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운전이 죄? G20 개최국 사우디, 인권운동가 구금·고문 논란
[경향신문]
사우디아라비아가 전 세계 인권단체들의 보이콧에 맞닥뜨렸다. ‘여성 운전 금지’와 ‘남성 후견제’ 반대 운동을 벌여온 여성인권운동가를 투옥·고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 21일부터 이틀간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개최하면서 이미지 개선을 도모했지만, G20 기간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만 부각되며 체면을 구겼다.
BBC·CNN·알자지라 등은 25일(현지시간) 사우디 여성인권운동가인 루자인 알-하틀룰(loujain al-Hathloul)의 재판이 테러전담법원에 회부됐다고 보도했다. 테러전담법원은 반정부 인사·인권운동가에게 실형·사형 등을 선고하기로 악명 높은 곳이다.
루자인은 사우디에서 ‘여성의 운전할 권리’를 주장하다가 2018년 5월 사우디 정부의 ‘여성 운전 금지’ 폐지 시행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다른 여성 운동가 10여명과 함께 “왕국 불안정화를 시도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인권운동가다.
1989년 태어나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루자인은 2014년 사우디에서 여성 운전 금지 방침을 무시하고 수차례 운전했다가 73일간 구금되며 사우디 인권 현실을 세계에 알렸다. 루자인은 남성 친척의 허락 없이 여성이 단독으로 출생·사망신고, 여권 등록, 결혼, 해외여행 등을 할 수 없도록 한 ‘남성 후견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해 시사주간지 타임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다.
국제앰네스티는 트위터를 통해 루자인이 감옥에서 전기 충격, 채찍질, 성폭력 등 고문을 당했다고 밝혔다. 루자인은 고문·감금 상태에 항의해 지난달부터 2주일 동안 ‘단식 투쟁’을 벌였다가 이날 푼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 정부는 고문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 21~22일 G20 화상회의를 앞두고 대외 이미지에 신경을 써왔지만, G20 기간 투옥된 인권운동가들 석방하라는 인권단체들의 요구에 부딪혔다고 중동전문매체 미들이스트아이가 전했다. 영국에 본사가 있는 아랍인권기구(AOHR)도 G20 기간 미 워싱턴포스트, 영국 가디언, 독일 쥐트도이체 차이퉁 등 신문에 모든 정치범 석방을 촉구하는 전면광고를 실었다.
사우디는 2018년 6월 여성 운전을 허용한 데 이어 지난해 8월 남성 후견인의 허가 없이도 여성의 해외여행을 허락하는 등 남성 후견인 제도를 일부 완화했지만, 여전히 ‘인권침해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여전히 ‘루자인을 석방하라(#FreeLoujain)’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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