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에 포박당한 피터팬..여기는 '동심파괴' 네버랜드 [포토다큐]

김창길 기자 2020. 11. 2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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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이기심에 도심 흉물로 전락한 부천시 놀이공원 '원더존'

[경향신문]

잃어버린 그림자를 찾아 헤매다 지쳐버린 것일까? 후크 선장이 쳐 놓은 거미줄 함정에 걸려든 것일까? 마법의 요정가루를 뿌리며 어린이들과 하늘을 훨훨 날던 피터팬이 적막한 놀이공원 원더존을 바라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나라 네버랜드에 산다는 피터팬의 몰골이 괴기스럽다. 꾀죄죄하게 그을린 얼굴은 방긋 웃고 있지만 입가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다. 경기도 부천의 놀이공원 ‘원더존’에 운항을 멈춘 해적선 돛대 위에서 수년째 어린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피터팬의 모습이다.

손목이 잘린 티라노사우르스가 놀이공원 바닥에 누워있다. / 김창길 기자

“흉물스럽죠. 왜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공원 근처 체육시설을 이용하던 마을 주민이 혀를 찼다. 무너져버린 천장 아래 멈추어 서 있는 아기공룡 트리케라톱스, 색이 바래지고 있는 해리 포터, 손목이 잘려나간채 바닥에 누워있는 티라노사우르스, 녹슨 철창 안에 갇혀 달리지 못하는 백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놀이공원이 유령 공원이 됐다.


지난 2007년에 문을 연 놀이공원 원더존은 주식회사 경인랜드가 부천시 소유의 부천종합운동장 부지 2,600㎡을 임대해 운영했던 곳이다. 서울랜드나 에버랜드와 비교하기에는 규모가 매우 작은 편이지만 바이킹, 관람차, 범퍼카 등 나이 어린 아이들이 즐길만한 놀이시설이 15개나 갖추어진 테마파크였다. 하지만 원더존의 운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부천종합운동장 역세권 종합개발계획을 추진하는 부천시가 2015년 10월 경인랜드 측에 일반유원시설업 갱신사용 불허를 최종 통보했기 때문이다.

대(對)관람차라 부르기에는 작은 놀이시설이지만, 관람차가 없는 놀이공원을 상상할 수 있을까? 더이상 회전하지 않는 관람차도 상상하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 김창길 기자


“부천시가 놀이시설 운영에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정책적으로 인수받아 10여 년간 시민의 놀이시설로 운영해온 결과가 일방적인 종료 통보로 내팽겨쳐진 부분은 운영자 입장에서는 심히 억울하다”는 것이 경인랜드의 입장이다. 부천시가 설립한 부천무역개발(주)을 대신해 경인랜드는 2007년 5월부터 놀이공원 사업을 승계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놀이시설을 가동시켰다. 세 차례에 걸쳐 일반유원시설업 갱신 허가를 받으며 원더존이 운영됐다. 하지만 네 번째 계약 연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인랜드는 원더존의 놀이시설 등을 부천시가 매입하라며 지상물 매수 청구권 소송을 냈다.

“지직 지직” 불꽃을 터뜨리던 범퍼카 천장 전기 그물에서 떨어진 녹물을 해리 포터가 바라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부천시는 공익사업에 필요한 경우 공유재산 사용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며 임대계약 해지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놀이시설 철거 비용도 사용자인 경인랜드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차례의 소송이 이어졌다. 법원은 부천시의 손을 들어줬다. 놀이시설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이 수 차례 경인랜드에 전달됐다. 운동장 부지를 관리하는 부천도시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2년 전에 법적인 문제가 정리됐지만 경인랜드와 부천시의 말 못하는 내부사정 때문”에 철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행정대집행에 대한 부담도 있다.

시계추처럼 좌우로 움직였던 바이킹의 시대는 과거에 묻혀 있었다. / 김창길 기자


민원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흉측한 놀이기구들은 그 모습만큼이나 위험해 보였다. 창문이 깨진 놀이기구 조종실, 찢겨진 천막들, 지하철 출입구 바로 앞의 대관람차는 검붉게 녹이 슬어 있었다. 공원 출입금지 안내판과 철제 울타리가 쳐져 있지만, 출입구가 많아 통제가 어렵다. 5년째 방치된 놀이시설은 이제 위험시설이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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