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꿈나무] 업로드는 로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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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대표 허언이 '퇴사한다'와 '유튜브 한다'라고 한다.
주변에서도 뭐 좀 잘한다 싶으면 "너 그걸로 유튜브 해봐!"라고 서로 격려 아닌 격려를 한다.
유튜브는 어느새 사표처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치명적인 무언가가 된 모양이다.
직장인에게 유튜브가 현재 처지에서 탈출할 새 활로로 매력적이었다면, 이들에게 유튜브는 지금까지 일상을 유지하게 해줄 최초의 인정으로서 무게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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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대표 허언이 ‘퇴사한다’와 ‘유튜브 한다’라고 한다. 주변에서도 뭐 좀 잘한다 싶으면 “너 그걸로 유튜브 해봐!”라고 서로 격려 아닌 격려를 한다. 유튜브는 어느새 사표처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치명적인 무언가가 된 모양이다. 내 영상의 조회수
에 따라 칼같이 비례하는 수익이 통장에 꽂힌다. 이 단순명쾌한 거래. 누군가의 기준에 따라 발탁돼 섭외될 필요 없고, 상사나 다른 이에게 허락받을 필요도 없으며, 그저 자신이 요량껏 만든 콘텐츠에 따라 조회수라는 결과에 승복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계급장 다 떼고 나랑 이 세상과의 정직한 ‘맞다이’(?). 기존 사회가 정해놓은 인정 영역을 단숨에 뒤집어버릴 듯한 전복적 희망마저 깔렸다고 할까.
진짜 대단한데 자본주의가 인정해주지 않은 존재가 얼마나 많았던가. 이쑤시개로 만리장성을 만들었다거나, 식용유에 밥 말아 먹는다거나, 재능과 기행 사이를 오가는 특별함을 가진 이들. 직장인에게 유튜브가 현재 처지에서 탈출할 새 활로로 매력적이었다면, 이들에게 유튜브는 지금까지 일상을 유지하게 해줄 최초의 인정으로서 무게를 가진다. 이전엔 ‘등짝 스매싱’으로 표현되는 방구석 괴짜에 불과하거나 기성 미디어의 선택이 있어야 했지만, 이제 대중과의 직거래에 당당히 나설 수 있다. 집요하게 매달렸던 ‘덕질’, 탁월하긴 한데 그렇다고 어떤 생계로 삼을 수 없는 재능, 누구나 한 번쯤 쳐다보는 기행이 ‘돈’이 된다?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으로 환원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설명은 생략 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특이함을 좇는 TV 프로그램 특성상) 방송 출연자가 유튜버인 경우가 많아졌다. 본인 채널에 대해 말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출연하지 않겠다고 하여 섭외가 무산되거나, ‘방송 잘 볼게요, 제 채널도 구독해주세요’ 하는 교환 요청(?)도 종종 나온다. 혹여 방송이 누군가의 채널 홍보용으로 쓰이면 안 되기에 사전에 유튜브 얘기를 나눠보는 건 필수 코스가 됐다. 들을수록 이쪽 현실도 참 녹록지 않다. 아무리 구독자가 몇천 명 될지라도 한 달 수입이 2만원쯤이 부지기수. 공들여 만든 ‘웰메이드 콘텐츠’라고 조회수를 보장받는 건 아니고, 반대로 ‘대체 왜?’ 이런 생각이 드는 영상이 거뜬히 몇백만을 찍기도 한다. 오죽하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간택’이란 말이 유행하겠는가. 새로운 생활 수단으로 마냥 숭상하기엔, 불안정하고도 기묘한 알고리즘이여.
그러나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가능성이 있다는 건 사람을 꿈꾸게 한다. 영상 딱 하나 제대로 터져서 언젠가 한 달에 100만원만 벌 수 있다면, 평생 그림 그리며 살고 싶다는 한 출연자는 말한다. “제가 매주 업로드하는 건, 매주 로또 사는 거랑 비슷한 거예요.” 앞으로도 유튜버 꿈나무는 늘어날 수밖에 없겠다. ‘신종 로또’는 계속 긁힐 테니까. 이들을 TV에 출연시키는 피디는 이 방송이 대단한 파급력을 가져오리라는 허황한 장담은 드리지 못하고, 최소한 그의 채널에 ‘TV 나왔어요’라는 소재 하나는 드리겠지 싶다. 완전히 새롭지만 또 대단히 새롭지도 않은 오늘, 우리는 그저 각자의 채널에 나름대로 사력을 다할 뿐이다.
언젠가 당신이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기 바라며 ‘좋아요’ 버튼으로 응원하는 수밖에.
정파리 방송사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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