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듀 조작 사태 1년여..CJ, '조용한 합의'보다 상처 치유 힘써야

남지은 2020. 11. 2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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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서 피해자 명단 나오자 여론 공분
CJ, 미흡한 사과에 합의과정 비밀
업계 "상처 보듬고 보상 투명하게"
순위 조작으로 논란이 된 ‘프듀 시리즈’의 한 장면. 가해자 처벌을 넘어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엠넷 제공

“피해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기사로 나오니 충격은 받은 것 같아요. 괜찮은 척하지만, 완전히 담담할 순 없겠죠.”

‘프로듀스 시리즈’(엠넷) 순위 조작 사건의 피해자 중 한명의 소속사 관계자는 2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작의 주범인 씨제이이엔엠(CJ ENM) 소속 안준영 <엠넷>(Mnet) 피디와 김용범 책임피디가 지난 18일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2년과 1년8개월을 선고받은 직후, 재판부가 피해자 명단을 공개하면서 ‘프듀 사건’으로 세상이 또 한번 떠들썩했다. 추측만 난무했던 피해자가 특정되면서 이제는 가해자 처벌만큼, 피해 당사자의 상처가 아무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사건 발생 1년여가 지났는데도 피해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 등 후속 대책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에 명단이 공개되면서 미처 파악하지 못한 피해자도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작 논란이 불거졌을 때 사과보다는 문제 해결에 급급해 보였다. 자신들이 파악한 피해 당사자 한명 한명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메시지라도 보냈다면,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일에 아이들 마음이라도 편해지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씨제이이엔엠은 조작이 밝혀진 뒤부터 자체적으로 파악한 피해자의 소속사나 당사자와 접촉해 보상 협의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비밀리에 보상을 진행하면서 오히려 불신이 싹트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12월 씨제이이엔엠 쪽이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300억 규모의 기금·펀드를 조성하고 외부 기관에 운영을 맡겨, 음악 생태계 활성화와 케이팝의 지속 성장을 위해 쓰이도록 하겠다”고 밝힌 점으로 미뤄 음반을 낼 때 투자를 하는 식으로 보상하지 않겠냐고 추측한다. <엠넷>은 보상 방식에 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엠넷> 관계자는 “일부는 보상 협의가 완료됐고, 일부는 협의를 진행 중이고,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보상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일을 수습하는 실무 책임자가 누군지, 어떤 과정으로 진행하는지도 비밀에 부쳤다. 한편에선 일정 금액의 보상금을 줄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한 방송사 예능 피디는 “차라리 피해 당사자가 음반을 낼 때 얼마씩 투자를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깔끔할 텐데, 다른 곳과는 어떤 협상을 하는지에 대해 괜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용한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받게 될 또 한번의 압박도 우려된다. 소속사와 씨제이이엔엠이라는 거대 미디어기업 앞에서 과연 피해자들이 원하는 바를 마음껏 얘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보상 과정이 주로 소속사를 통해 이뤄지면서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피해 당사자들이 또 다른 피해를 입거나 진정한 보상이 어려워지는 건 아닌지 세심한 관찰도 필요해 보인다. 아이돌 인권 관련 책을 쓴 이종임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객원교수는 “씨제이가 모든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려는 게 느껴진다”며 “논의를 하는 과정에 내부 성찰과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정책을 고민했는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듀’를 통해 데뷔한 그룹인 아이즈원을 둘러싸고 아이즈원 갤러리 등에서 활동 반대 성명까지 나오면서 직접 피해자가 아닌 다른 참가자들에게까지 불똥이 튀고 있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승욱 정신분석가는 “통상적으로 이런 일을 겪게 되면 ‘내가 힘이 없어 이렇게 됐구나’라거나 ‘나도 빽이 있었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라는 식으로 심리적으로 굉장한 억울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마음을 보듬기 위해서라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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