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미완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지수 입력 2020. 11. 2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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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들의 투쟁을 지지한다

[김지수 기자]

 범죄인 인도법 폐지를 촉구하는 반중국 집회 ‘검은 행진’이 16일 오후 홍콩 각지에서 출발해 중앙정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23일 홍콩 웨스트카오룽 법원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이끌었던 조슈아 웡(24)과 아그네스 차우(23), 이반 램(26) 등 청년 활동가 3명을 불법집회 가담 혐의 등으로 수감시켰다. 이들은 지난해 6월 21일 홍콩 완차이 지역 경찰본부를 에워싸고 벌어진 불법시위의 조직·가담·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지난 11일, 홍콩 정부는 홍콩 입법회(국회) 야당 의원 4명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홍콩 입법회(국회)의 야당 의원 15명은 이번 의원직 박탈에 반발하며 동반 사퇴했다. 중국이 홍콩 정부를 통해 홍콩 내 반(反)중파에 대한 정치 탄압을 본격화했고 홍콩의 삼권분립은 완전히 무너진 것과 다름없다. 

지금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끔찍한 사태를 설명하려면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84년 12월 19일, 영국과 중국의 정상이 만나 '홍콩반환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97년 7월 1일, 영국은 홍콩 전역을 중국에 반환한다.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구역으로서 중국은 향후 50년간, 홍콩의 현행체제를 유지하며 "한 나라, 두 체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보장한다.'

홍콩이 중국의 영토로 편입되긴 하지만 홍콩 반환 후 50년 동안은 중국과 다른 체제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따라서 홍콩 시민들은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인권과 언론, 집회의 자유까지 보장받아야 했다.  

하지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중국 정부는 홍콩의 자치를 침해하려고 시도했다. 2003년에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이 홍콩인들의 대규모 시위로 좌절된 이후에도 홍콩의 자치권을 끊임없이 위협했고 작년에는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에 항의하는 시위를 강경 진압했다. 

결국, 올해 6월 30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7월 1일부터 그 법이 시행되면서 홍콩은 중국의 일개 도시로 전락했다. 한때 아시아의 진주라고 불리며 세계적인 금융중심지로 자리매김했던 홍콩의 영광은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홍콩 시민들은 자유를 누릴 권리를 완전히 박탈당했다. 

홍콩반환협정에 의하면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종료되는 날은 2047년 7월 1일이다. 하지만 약속된 기간의 절반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홍콩에게 허용되었던 고도의 자치는 없었던 것이 되었다. 양제(兩制)는 사라지고 일국(一國)만 남은 도시에서 살아가야 할 홍콩인들에게는 절망적인 미래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홍콩 민주화 시위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주체는 청년 세대다. 앞서 소개한 민주화 운동가 조슈아 웡과 아그네스 차우는 1996년생으로 홍콩 반환 직전에 태어났다. 그들과 동갑인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태어난 덕분에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만, 홍콩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목숨을 건 투쟁을 해야만 민주주의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작년 6월부터 시작된 홍콩 민주화 시위는 전세계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한국의 대학생들도 홍콩 시위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그들과 연대했다. 학내에 대자보를 붙이고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가 이어지면서 한국에 유학중인 중국인 학생들과 많은 마찰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대학생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작년까지였다. 올해 홍콩 국가보안법이 제정되고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던 운동가들과 중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실어온 언론사들이 탄압을 받고 있음에도 한국의 대학가는 작년과 달리 너무 조용하다.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대학생들이 학교에 모이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물론 그것도 하나의 이유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홍콩의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이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인해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력해도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들은 작년과 달리 무기력해졌다.

홍콩 시위에 참여했던 홍콩의 청년들과 같은 세대인 나에게는 중국과 홍콩 정부의 행동을 변화시킬 어떠한 힘도 없다. 고통받는 홍콩의 청년들을 돕고 싶으나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착잡함을 느끼던 와중에 한국은 홍콩과 달리 언론의 자유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 글이 당장 홍콩의 민주화에 기여할 수는 없지만, 홍콩에서 벌어진 일들을 알림으로서 홍콩을 잊지 않게 할 수는 있다.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그들의 노력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길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홍콩의 민주화 운동가이자 홍콩 입법회(국회) 의원이었던 네이선 로가 쓴 두개의 글을 인용하며 마치고자 한다.
  
"저의 분노와 슬픔을 형용할 수 있는 말은 없는 듯합니다. '다음 세대의 정치 지도자', '사회 운동 인사'라는 옷을 입고 그들은 일반 소년들처럼 K-pop을 듣고 건담과 디저트를 살 때 뿌듯하고 앳된 미소를 보입니다. 세월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소년의 순수한 마음을 보면 그들이 이와 대조되는 최악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게 참 마음 아픕니다. 여러분 모두의 안녕을 빕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싸워나갑시다."

"홍콩에 있는 친구들, 그리고 지금 세계를 표류하고 있는 여러분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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