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한국 주력상품은 고탄소..산업계 설득이 '넷제로' 관건"

박기용 2020. 11. 2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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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탄소중립 선언 끌어내겠다" 공언
1년 뒤 '2050년 탄소 중립' 선언 실현
"10년짜리 시각으론 2050년 말 못해"
지난 12일 오후 서울 반포동 한강홍수통제소에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 중립’ 선언을 했다. 탄소 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져 더 이상 온실가스가 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넷제로’라고도 한다. 한 해 7억t가량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기후악당’(2019년 ‘기후변화대응지수’ 61개국 중 58위)이라 손가락질 받아온 한국이 국제사회에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공개 선언한 것이다.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지난 19일 대통령 선언을 반영한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의 정부 검토안 공청회를 열었다. 2050년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합의하고 이행해야 할 과제들을 압축해 제시한 것이다. 한쪽에선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하고, 또 한쪽에선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이 탄소 중립을 실현하느냐 마느냐는 향후 이 논의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에 달려 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대통령 선언 꼭 1년 전인 지난해 10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온실가스 배출 넷제로 선언'을 이끌어내겠다”고 한 바 있다. 여러 변수가 작용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론 1년 만에 그의 말이 실현된 셈이다.

조 장관을 지난 12일 서울 반포동 한강홍수통제소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대통령의 탄소 중립) 선언은 사회와 산업구조를 단계적으로 바꿔가기 위한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넷제로를 위해 관련 기술에 더 많은 투자를 할 때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이 더 많아진다. 산업계 설득을 위한 국민적 합의와 그 합의를 이끌어 낼 모멘텀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주요 기사의 디지털 전환을 선언한 <한겨레>는 정책 결정권자들의 목소리를 온라인으로 상세히 전할 방침이다.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로 접어드는 지금, 조명래 장관이 그 첫 문을 열었다.

탄소 중립 선언은 했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대통령의 ‘2050 탄소 중립 선언’ 배경과 의미를 말해달라. ‘그린뉴딜'처럼 갑작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소쩍새가 울었기에 국화가 핀 거다. 대통령의 결심이 중요하지만 그전까지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 주무부서인 환경부가 역할을 했다. 그린뉴딜, 탄소중립을 두고 여러차례 대통령과 토론했다.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사회 주요인사들의 말씀, 다른 나라 지도자들 얘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중국과 일본의 발표가 영향을 줬나?(중국과 일본은 각각 9월22일, 10월26일 넷제로 선언을 했다)

“시기가 그렇게 됐는데, 대통령이 넷제로 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건 그 전이다. 일련의 논의, 검토, 점검을 통해 상황을 파악했다. (중국과 일본 발표 이전에)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결심했다는 얘기를 직간접으로 들었다.”

―대통령의 선언 직후 관계 부처 회의(녹실회의)가 있었다. 어떤 논의가 이뤄졌나?

“선언은 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기술적 문제도, 경제적 문제도 있다. 국민적 동의와 참여, 결의도 중요하다. 국민들은 ‘넷제로를 왜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국민들이 탄소 중립의 의미를 모르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당장 직면한 중요 쟁점들을 짚어보고 어찌 풀어갈지 논의하자는 취지(의 회의)였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녹실회의에선 어떤 게 쟁점이었나?

“예를 들어 유엔에 제출할 보고서(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 내용을 어느 정도로 구체화할 것이냐 같은 것이었다. 보고서가 특별한 양식이 있는 게 아닌데다, 어떻게 해야한다는 구속력도 없다. 30년 장기 전략이다보니 관련되지 않은 게 없기 때문이다. 너무 광범위해도, 너무 상세해도 안 된다.”

―앞서 제출한 나라들의 보고서는 어떠한가?

“지금까지 19개국이 제출했는데 13개국이 구체적인 전략적 목표치나 로드맵(연도별 계획) 없이 방향만 제시했다. 4개국이 간단한 도표를 추가했고 (10년 단위) 감축 경로를 제출한 국가는 2개국(포르투갈, 핀란드) 뿐이었다. 유럽연합도 보고서가 4쪽에 불과하다. 첫술이니 큰 방향만 제시한 것이다. 사실 쟁점은 넷제로를 어떻게 표현하는가, 그 문구에 있다. 그 나라가 넷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찌 하려는가에 대한 의지를 집약해 보여주는 거다.

특히 가장 정확하게 탄소 중립 목표를 표기한 나라는 영국이라 본다. 영국은 ‘2050년을 위한 순 영국 탄소 계정이 최소한 1990년의 기준선보다 100% 이하가 돼야 한다’라고 쓴다. 그 나라의 온실가스가 어찌될지는 탄소 계정을 만들어봐야 안다.”(탄소 계정은 한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와 각 부문 할당량을 회계적 방식으로 표현한 것)

2030년까지 전체 도시 30% 탄소 중립 의무화

―아직까진 ‘2050 넷제로’ 의미가 국민들에게 충분히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하려면 2050년 한국의 변화한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논의를 이끌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논의해야 한다. 넷제로를 어찌 할지에 대해 국민적 논의와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국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실천하는 넷제로가 되지 않으면 (2050 넷제로 실현은) 불가능하다. 환경부의 넷제로 전략 초안에는 지역 기반 넷제로 전략도 담겼다. 지역 단위에서 중립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테면 2022년까지 5개 탄소 중립 도시를 정해 시범사업하고, 2030년까지 전체 도시의 30%를, 다시 2040년에는 모든 도시에 탄소 중립을 의무화하는 거다. 산업 쪽 탄소 중립화는 중앙정부가 정책수단으로 하고 생활, 소비 관련 부분은 지방정부가 해야한다. 대표적인 게 건물, 교통, 각종 소비에 따른 탄소배출을 저감하는 것들이다.”

―사회적 논의의 장을 열려면 의제가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리 현실을 보자. 넷제로를 하면 우리 사회 모든 부문에서 탄소 배출이 안 돼야 한다. 자동차는 모두 전기화돼야 하고 전원도 지금처럼 석탄이나 엘엔지(LNG·액화석유가스)에 의존해선 안 된다. 집에서 쓰는 모든 에너지, 심지어 열 에너지까지 전기에서 얻어야 한다.

전 사회의 ‘전기화'로 가려면 현재 추정으로 현 생산 전력량의 2.55배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필요량의 절대다수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50~60%로 확보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하려면 좀 더 강화된 정책들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큰 이슈일 것이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중에서 가장 쟁점이 될 이슈는 어떤 것일까?

“가장 중요한 건 먹고사는 문제와 결부된 산업이다.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내가 보는 가장 큰 보틀넥(병목·논의가 집중될 지점)이다. 온실가스를 줄이자고 하면서 자기 직장 폐쇄하면 좋아할 사람 없다. 산업 문제는 일자리, 생활 같은 우리 자신과 관련된 문제다.

그 부분을 넘어서려면, 이른바 탈탄소 미래기술을 어떻게 개발해 상용화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산업 쪽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건 철강업인데 원강을 녹일 때 쓰는 코크스 대신 수소를 투입하고, 원강 대신 스크럽을 재활용하면 온실가스가 안 나온다. 유럽에서 탄소국경세를 도입한다고 하고, 미국도 제품 생산 때 탄소 배출이 어느 정도인가로 과세한다는데, 석유화학, 자동차 같은 우리 주력 상품들이 모두 고탄소 제품이다. 자칫 수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 현대차 같은 회사는 알아서 탈내연기관으로 가고 있다. 전체 산업계는 업종도 다양하고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산업계를 어떻게 설득시키면서 넷제로로 가느냐가 큰 숙제다.”

탄소 중립 불가능? 30년 전엔 ‘삐삐’도 귀한 시절

―산업계 설득은 쉽지 않다. 2050년 탄소 중립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식의 주장도 있다.

“2050년은 30년 이후다. 30년 전을 생각해보면 흔히 삐삐라고 부른 무선호출기도 귀한 시절이었다. 30년 이후 탄소 중립이 가능할지를 두고 지금의 기술 수준과 생활 방식을 잣대로 판단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실제 그런 우려를 하는 이들과 얘기해보면 10년짜리 시각으로 30년을 이야기하더라. 10년 이상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더 긴 시간을 두고 본다면 가능성은 열려 있다.

유럽연합도 2050년에 실현할 탈탄소 미래기술 목록을 만들어놨다. 우리가 가진 기술을 얼마나 발전시켜갈지에 따라 우리 미래도 달라진다. 보지 않으려 하면 보이지 않지만, 보면 보인다. KEI(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서 (탈탄소 미래기술에 얼마나 투자할지를 두고) 강·중·약 세 가지 경로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봤는데, 탈탄소 미래기술 발전을 강하게 가져갈 때 긍정적인 영향이 더 많다는 게 잠정 결론이었다. 소극적으로 하면 더 위축된다.

우리 산업구조는 언젠가 노후화된다. 탄소국경세 등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거대한 좌초자산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걸 넷제로라는 이름으로 뛰어넘기 위해 투자를 해야한다. 당장은 비용이지만 그렇게 해서 신산업이 일어나고 다시 국가적 이익으로 돌아오게 된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런 면에선 탄소 중립 선언에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 빠져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번 선언은 우리 정부가 기후변화라는 큰 위기에 맞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국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회와 산업구조를 단계적으로 바꾸어 가기 위한 시작점이다. 내부적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해왔다. 앞으로 이를 공론화하면서 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회 각 부문의 세부 계획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음 대선까지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활발하게 논의해야 할 것 같다. 당장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정 필요성이 나온다.

“올해 넷제로 보고서(LEDS) 내고, 내년에 전면적인 넷제로 시나리오를 만들게 된다. 동시에 탄소 중립화와 관련한 여러 국가전략계획을 다 손질해야 한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도 손질해야 한다. 2017년 대비 24.4% 줄이도록(7억914만t→5억3600만t) 돼 있다. 1억7000만t이다. (이 감축율을 그대로 유지하면) 2072년에야 넷제로가 된다. (대통령 선언처럼) 2050년으로 넷제로를 당기려면 전반적으로 다 손봐야 한다.

2030년 감축목표에서 (감축율이 낮은) 산업 부문만 떼어놓고 보면 무려 2227년에야 넷제로가 가능하다. 그만큼 많은 부문에서 조절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진통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처음 모멘텀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얼마나 줄이느냐보다 어떤 모멘텀을 만드느냐가 문제다. 우리가 감축해야 하는 양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돼야 한다.”

4대강 재자연화, 임기 내 어려워도 돌이킬 수 없게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장관으로 만 2년을 지냈는데 어떤가?

“2년 간 자랑스러운 건 하나도 없고 여전히 할 일만 많은 것 같다. 우리처럼 공부하다가 들어온 사람은 가치나 근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일상적 이슈도 중요하지만 큰 흐름을 어떻게 만들어나갈까가 더 관심인데, 쉽지 않다. 4대강 재자연화 같은 문제는 임기 동안 구체화는 못해도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라도 정말 만들고 싶다. 쓰레기 문제도 심각한데 역시 시스템 전환이 되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된다.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탄소 중립 대세를 빨리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진행/박기용 기후변화팀장, 정리/김민제 기자 xeno@hani.co.kr

조명래는 누구? 조명래(65) 환경부 장관은 진보 성향 학자 출신이다. 주로 ‘생태·친환경+공간’을 연구하며 시민사회운동 영역으로도 관심을 확장해 왔다.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환경정의 공동대표,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참여정부 때인 2003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을 맡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끄는 서울시에서 청계천시민위원회 위원장,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환경부 장관을 맡기 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원장을 지냈다. △1955년 경북 안동 출생 △안동고 △단국대 지역개발학과 △서울대 환경계획학 석사 △영국 서식스대 도시·지역학 석·박사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 교수 △환경정의 공동대표 △한국NGO학회장 △한국환경회의 공동대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원장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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