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00억 쏟은 신한울 3·4호기, 정부 탈원전 각본대로 날아갔다

김남준 2020. 11. 2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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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공원 인근 도로에서 경북 울진 군민들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와 신한울 3,4호기 원전 원안대로 건설을 주장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신한울 원자력발전 3·4호기를 앞으로 전력 공급원에서 빼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전력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정부 안은 탈원전 정책으로 생긴 문제를 거꾸로 신규 원전 퇴출의 근거로 삼아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대로 기본계획을 확정하면 신한울 3·4호기는 이미 투입된 7900억원을 날린 채 퇴출 수순을 밟게 된다.

심의위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언제 지어질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9차 기본계획안에서 신한울 원전 3·4호기를 제외했다”고 26일 밝혔다.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심의위에서 계획안이 통과되면, 국회 상임위 보고와 공청회를 거친 뒤 산업부가 최종안을 확정한다. 이번 9차 안에는 2034년까지의 에너지 정책을 반영한다.


월성 1호기처럼 탈원전 각본대로 제외
정부 안 수립 과정에 대해선 벌써 비판이 거세다. 경제성을 낮게 평가해 조기 폐쇄를 밀어붙인 월성 1호기 사태의 재연이란 지적이다. 산업부는 9차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지난 5월 각 발전사업자에게 신규 발전소 건설 관련 의향조사를 진행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을 이유로 “신한울 3·4호기 건설 시기를 확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런데 산업부는 이를 근거로 기본계획에서 신한울 3·4호기를 뺐다. 언제 지어질지 모르는 원전을 국가 기본계획에 넣을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전력정책심의위 관계자는 “정부가 만든 에너지전환 정책 계획 때문에 한수원이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못 하는 것인데, 한수원이 신한울 3·4호기 건설 일정을 못 잡는다고 기본계획에서 뺀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말했다. 24일 열린 심의회에선 이 문제를 지적하는 민간 위원과 산업부 관계자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관련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탈원전 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전에 빨리 신한울 3·4호기 등 남은 현안을 해결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최종적으로 신한울 3·4호기가 계획에서 빠지면 신규 원전은 사실상 백지화된다. 전기사업법상 발전사업 허가를 받으면 4년 내 공사 계획 인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허가 취소 사유다. 신한울 3·4호기 관련 기한은 내년 2월 26일까지다.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할 때도 월성 1호기를 배제한 8차 기본계획이 근거로 활용됐다.


최종 취소되면 7900억 날릴 판

신한울 3·4호기 건설 취소에 따른 후폭풍도 클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0월 발표한 탈원전 로드맵에 따라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한 신규 원전 6기 설립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계획 단계에서 백지화된 다른 4기와 달리 신한울 3·4호기는 건설이 보류됐다. 이미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데다 부지 매입과 주요 기기 사전 제작 등에 7900억원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7900억원 중 4927억원은 두산중공업이 기기 제작에 이미 자금을 투입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사업이 취소되면 7900억원은 물론이고, 두산중공업 등 업체 손해배상에 더 큰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수원은 회사 이익에 따라 신한울 3·4호기 건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하고 산업부도 절차에 따라 이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월성 1호기 때와 같은 사태가 또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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