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도 독재에 맞서 일어선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0. 11. 2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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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카페]
탁 트인 초원에서 먹이를 구하는 대머리호로새들. 연구진은 새들의 다리에 인식표를 달고 행동을 분석했다./막스플랑크연구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야생에서도 지배층이 권력을 남용하면 집단 전체가 들고 일어나 뒤집는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와 콘스탄츠대 집단행동연구센터 공동 연구진은 지난 25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대머리호로새에서 민주적 의사 결정이 소수 지배층의 권력을 견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대머리호로새는 키가 61~71㎝인 대형 조류로 동아프리카 사바나(초원지대)에 산다. 뿔닭과(科) 중 가장 크다. 가슴 부분이 밝은 파란색이고 등은 흰 점들이 줄지어 있는 검은색 깃털로 덮여 있다. 탁 트인 곳에서 씨앗이나 곤충을 잡아먹으며 위급하면 날기보다 뛰어서 도망간다.

◇자원 독점하면 하층 동물들이 집단행동

연구진은 대머리호로새의 집단 생활을 몇 년에 걸쳐 관찰했다. 이 새는 15마리에서 많게는 60마리까지 모여서 무리를 이루며 명백한 계급 구조를 갖는다. 늑대나 장류처럼 소수 지배층인 이른바 ‘알파’ 동물들이 먹이나 짝짓기에서 우선권을 갖는다.

이번 논문의 대표저자인 막스플랑크 동물행동 연구소의 다미엔 파린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는 “대머리호로새는 밝은 깃털 때문에 혼자 있으면 표범이나 독수리 같은 천적의 눈에 쉽게 띈다”며 “무리를 지어 함께 먹이를 찾는 것이 이 새들에게는 생존에 필수적이다”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무리가 어디로 이동할지 결정하는 동물은 그 전에 알파 동물이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무리가 넓은 지역에서 모두가 공평하게 먹이를 먹으면 모든 구성원들이 똑같이 행동한다.

하지만 알파 동물이 먹이가 풍부한 곳을 독점하면서, 그곳에서 쫓겨난 하층 구성원들이 점점 불어난다. 마침내 하층 구성원 중 한 동물이 알파 동물들이 독점한 취식지를 떠난다. 나머지 하층 동물들도 이를 따라 단체 행동을 한다. 결국 알파 동물도 독점한 먹이를 포기하고 무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은 독재에 반하는 민주적 집단 의사 결정이 먹이와 물 같은 생존에 필수적인 자원을 모든 구성원들이 얻을 수 있도록 진화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지배층을 이루는 동물들이 항상 자신만 위해 의사 결정을 한다면 무리 모두가 자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머리호로새들이 취식지에서 공평하게 먹이를 먹는다(1). 우두머리 알파 동물(파란색)이 취식지에 오면서 하층 동물(주황색)을 쫓아낸다(2). 알파 동물이 취식지로 몰리면서 쫓겨가는 새들이 늘어난다(3~4). 결국 쫓겨난 새 중 한 마리(빨간색)가 취식지를 떠나고(5), 나머지 동물들도 이를 따른다(6)./사이언스 어드밴스

◇투표처럼 다수결로 의사 결정

파린 교수는 앞서 대머리호로새와 같이 사바나에 살고 있는 개코원숭이 무리에서도 집단 의사 결정을 발견했다. 원숭이들은 무리에서 벗어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방식으로 투표권을 행사했다. 이렇게 무리를 떠난 원숭이들이 다수가 되면, 나머지 원숭이들도 그 쪽으로 이동했다.

이번 연구는 무리의 이동에 관한 민주적 의사 결정이 알파 동물이 이끄는 계급 사회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견제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알파가 이끄는 무리는 자원 배분에서 명백한 불평등이 있지만, 천적의 공격이나 다른 무리와의 경쟁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제도이다. 하지만 권력 독점이 심해지면 그런 장점도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이 때 민주적 의사 결정은 소수가 독점한 취식지를 무리가 떠나도록 함으로써 하층 구성원들이 소수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 하층 구성원들은 심지어 상층 계급의 동물들조차 자신들이 독점하던 취식지를 떠나도록 강제할 수 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다나이 파파게오르규 연구원은 “자원에서 배제된 하층 구성원들이 무리를 이끄는 모습을 처음 발견하고는 무척 놀랐다”며 “우리는 여기에 ‘패자 지배 메커니즘’이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연구는 어떻게 집단 행동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항하는지 보여줬다”며 “민주적 의사 결정은 무리를 이루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인 사회에서 권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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