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명박 국정원', 곽노현 구속 공작..직접 사찰 정황도

정환봉 2020. 11. 2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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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 문익환 목사 사찰문건도 공개 청구 예정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불법 사찰을 당한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해 8월16일 국정원을 상대로 낸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뒤 서울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국정원)이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구속을 위해 온라인 댓글 공작과 보수단체 시위를 조직하고 사찰한 사실이 문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한겨레>는 최근 국정원이 곽 전 교육감에게 공개한 사찰 문건 10여개를 23일 단독 입수했다. 이번에 공개된 사찰 문건에는 국정원이 곽 전 교육감의 구속을 목표로 각종 공작을 벌인 정황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당시 곽 전 교육감은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후보 단일화에 응했던 박명기 전 서울교대 교수에게 선거가 끝난 뒤 2억원을 전달해 사후매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국정원이 작성한 ‘곽노현 교육감 규탄 및 구속 촉구 심리전 활동 계획’(2011년 9월5일) 문건에는 “‘자유연합’과 협조, 9.8 서울교육청 앞에서 회원 150여명 참석, ‘곽’ 구속 촉구 규탄집회 개최”라고 적혀 있다. 실제 우파단체인 ‘자유민주주의시민연합’(자유연합)은 문건에 적힌 날짜에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곽 전 교육감의 구속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밖에도 여러 보수단체를 동원해 1인 시위와 집회 등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 문건에 담겼다. 또 국정원은 보수단체가 발행하는 월간 매체 7만부에 곽 전 교육감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이 가운데 1만부를 추석을 앞둔 9월10~11일 서울·용산역, 고속버스터미널 등에서 귀성객을 대상으로 배포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서울시 내곡동에 위치한 국가정보원의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이른바 ‘온라인 심리전 계획’은 더욱 치밀했다. ‘곽노현·전교조 규탄 전략 심리전 적극 전개’(2011년 8월29일) 문건에는 “사이버 역량을 총가동, ‘곽’·전교조의 부도덕성 규탄·확산”을 하겠다는 기조 아래 트위터와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등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계획을 세웠다. 특히 이 문건에는 “트위터 설문조사에 특수 시스템을 가동, ‘곽’ 사퇴 압박 여론 견인” 등 국정원이 여론조작을 위해 해킹이나 별도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내용도 담겼다. 이어 “아고라·트위터·전교조 홈피 등에 ‘양 가면 쓴 이중인격자’ 곽의 구속 수사 촉구 및 ‘곽’ 지지 야권 책임론 부각글 집중 전파”를 해야 한다며 하루 750건의 할당량도 적어뒀다. 국정원은 다음 아고라에 곽 전 교육감 사퇴를 촉구하는 서명 코너도 직접 개설했으며, 동영상과 만평 등을 제작·배포하고 있다고 문건에 적었다.

국정원이 직접 사찰을 한 정황도 드러났다. 문건에는 국정원이 당시 박명기 전 교수 쪽 인사를 만난 정황은 물론 곽 전 교육감과 변호인의 일정이나 계획까지 담겨 있었다. 곽 전 교육감과 박 전 교수 쪽을 직접 탐문하지 않고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들로 명백한 불법사찰이 이뤄진 정황이다.

국정원이 검찰을 통해 수사 진행 상황 등을 파악한 사실도 드러났다. ‘중앙지검, 곽노현 영장실질심사 준비에 전력’(2011년 9월9일), ‘서울중앙지법,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사전구속영장 발부’(2011년 9월10일) 등 문건에는 국정원이 검찰 관계자를 직접 만나 곽 전 교육감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정황이 나온다. 이 문건들에는 “곽노현은 1차만 조사한 점을 고려, 구속기일(10일) 중에 소환하여 집중 조사 실시”, “○○○, ○○○ 등 관련자들에 대한 기소는 현재 미고려하고 있으나 추가 조사를 통해 기소가 필요할 경우 시행 가능”, “(검찰이 영장전담인) ○○○ 판사가 평소 좌파 성향을 드러내 기각될 가능성을 우려했으나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 ‘정상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평가” 등 검찰 수사 진행 과정과 계획이 담겼다.

국정원 사찰 기록 정보 공개 운동을 벌이고 있는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상임운영위원장인 김윤태 우석대 교수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의 불법적인 사찰 정보를 당사자에게 공개하고 이 과정에서 불법이 드러날 경우 법적인 책임을 지게 할 것이다”며 “이런 시민운동을 통해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정원이 불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불법 사찰 기록을 삭제하게 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민행동은 25일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영화 ‘버닝’ 등을 제작한 이준동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20명 안팎 인사에 대한 국정원 사찰 기록을 공개해달라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시민행동 쪽은 배우 문성근씨도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인 고 문익환 목사의 사찰 문건을 공개해달라고 할 계획이다. 이처럼 군부독재 시절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 등 정보기관의 문건이 공개될 경우 과거사 진상규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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