를 시작했다. 허수쥔은 이제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리페이 엄마’로 불린다. 그를 돕겠다는 지원자가 몰리고 있으며 그가 만든 동영상 계정엔 7만 명의 팔로워가 생겨 함께 아들 찾기에 동참하고 있다.

올해로 아들 찾기 20년을 맞은 허수쥔은 차에서 숙박을 해결하며 연락을 받는 대로 달려가는 삶을 살고 있다. [중국 신경보망 캡처]

신경보 기자는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3박 4일간 허수쥔의 차에 동승해 허의 아들 찾는 과정을 전하기도 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차에서 잠을 자고 만두로 허기를 달래며 공중 화장실을 찾아 세수하는 ‘리페이 엄마’의 일상을 소개했다.

과거 허수쥔의 한 경찰 동료가 “열두 살에 엄마가 경찰인 것도 아는 데 살아있다면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겠냐”며 아들 찾기를 단념할 것을 권유한 적이 있는데 이때 허는 “당신이 엄마였던 적이 없어 아마도 엄마의 마음을 모를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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