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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은 있는데 'K언론'은 왜 없을까

변진경 기자 입력 2020. 11. 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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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은 코로나19를 만나 특별히 더 나빠지지 않았다. 그저 하던 대로 했고, 그 관성 속에서 단점들이 더욱 악화됐다. 전문가 11명에게 감염병 시대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물었다.
ⓒ연합뉴스2월19일 동대구역에서 시민들이 뉴스 특보를 보고 있다. 속보, 중계, 반복 위주의 코로나19 보도는 장기간의 감염병 재난에 유익하게 작동하지 못했다.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어요. 그저 내 말에서 따옴표를 따기 위해 취재하는 거죠(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대부분 현상에 대한 표면적인 사실을 알고 싶어 할 뿐이지 그 이면이나 진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이야기하려고 들면 인터뷰를 끝내고 싶어 했습니다(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새벽 5시가 되면 전화가 와요. 대개 초짜 사건기자들이에요. 오늘은 몇 명 들어왔냐, 어디로 갔냐…. 담당 기자도 매일 바뀌어서 설명한 거 하고 또 해야 돼요(공공병원 홍보실 관계자).” “기자님들이 그렇게 반말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여기 쳐다봐’ ‘이리로 와봐’…(김수련 대구 동산병원 파견 간호사).” “‘효과’보다 ‘효율’을 원하고, ‘부작용’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존재들처럼 보입니다(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원장).”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책무성 인식이 전혀 없어요(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글쎄요,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 있을지…. 본연의 역할을 기대하는 건 이제 불가능하지 않을까요?(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

코로나19 방역과 의료의 최전선에 선 전문가들에게 ‘인터뷰를 당한 사람’으로서 한국 언론을 겪은 후기를 물었을 때, 돌아온 답들이다. 언론이 정부와 의료기관, 전문가들을 바라보며 분석하고 논평하는 팬데믹의 시간은 동시에 언론 스스로가 평가대에 오르는 시간이기도 했다. 신종 바이러스 앞에서 사실, 과학, 진실을 대하는 언론 각각의 역량과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날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자신의 말과 지식이 언론이라는 필터를 거쳐 사회에 유통되는 과정과 방식을 눈앞에서 지켜본 방역 전문가들에게 이번 코로나19 시기의 경험은 매우 특별했다.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서 자주 한국 언론의 작동 메커니즘을 관찰했다. 그 관찰 결과들은 첫 문단에 옮겨놓았듯, 처참하다.

사실 한국 언론은 코로나19를 만나 특별히 더 나빠지지 않았다. 더 나아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저 하던 대로 했고, 그 관성 속에서 어떤 단점들은 더욱 증폭되고 견고해져, 고질적이되 전에 없이 더 악화된 문제들을 생성해냈다. 전문성을 키울 자원과 시스템의 부재, ‘싸우기만 하는’ 한국형 저널리즘의 습관, ‘공공재’가 아닌 ‘상품’으로서만 기능하는 싼값의 뉴스 콘텐츠 등은 이 문제의 기원이기도 하고 말미암아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욕하고 뒤돌아서버리기엔 코로나19가 절감시켜준 언론의 역할과 기능이 너무나 지대하다. 언론을 포기해버리면 나중에 또 다른 감염병 재난이 벌어졌을 때 똑같은 모습의 포털 뉴스 화면을 보고 있게 될 것이다. 나아지는 길의 첫발을 위해, K방역의 주역들로 불리는 우리나라 코로나19 방역·의료 현장의 전문가 11명에게 물어봤다. “우리에게 K언론은 왜 없을까요?” “무엇이 팬데믹 사회에 유익한 한국 언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 한국 언론도 잘하는 게 없지는 않지만…

코로나19 보도에서 보여준 한국 언론의 특기가 있다. 빠르게 다량으로 반복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건물 곳곳에 설치된 경보기처럼, 재난이 발생했을 때 빠르고 크고 동시다발로 경고음을 내는 역할은 실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화재 대피 요령을 알려주는 안내방송처럼, 위기 시 행동지침은 더 많이 반복될수록 좋다. 한국 언론이 잘하는 일들이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말했다. “손 씻어라, 마스크 잘 써라, 기침 예절 지켜라 같은 개인 방역수칙이 언론을 통해 잘 홍보됐다. 언론이 국민과 함께 노력한 덕에 코로나19 위기를 잘 극복한 면이 있다.”

고재영 질병관리청 대변인도 코로나19 시기 한국 언론이 보여준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나라 언론은 많은 양의 보도들을 통해 감염병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 경각심을 주는 정보, 예방법에 대한 정보를 매우 많이 확산시켜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의 사회적 연대 및 약자 배려, 이타심 확산에도 큰 기여를 했다. 방역 당국 입장에서도 언론은 소중한 동반자였다.”

한국 언론의 특기는 그러나 단점이기도 했다. 속보, 중계, 반복 위주의 코로나19 보도는 장기간 지속되는 감염병 재난 위기에 계속 유익하게 작동하지 못했다. ‘○○ 지역 확진자 발생, 집단감염 진앙 되나’ ‘△△도 뚫렸다 시민들 불안 증폭’ ‘□□에서 ×번째 사망자 발생, 코로나 공포 확산’ 같은 보도는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방역 동참을 이끌어낸 초기의 효용을 다하고 점차 바이러스 자체에 못지않은 공포와 불안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악효과를 냈다. 대부분 악의는 없지만 ‘생각하지 않고’ 정보를 물어 나르는 습관 탓에 생기는 문제들이었다. 그런 영혼 없는 보도 태도는 ‘나흘 만에 신규 확진자 100명 넘어’ ‘6월 들어 신규 확진자 수 첫 50명대 아래로’ ‘이번 주 최초 확진자 수 두 자릿수 기록’처럼 점점 타성에 젖어가다가 급기야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두 자릿수에서 세 자릿수로 바뀐 어느 날 “×일 만에 세 자릿수를 ‘회복’했다” 같은 어이없지만 예견된 실수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혁민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기성 언론은 단순 사실 전달 기능은 이제 조금 줄이고 사실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를 밝혀 보도하는 전문성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 그 부분에서 국내 언론이 많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 감염병 ‘팩트’ 보도가 만든 공공보건 위기

감염병 재난 시 신속한 ‘팩트(사실)’ 보도는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 줄 속보로 뜨는 단순 팩트는 때로 사회에 독이 되기도 한다. 지난 10월 말 독감백신을 두고 벌어진 사회 혼란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포털 뉴스 화면을 도배했던 뉴스들의 제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 벌써 7번째’ ‘○○에서 독감 주사 맞고 60대 남성 사망’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 신고 지난해 비해 급증’ ‘독감백신 사망, 아나필락시스 가능성 있어’ 등등.

모두 ‘팩트’는 맞다. 독감백신을 접종한 후 사망한 사례가 있었고,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을 보인다는 신고량도 예년에 비해 늘었다. 방역 당국이 “아나필락시스 같은 백신 부작용의 가능성을 100% 배제할 수 없다”라고 밝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팩트의 조각들은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하는 과학적 전제와 통계적 해석이 빠졌을 때 결코 온전한 ‘진실’이 될 수 없다.

많은 언론이 ‘백신 접종 후 사망’이라는 선후 관계를 ‘백신 접종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인과관계와 구분하지 않고 보도하는 오류를 범했다. 지난해에 비해 이상반응 신고량이 늘었다는 통계를 인용하면서 지난해보다 백신 접종자 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통계는 덧붙이지 않았다. 아나필락시스나 길랭·바레증후군 같은 백신 부작용을 상세히 묘사한 기사는 많았다. 그러나 이에 꼭 동반돼야 할, 모든 의료행위의 위험이 ‘0’은 아니며 부작용 위험에도 불구하고 보건적 이득이 크기에 현대사회가 채택한다는, 백신의 사회적 원리를 설명한 기사는 많지 않았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감염병 재난에서는 속보와 사실 보도뿐 아니라, 그 사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같이 실리지 않으면 사회에 상당히 혼란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단순 팩트 위주 독감백신 보도가 쏟아진 후 대중 사이에 백신 공포가 확산됐고 접종 기피 현상도 나타났다. 독감백신 접종률이 낮아지면 집단면역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겨울철 코로나19의 피해에 더해 독감으로 인한 추가 피해가 커질 것이다. 앞으로 코로나19 백신이 상용화되었을 때도, 이번에 언론이 부추긴 비과학적 백신 공포가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존재한다.

ⓒ연합뉴스5월25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서울의 한 미술학원에서 취재진이 출입문을 촬영하고 있다.

■ 진짜 궁금해서 취재하는 거 맞아?

우리나라의 코로나19 관련 보도들은 어떤 목적 아래 생산되고 있을까. 대다수 언론인이 “감염병을 퇴치하고 피해 확산을 막는 데 우리 언론인도 다 함께 노력한다(2020년 4월28일 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 제정 ‘감염병 보도준칙’)”라는 공익 목적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 집단은 고개를 갸웃한다. 실제 방역·의료 현장에서 기자들을 겪은 전문가들은 정말 언론이 이 팬데믹 위기에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그 해법을 모색할 의지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나라 코로나19 기사는 대부분 ‘보도를 위한 보도’ 같다”라고 말했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쏟아지는 취재 요청을 경험한 뒤 내린 결론이다. 정말 궁금하고 진지하다면 각기 조금씩이라도 질문이 다르고 기사 내용도 다양해야 할 텐데, 모두가 로봇처럼 똑같은 질문을 하고 똑같은 기사를 썼다. “특정 사안에 대해 하루에 10~20통의 전화를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받는 질문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 독감 예방접종 관련해서는 이틀 동안 30명 이상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는데 질문 내용에 차이가 없어서 미리 적어둔 답변을 문자로 ‘붙여넣기’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같은 언론사에서 다른 기자들이 연락을 주는데, 취재 질문이 동일한 경우도 많았다.”

기자들은 기사 하루 할당량을 채우는 동시에 ‘새로워야 한다’는 뉴스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코로나19라는 동일한 사안에 관해 어제의 뉴스와 오늘의 뉴스가 다르려면, 어제 일어난 일에 대한 오늘의 ‘논평’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말 중요하거나 정말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라도 기자와 매체의 그날 의지와 업무 상황에 따라 주요 뉴스로 둔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취재원이 된 방역 전문가들은 점차 간파해나가기 시작했다.

김탁 교수는 알아차렸다. “인터뷰를 통해 전문가의 지식을 객관적 시각에서 듣기보다 기자들이 원하는 대답을 직간접으로 유도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전문가의 권위를 빌리려는 취재 경향을 자주 느끼게 됐다.” 김홍빈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정말 궁금해서 시간을 갖고 심층적으로 취재한다기보다는 ‘어제오늘 이 이슈가 터졌으니 그 내용을 내가 선점해야겠다, 오후 4~5시 마감인데 데스크가 뭐라도 물어오라고 쪼니까…’, 이런 상황이 그대로 느껴진다.”

■ 얼굴 반창고 사진에 ‘왜’를 묻는 언론이 없다

코로나19 방역 현장에서 전문가들이 경험한 한국 언론에서 또 하나의 특성은, ‘그림’, 즉 현장의 이미지를 매우 원한다는 점이다. 방역 당국의 한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정보를 요청받은 부분이 ‘환자의 동선과 소재’에 관련된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환자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어디에서 발견됐고 어느 병원으로 가 있으며 접촉자들은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이 가장 많았다. 동선이 보이면 ‘그림’이 되고 스토리가 구성되니까.” 구체적 장소가 나오면 언론은 ‘현장’ 취재가 가능하다.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지역이나 입원했다는 병원으로 일단 달려가 거리나 건물 전경이라도 찍어 올려야 뉴스 콘텐츠가 구성되고 시청자와 독자들의 ‘클릭’을 받는다.

뉴스의 생생함과 전달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맞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그림’에만 매몰되면 그 안과 그 뒤의 진실을 놓친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코로나19 대구 확산 당시 모든 언론 매체에서 찍어간 ‘간호사 얼굴 위 반창고’를 예로 들어 말했다. “간호사들이 코와 이마에 굵은 반창고를 붙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붙이지 않게 됐다. 일부 기자들은 촬영을 하면서 코로나19 의료진의 상징이 없어졌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사실은 초기에 보급된 고글의 품질이 좋지 않아 장시간 착용하면 얼굴에 상처가 생길 정도라 반창고를 붙였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심층취재로 다뤄졌어야 했다.”

김수련 신촌세브란스 병원 간호사는 지난 3월 대구 동산병원 코로나19 중환자 병동에서 한 달 파견근무를 마친 뒤 페이스북에 ‘대구 코로나 간호사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여러 편의 글을 올렸다. 그 가운데 하나는 기자들과 언론에 대한 것이었다. “저희의 고생은 특정한 형태로 전시될 뿐입니다. 각도 잡아 찍은 꽃들처럼요. 저희가 처음 이곳에 도착해 근무를 시작한 날 아침, 휴게실에서 아침을 우걱우걱 먹고 있는데 갑자기 휴게실 문이 열리고 남자 둘이 들어와 우리한테 호통을 쳤습니다. ‘선생님들 몇 시 몇 분까지 상황실로 오라는 말 못 들었어요?’ ‘예, 갔는데, 아무도 없던데요?’ ‘우리가 선생님들 찍으려고 했는데 기다렸어야지! 찾아다녔잖아요!’”

김수련 간호사는 올해 초 간호사들을 백의의 천사나 우리 사회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보도들을 보면서 ‘수십 년간 지옥 바닥을 기었던 간호사들의 처우가 이번을 계기로 좀 개선되지 않을까’ 잠깐 기대를 했다. 하지만 이내 기대를 접었다. “한국 언론에서 주로 간호사들에게 요구하는 바는 불쌍하고 결백한 선의의 피해자, 혹은 추상화된 영웅의 모습이었다. 비참한 노동환경, 방역수칙을 위반하는 사람들 혹은 환자, 의사, 정부에 대한 비난을 우리로부터 듣고 싶어 했다. 해결책을 찾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시사IN 조남진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가 2월1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을 위한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일단 ‘짖고 보는’ 한국 언론의 치명타

원래 언론은 누가 누구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언론의 이런 ‘워치독(watchdog·감시자)’ 기능은 정부, 기업 등 권력의 독재와 횡포를 견제하는 데 훌륭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디든 무엇이든 일단 ‘짖고 보는’ 습성은 엉뚱한 사회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정보를 감추거나 왜곡하며 방역에 소극적인 미국 트럼프 정부 등과 달리 한국 정부는 비교적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며 적극적인 방역에 나섰다. 방역 당국이 비판받을 점이 분명히 있지만, 방역 정책이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시비를 걸고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들은 정말 어떤 문제의식에 바탕을 뒀다기보다는 그간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았다. “누군가를 욕하고 어디가 문제 있다고 하면 기자들이 좋아한다. ‘써야겠다’며 계속 연락을 해온다. 그런데 뭔가 단조롭고 평이하게 대안이나 해법에 대해 얘기하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빨리 대화를 끝내려 한다”라고 김홍빈 교수는 말했다.

어떤 보도들은 아주 ‘각’을 잡고 가설을 세운 다음 필요한 근거들을 입맛에 맞게 수집해 갖다 붙였다. 이런 정치적 보도들은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특히 해악이 심했다. 전문가들도 그 당시 언론의 방역 관련 질문들이 유난히 정치적이고 집요했다고 기억한다. “말을 돌려가며 한 시간 내내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 집요하게 몰아가는 기자도 있었다(이혁민 교수).”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말 심각해졌다. 대한민국에서 감염병 전문가로 살기 너무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이재갑 교수).”

이재갑 교수는 지난 3월 한 언론의 기사 속에서 ‘의료 사회주의 사단’ 가운데 한 인물로 지목된 적이 있다(〈중앙일보〉 3월3일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문재인 정부 ‘코로나 방역 비선’ 있나?”).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혹은 ‘익명의 의료계 소식통’의 주장을 인용한 이 기사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과 십상시(十常侍)’에 비교하며 코로나19 시국에도 ‘비선 전문가’ 그룹이 있고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방역 실패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서술했다.

그 ‘비선 전문가 그룹’이란 범학계 코로나19 대책위원회(범학계 대책위)를 말한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민간 전문가와 정부, 대중 간 소통이 미진했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코로나19 발생 직후 대한감염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등 11개 의학 학술단체가 발 빠르게 모여 협의체를 만들었다. 코로나19의 특성을 알리는 기자회견도 열고 중수본, 방대본 등 방역 당국에 조언을 하며 감염병 장기전에 대비한 기틀을 닦고 있던 차였다. 의협과 일부 언론에 의해 ‘방역 비선’이라는 공격을 당하자 소속 교수들을 보호하자는 판단에서 범학계 대책위는 3월4일 해체 결정을 내렸다.

8개월이 지난 지금 되돌아봐도 범학계 대책위의 빈자리가 크다. 각 의료 현장의 민간 전문가들 목소리를 모아 정부나 국민에 전달할 창구가 있었더라면 3월 대구 위기, 8월 수도권 위기, 10월 독감백신 혼란 등을 좀 더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전문성도 없고 공공성도 없다

왜 그럴까. 한국 언론은 왜 코로나19라는 국가적·세계적 위기를 만나서도 진화하지 못하고 낡고 나쁜 관성을 반복해 보여주기만 할까. 방역·의료 전문가들은 올 한 해 자신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지켜보면서 한국 언론의 두드러진 문제, ‘전문성 부족’을 발견해냈다. 특히 해외 언론과 비교할 때 더 티가 났다.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은 K방역의 대표 상품 ‘드라이브 스루’의 최초 제안자로서 국내외 언론의 취재 요청을 많이 받았다. 일본, 중국, 미국 등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 경험 가운데 특히 〈타임〉과 〈가디언〉 등에 글을 쓰는 데이비드 콕스 기자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신경과학 박사 출신의 그 저널리스트는 네 차례에 걸쳐 김 과장의 ‘드라이브 스루’ 논문과 그 논문에서 인용한 참고문헌의 내용을 자세히 물어왔다. “한두 가지 주제를 끈질기게 쫓아서 읽을거리를 만들어내는 외국의 언론 취재 방식을 처음 체감했다.”

이후 김 과장은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가디언〉 〈타임〉 등의 기사들을 찾아 읽고 그중 몇 가지는 유료 구독도 시작했다. “철저히 과학적인 증거를 기반으로 보도하고, 기사 하나 쓰는 데 들어가는 수치나 그래프들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코로나19의 새로운 치료법에 대해 소개하면 그 원문의 링크를 반드시 넣으며 수치까지 정확하게 인용한다. 비주얼 저널리즘을 구현한 보도들은 PC, 스마트폰, 태블릿 등 어떤 플랫폼을 이용하더라도 그 기기에 걸맞은 글씨 크기와 배열, 그림, 동영상 등이 적절하게 기사에 집중할 수 있게 배치된다. 그런 시각 요소 때문에 기사를 여러 번 찾으며 인용하고 싶게 된다.”

반면 한국 기자들과의 인터뷰는 몇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 실망스러웠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데다 사전 조사를 거의 해오지 않아서 인터뷰를 할 때 피차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성 부족은 한국 언론의 문제를 만들어낸 원인인 동시에, 또 다른 원인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왜 이 모양인가?’는 곧 ‘왜 이 모양인데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가’와도 연결된다. 핵심은 ‘공공성 상실’이다. 의료기관과 의료인이 오늘날 한국에서 ‘공공재’로서 기능하기보다 사적인 집단과 개인의 ‘수익 창출원’으로서 자리 잡은 것처럼, 한국 언론도 공익적 자원이 아닌 소비재 혹은 상품으로서의 보도물을 박리다매로 세상에 쏟아낸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클릭 장사’로 대변되는 기사의 상품화는 상업적 측면에서 이윤과 직결되는 동시에, 한국의 정파 갈등 구조하에서 정파적 이해에도 복무하며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원장은 “한국 의료와 언론의 핵심 문제는 상품화다. 그리고 해결 방법은 ‘탈상품화’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탈출하는가?’를 물어야겠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이것일지도 모른다. ‘탈출을 정말 원하는가?’ 우리가 너무나 외면하고 싶은, 그 질문 말이다.”

■ 더 나은 팬데믹 보도를 위한 필요충분조건들

기자가 모두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누가 진짜 전문가인지’ 감별해낼 수 있는 전문성은 반드시 키워야 한다. 그래야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해치는 ‘가짜뉴스’의 진앙지가 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이혁민 교수는 코로나19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어떤 내용을 보도하겠다 결정했을 때, 스스로의 의도뿐 아니라 보도에 따르는 영향을 꼭 한번은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보도의 영향이 사회적으로 유익하기를 바란다면, “한 가지 의학·과학적 사실에 대해 적어도 2~3명의 전문가에게 교차검증을 하라”고 부탁했다. 이재갑 교수도 “과학이나 의학 보도는 단순한 기계적 중립 보도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사안이 많다. 특정 전문가가 엉뚱한 이야기를 했을 때 바로 알아채고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보와 지식 전달, 권력 비판과 감시에 더해 언론이 해내야 할 또 하나의 역할은 ‘연대와 협력을 위한 노력’이다. 김수련 간호사는 말했다. “다들 너무 힘들고 제 앞가림이 어려우니 남들 두들겨 패는 기사에 더 빠져드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이럴 때일수록 서로를 좀 미워하지 말고 지켜줘야 한다. 3월 대구에서 간호사들이 온 힘을 다해 서로를 지켰듯이, 이제 우리 모두가 서로를 필사적으로 지켜야 한다. 언론이 그걸 돕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코로나19가 들춰낸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관심을 환기할 곳도 언론밖에 없다. “신천지, 청도대남병원, 콜센터, 쿠팡 물류센터, 요양병원의 폐해 등 그동안 외면해온 사회적 문제가 드러난 김에 언론은 그것들을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김홍빈 교수).”

언론만 바뀌면 될까? 그렇지 않다. 언론이 과학이나 의학 분야 전문성을 키워야 하듯, 전문 분야 종사자들도 언론 대응이나 위기 소통 역량을 함께 키워야 한다. 고재영 질병관리청 대변인은 “정부기관 내에도 내부의 정보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고 감수성 있게 정보를 잘 가공하고 표현할 줄 아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번에 많이 했다. 정부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이 얼마나 격차 없이 전달되는가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과학자들의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부문에 투자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언론의 공공성은 공짜로 얻어질 수 없다. 김진용 과장은 “당장에는 큰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라도 충분히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는 문화와 그런 일에 대해 가치를 정당하게 지불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사회에서는 좋은 기사에 대해 돈을 지불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돈을 지불할 만큼 좋은 기사가 먼저일까,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환경을 위한 사회의 투자가 선행되어야 할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이 오래된 질문을, 코로나19는 언론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다시 한번 세게 던졌다.

 

※11월30일(월) ‘팬데믹 시대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가 개최됩니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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