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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착취' 피해자가 가해자에 "하루 6시간 너희를 찾고 있다"

한겨레21 입력 2020. 11. 29. 10:48 수정 2020. 11. 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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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너머n']피해자 강지오(가명)가 가해자에게 보내는 편지
1340호 표지이미지

<한겨레21>이 디지털성범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열었습니다. 11월27일 나온 <한겨레21> 1340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1년동안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은 과제로 채웠습니다. 이곳( https://smartstore.naver.com/hankyoreh21/products/5242400774)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4명이 ‘너머n’에 6통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준 가해자, 같은 아픔을 가진 또 다른 피해자,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연대자들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To. 가해자들

나는 <한겨레21> 제1317호 ‘그루밍 성착취 “2분 안에 답하지 않으면 그들이 왔다”’에 나왔던 강지오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약 4년 동안 트위터 등에서 피해를 당했다. ‘n번방 이전의 n번방’ 피해자인 내가 너희에게 편지를 쓸 날이 오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이 편지를 욕으로 다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분노한다. 하지만 후회 없이 하고 싶었던 말을 여기에 적어보려 한다.

너희 중 반성하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 같다. 경찰이 디지털성범죄자를 잡는 와중에도 2년 전 나에게 했던 것처럼, 또다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계정을 만들어서 다른 피해자를 노리며 협박하고 있지 않을까. 너희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경찰에 잡혔는지 알 길이 없는 나로선, 너희는 조주빈이고, 문형욱이고, 강훈이다. 아직도 난 그날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4년 동안 겪어온 일들을.

지금도 집으로 협박 편지를 보내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가족에게 편지를 들킬까봐 하루에도 몇 번씩 우편함을 들여다본다. 집 밖에 나가면 유포된 영상 속 나를 누군가 알아보진 않을지, 내일 내가 살아 있을지 잠이 드는 순간까지 전전긍긍한다. 이 고통은 끝난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하루 24시간 중 2시간은 집에서 보내고, 4시간은 잠을 자고, 12시간은 일한다. 나머지 6시간은 너희를 찾는 데 쏟고 있다. 나는 내가 겪었고, 또 현재 겪는 일들의 증거를 모두 모아 법적으로 독립이 가능한 스무 살에 신고할 거다. 그래서 자신들을 공무원이라 말하며 나를 집단으로 성폭행한 약 20명이 공무직에서 해임되고 처벌받도록 하는 게 내 목표다. 이외에 나를 희롱했던 이들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레고 블록을 밟았으면 좋겠다. 너희가 발바닥의 고통을 느끼며 운 나쁘게 하루를 시작하길 바란다. 내가 받은 고통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나를 괴롭히고 희롱했던 초반 4개월만큼이라도 실형을 살았으면 한다. 나는 너희가 감옥에서 사회와 격리되길 바란다.

왜 피해자인 내가 밖에 나가는 걸 두려워하고, 트위터에 가입했냐는 질문과 조사를 받아야 할까. ‘소년원에 갈 수도 있다’는 말을 왜 내가 들어야 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문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날 괴롭히는 것이 있다. 왜 너희는 이전과 다름없는 일상 속에 편하게 잘 살까.

이젠 내 차례다. 나는 너희가 당당히 살 수 없도록, 저지른 짓을 평생 뉘우치며 살도록 세상을 바꿀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란 걸 잘 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겠지만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이 현실을 변화시킬 거다. 계속 부딪치다보면 사회도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 너희의 시대는 끝났다. 머잖아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공포에 떨길 간절히 바란다. 또한 이 편지를 보는 다른 피해자가 있다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괜찮지 않을 수도 있지만, 괜찮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끝으로 나는 피해자이지만 디지털성범죄라는 전쟁 속에 살아온 생존자로서, 이겨내고 반드시 잘 살 거다. 내 앞은 찬란하게 빛날 테지만, 너희의 앞은 썩은 시궁창만 남아 있길 빌고 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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