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원기자의 軍고구마] 군대는 왜 쉬는 날 병사들을 괴롭힐까?..장병 휴식보장 제대로 되나요

이주원 입력 2020. 11. 2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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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제대로 된 휴식시간 부족한 장병들
휴식 여건 보장은 강한 전투력 유지 조건

개인정비 하는 병사들 - 육군 병사들이 생활관에서 개인정비를 하고 있다.서울신문DB

“쉬는 건 좋다 이거야. 근데 쉴 땐 쉬더라도 기본을 지키면서 쉬라는 말이야. 지킬 것만 잘 지키면 너희들을 터치할 생각이 없어.”

어느 화창한 날씨의 부대 주말. 평일 고된 일과에 지쳐 생활관에서 푹 쉬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당직사관 A상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A상사는 “너희들 휴식군기가 엉망이다”고 지적하며 “전 병력은 현 시간부로 밖에 나가 모포랑 매트리스 일광건조를 실시한다”고 지시했다.

병사들의 불만이 한가득이다. 각자 모포를 들고 생활관을 나오며 “군대는 왜 쉬는 날에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 하냐”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들려 온다.

이제 좀 쉬려나 했는데 다시 한 번 방송이 나온다. 행정병 B상병의 목소리다. “오늘 당직사관님께서 점호 간 총기수입 상태를 점검한다고 한다”고 전파했다. 병사들은 또 한숨을 내쉬며 총기함 열쇠를 받으러 간다.

명절에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긴 연휴는 병사들이 고된 몸을 풀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런데 부대는 이들을 가만히 놔 두지 않는다. 합동차례를 지내야 한다며 아침 댓바람부터 강당에 소집한다. 차례를 마치고 나와 쉬려고 했지만, 오후엔 체육대회를 한다고 연병장으로 집합을 시킨다. 특히 차례상을 준비한 취사병들은 명절이 더욱 죽을 맛이다.

왜 군대는 휴일에도 병사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것일까? 병사들은 나름 여러 추측을 하기도 한다. 당일 당직사관의 기분이 좋지 않다던가, 지휘관에게 인정을 받으려 한다는 등 나름 근거를 제시한다.

군 간부들은 ‘사고 예방’이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한 육군 장교는 “부대는 항상 단체생활을 하다 보니 잠재적 사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며 “무턱대고 병사들을 풀어주기만 한다면 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육군 장교는 ‘건강상 문제’를 거론한다. 그는 “주말에도 모포 일광건조나 환기, 청소 등을 지시하는 것은 부대 환경을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아 환경이 악화되면 호흡기가 약한 환자가 발생하고, 결국엔 비전투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원칙적으로 휴일에 병사들에게 업무나 작업을 지시하는 건 금지된다. 하지만 병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예비역 병장 C씨는 “개인정비라는 핑계로 모든 것을 다 점검하면서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게 병사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은 병사들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주말에 병사들을 괴롭힌 당직 간부들 조차 다음날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군대 당직근무는 하루 일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뜬 눈으로 밤을 새야 한다. 특히 야간은 적 침투가 용이한 시간대고 경계 근무에 만전을 기해야 하기 때문에 낮보다 더 예민한 상태로 밤을 보내야 한다. 당직근무간 상급부대의 점검이나 병사 관리 등 해야 할 것들도 많다.

규정상 당직근무자에 대해서는 ‘근무취침’을 부여해야 한다. 밤을 지새고 아침에 퇴근하면 그날은 원칙적으로 ‘오프’를 하거나 오후 3~4시까지 쉴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간부들은 이같은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한다. 군은 간부들이 당직근무에 투입되기 전 휴식을 주고, 당직을 마치면 근무취침을 보장하라는 지침은 내리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특히 부대 핵심 보직자들에게 휴식은 사치나 다름없다. 육군 모 부대 한 인사과장은 “내가 하루를 쉬어 버리면 부대 업무에 구멍이 생긴다”며 “내 업무를 대신 할 대체자도 없다. 지휘관들도 빡빡한 부대 운영 때문에 근무취침을 하지 못하더라도 암묵적으로 눈을 감고 있다”고 호소했다.

게다가 수당도 짠 편이다. 군인의 당직근무비는 평일 1만원, 주말 3만원으로 책정됐다. 군은 이들의 여건 보장을 위해 평일 3만원, 주말 6만원으로 일반 공무원 수준으로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롬멜이 지휘하는 아프리카 군단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국 몽고메리 장군은 사기가 꺾인 부대를 재정비하며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부여했다. 훈련 효과 극대화와 전투력 발휘를 위해 충분한 휴식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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