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제발 문재인을 마지막 대통령으로

양상훈 주필 입력 2020. 11. 26. 03:20 수정 2023. 12. 1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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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권 막장극 보며
문재인 개인 넘어
대통령 자리 자체에 환멸
대통령제 졸업 못하면
’차라리 文이 나았다' 한탄
머지않아 나오게 될 것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식 모습.

문재인 정권이 울산 선거 공작과 월성 1호 평가 조작 등 갖은 불법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해 검찰총장에게 가하는 집단 폭행을 보면서 문재인이라는 개인을 넘어 한국의 대통령이란 자리 자체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문재인을 마지막 대통령으로’라는 것은 대한민국이 이제 대통령제에서 졸업하자는 바람이다. 실현 가능성은 0%다. 정치 현장의 국회의원들에게 물으면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제는 그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정치를 실제 경험하면 대통령제로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도 실현 가능성이 1%도 아닌 0%라고 하는 것은 이미 자신이 대통령이 된 듯 착각하는 인물들이 등장했으며 그들의 뒤에 줄 선 그룹까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이 방해하면 대통령제 폐지 개헌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국민 다수도 대통령제 폐지에 반대한다. 한국민에겐 대통령 직선제는 민주주의 그 자체로 인식되고 있다. 내각제 등 다른 제도에 대해선 정치 혼란과 의원들의 부패 등 부정적 선입견이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러니 0%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제 대통령제는 끝내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국민이 바라는 ‘좋은 대통령’은 이제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위대한 대통령들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 문재인이 마지막이 아니면 더 한 사람들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지금 많은 인물 가운데 ‘좋은 대통령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정치 풍토에서 이런 사람들은 결국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다. 더 대중 영합적이고, 더 무책임하고, 더 근시안적이고, 더 이중적이고, 더 편향적이고, 더 국민 분열시키고, 더 선동적이고, 더 비겁하고, 더 뻔뻔한 사람이 대통령 당선에 유리하다. 이 모든 문제를 가리는 쇼를 더 잘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유교적 인습에 젖은 한국에서 검찰, 경찰, 국세청, 국정원, 군, 전 행정부처를 휘하에 두고 국회와 법원까지 장악한 대통령은 사실상 왕(王)으로 등극하는 것이다. 왕은 오랜 세월에 걸쳐 길러져야 한다. 한국 정치엔 대통령 재목을 기르는 이런 시스템 자체가 없다. 보통 사람이 시운을 만나 왕이 되는 것이다. ‘어쩌다 대통령’이다. 주위에서 너무 떠받드니 어느 순간 자신이 무슨 철인(哲人) 왕이나 되는 듯 착각에 빠진다. 이른바 ‘프레지던트 해저드(대통령 함정)’다. ‘5G’를 “오지”라고 읽는 왕이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 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호령한다. 엉터리거나 어설픈 지식에서 나온 개인 편견을 비전이나 되는 양 내세우면 영혼 없는 관료들이 근거를 조작해서라도 집행한다. ‘민주주의 아닌 문(文)주주의’가 과장이 아니며 김주주의, 이주주의, 박주주의가 계속 나올 것이다.

설사 자질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 해도 좋은 대통령이 되기 힘들다. 대통령제는 단 한 표만 이겨도 모든 권력을 독식하고 휘두르는 제도다. 49.9%의 국민을 패배자로 만든다. 권력에서 철저히 소외된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며 정권이 망하기만을 고대한다. 정권을 되찾을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도 없다. 정권은 이런 야당을 죽이기 위해 모든 권력을 동원한다. 5년 내내 싸움이다. 이것이 대통령제 아래 여야 관계의 본질이다. 초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 논의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단언컨대, 대통령제를 계속하는 한 10년, 20년 뒤에도 이런 다람쥐 쳇바퀴가 똑같이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대통령제의 폐해가 국민을 분열시켜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지역 감정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이것이 대통령 선거 승패와 일체화되면서 이제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열리는 지역 쟁패전으로 비화됐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래로 조금씩이나마 줄어드는 듯했던 지역 감정은 거꾸로 더 악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지역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이러다 어떤 불행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정도를 넘어서 마치 자신이 망하고 흥하는 것처럼 노심초사하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은 이를 이용하고 심지어 조장한다. 이 망국 풍조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왕’을 없애는 것이다. 권력을 여야 100 대 0이 아니라 적절히 분점하면 이토록 서로를 저주하며 싸울 이유는 저절로 없어진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적대적 양당제는 포털 사이트,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과 같은 SNS와 만나며 그 폐해가 더 커지고 있다. 지금 많은 국민은 사실(事實)을 찾고 전하는 전통 언론이 아니라 사실 여부를 도외시한 유튜브에서 정치적 ‘쾌감’을 얻고 있다. 양쪽 국민은 마치 다른 행성에 사는 사람들 같다. 서로 만나면 대화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5년마다 왕 뽑기 전쟁을 계속한다면 나라는 사실상 분단 상태로 갈지도 모른다. 문재인을 마지막 대통령으로 만들지 못하면 지금은 생각하기도 어려운 ‘차라리 문재인이 나았다’는 개탄이 머지않아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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