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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잡기하다 몸 스치자 소리쳤다"..아이들 모습에 놀란 교사

이우림 입력 2020. 11. 24. 07:00 수정 2020. 11. 2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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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코로나세대, 잃어버린 1학년②
올해 1학년 되면서 제일 기대했던 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경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 교사를 맡은 이모 교사는 지난 10월 학교 운동장에서 술래잡기하던 반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게임 내내 물리적 접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술래가 주변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잡힌 것으로 규정했다. 이 교사는 “오히려 실수로 몸이 닿자 서로 ‘만지면 안 된다’고 소리쳤다. 코로나19가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바꿔놨구나 싶어 대견하면서도 씁쓸했다”고 말했다.

올해 3월 유치원을 떠나 학교라는 울타리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초등학교 1학년. 개학 연기란 사상 초유의 교육부 결정에 따라 입학의 설렘조차 산산조각났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았고 두 달 뒤인 5월이 돼서야 첫 등교를 했다. 이전에 한 번도 학교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초등학교 1학년생에게 코로나19의 영향은 컸다. 교사들은 “한글도 떼기 전 방역 수칙을 먼저 익힌 전무후무한 방역 세대”라며 “놀이 문화가 현저히 줄어 사회성을 배울 기회조차 사라진 세대”라고 입을 모았다.


“한글 익히기 전 방역수칙부터 배워”

23일 초등학교 1학년인 이지오(7)군이 EBS 교육방송을 보며 온라인 학습을 하고 있다. [독자 제공]


앞선 이 교사의 사례처럼 교사와 학부모들은 방역 수칙 준수에 있어서는 아이들이 어른보다 낫다고 말했다. 평택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최모 교사도 “운동장에 나가서 기차놀이를 하는데 서로 어깨에 손을 올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눈치를 보다가 아이들이 먼저 ‘선생님,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사는 김경옥(42)씨는 “초등학교 1학년인 딸과 백화점에 갔는데 마스크를 안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왜 안 쓰냐’고 꼭 물어본다.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도 ‘왜 다 마스크를 벗고 있냐. 엄마 마스크 똑바로 쓰라’고 아이가 먼저 말한다”고 소개했다.


방역 수칙 강박→놀이문화 실종
하지만 방역 수칙에 대한 강박은 놀이문화의 부재, 나아가 사회성 결여로 직결됐다. 서울 성북구에서 초1 손녀를 키우는 한모(61)씨는 학교에 가도 마스크를 꼭 끼고 일정하게 떨어져 앉기 때문에 아이가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한다고 토로했다. 한씨는 “선생님들이 ‘친구들과 놀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상황이다. 손녀한테 ‘학교 친구 누구랑 놀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중앙일보가 지난 10월 14일부터 11월 5일까지 초ㆍ중ㆍ고교 신입생 227명에게 친구 관계 현황을 물은 결과 반 친구의 이름을 아는 비율이 초1에서 가장 적었다. 설문에 응한 초1 학생 83명 중에서 절반이 넘는(57.8%) 48명은 이름을 아는 친구가 5명 이하라고 답했다.

초등학생, 학교에 등교하면 가장 하고 싶은 것.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7살에서 멈춘 아이들’…가정환경 따라 학력 격차

다른 학년과 달리 아직 부모나 교사의 손길이 더 필요한 초1의 경우 학력 격차 문제도 심각했다. 수원 권선구 입북동에 사는 학부모 이모(45)씨는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이가 현재 6학년인 첫째와 비교해 수준 차이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화하는 거나 한글 습득 능력을 보면 첫째 아이 때와 너무 비교된다. 그냥 유치원생 같다”며 “엄마들끼리는 ‘7살에서 멈춘 아이들’이라고 자조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하남에서 초1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 이모(39)씨는 학습지 등 사교육의 도움을 빌렸다. 이씨는 “미리 공부시키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싶다. 온라인으로는 충분히 학습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교사들 “한글 뚫리니 수학도”

강서구 일대 학교 및 유치원 대다수의 등교가 내주로 미뤄진 5월 26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미술학원 강사와 유치원생이 다닌 미술학원 인근에 위치한 서울 강서구 초등학교 인근 문구점을 학생들이 서성이고 있다.뉴스1


교사들도 온라인 수업의 한계를 지적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대전의 초1 교사 A씨는 첫 현장 등교를 시작했을 때 아이들의 한글 수준이 심각했다고 말했다. 3월부터 한글 공부를 진행했으면 6월쯤에는 기초적인 문장을 쓰고 읽는 정도는 가능해야 하는데 미해독 학생이 많았고 문장 쓰는 수준도 지난해와 크게 차이가 났다고 했다. A교사는 “한글이 안되니까 수학 등 다른 부분에도 구멍이 뚫렸다”고 말했다.

온라인 수업의 한계로 교사로서 죄책감이 들었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초1 교사 B씨는 “온라인 수업의 경우 숙제를 내줄 때도 가정환경에 따라 수준 차이가 굉장히 났다.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항상 부족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B교사는 “1학년의 경우 한 달 정도는 학교 시설을 이용하는 법이나 친구 이야기에 집중하는 법, 화장실을 쉬는 시간에 가는 것 등 여러 단체 생활 규칙을 배운다. 선생님들끼리는 흔히 ‘사람 만든다’고 표현하는데 그런 과정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려니 한계가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은 지난 10월 이후 매일 등교가 가능하게 된 상황에 반가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남의 학부모 이씨는 “저학년이라 온라인 수업에 사실 강제성이 없었다. 그날 안 해도 되다 보니 숙제가 밀리곤 했는데 지금은 학교에서 매일 진도를 나가니까 더 낫다”고 말했다.

엄문영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회화나 돌봄, 커뮤니케이션 기능 등 학교가 오랫동안 감당해온 기능들이 있다. 그동안 이런 것들이 등한시됐었다면 코로나19로 인해 이 기능에 대한 환기가 이뤄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엄 교수는 “특히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딪히면서 싸우고 화해하고, 정해진 규칙을 따르면서 사회화를 배우는데 지금은 이 모든 것이 가정에 고립된 상황”이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학습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위문희ㆍ권혜림ㆍ정진호ㆍ이우림ㆍ편광현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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